鬱陵島(울릉도)에 福音(복음) 傳(전)해지려 한다.
陸地援助(육지원조) 渴望(갈망)하는 開拓島(개척도)
6千(천) 豫備信者(예비신자)에게 來日(내일)을 期約(기약)하려
墺地利(오지리) · 聖廳(성청) __ 받았건만
聖堂(성당) 세우기 3年(년)을 시달려
철 맞으면 漁夫(어부)되 되는 李吉俊(이길준) 神父(신부)
千(천)2百(백) 信者(신자)들 몸부림 치고
발행일1962-05-13 [제326호, 2면]
멀고 푸르른 바다 하늘과 맞닿은 그 일선위에 뿌옇게 떠오는 섬은 나그네로 하여금 아름다운 꿈을 싣고 오게 한다.
이 다건너의 또 하나 경상북도 -바위덩어리의 섬- 울릉도에 한 젊은 사제와 그를 돕는 일꾼들은 6년만에 1천2백의 형제를 얻고 6천의 예비자를 놓치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한다.
주일날의 20평 강당은 콩나물 시루다. 지붕 위에 네 솟은 바윗돌은 언제 성당을 뒤덮을지 모른다. 15개 공소까지 합친 교무금은 20만환이니 언제 무슨 수로 성당 하나 세워볼 것인가? 『놀로오라』고만 해도 기뻐 어쩔줄을 모르는 섬사람 의욕에 불타는 젊은 선교사 바오로 이(李吉俊) 신부는 마음이 분주해지고… 그들을 감싸안으려 교황청과 오지리 부인회는 원조의 약속으로 희망을 불어넣었고 이 신부는 급기야 3천5백만환의 예산으로 성당 90평 사제관 50평을 설계하고 1961년 5월 숙망의 착공을 했다. 작년 성탄절 2백50명이 다시 영세하면서 앞길은 더욱 다급해진다.
벽돌 15만장은 마련되었고 부지 5백평도 닦아졌다. 금년 12월 8일 성모무염시태첨례날에는 기어코 첫미사가 봉헌되어야 겠다고 동분서주한다. 나머지 자금이 땅에서 치솟지 않아 『누가 나를 도와줄까?』 『저 6천에 비자가 문전에서 서성대는데』 이 신부는 답답기만 하다.
연수(年收) 24만환으로 연명하는 1만7천 도민을 “영북”에로 초대하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교우들은 흙을 나르고 세멘을 비비며 육지를 바라보고 있다.
재작년 봄, 바오로 · 이 안드레아 이 두분 신부님이 시찰하고 나가신 뒤 그 해 여름에 바오로 · 이 신부님이 자원하셔서 최초의 본당신부로서 도동에 주재하게 되었다. 목마르게 바라던 목자였으나 재정적인 빈곤교우들의 정신상태 미사예전상 예절 등의 미흡한 점 무엇하나 갖추어진 것 없는 이 황폐한 고도에 본당신부를 모시게 된 일부 교우들은 일변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쓰던 임시 강당은 신 신부님이 들어왔을 때 소실되고 다시 조그만한 집을 사서 임시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바오로 신부님은 허무러져 가는데를 뜯어내고 대폭 수리를 하는데 손수 함마를 들었다. 아랫층에 거처하시며 15평 남직한 2층을 기도실로 꾸미어 지금은 거기서 미사를 올리게 되었다. 교우들은 거개가 이고장에서도 빈곤한 층에 속한다. 이 골짝 저 골짝에 흩어져 있는 공소는 이름뿐이지 움집같은 방한칸이 고작이다.
이것은 마치 사하라사막 속에 「사랑의 집」)움막)을 짓고 거기서 외인부대와 아라비아토민을 상대로 천주께 봉사한 저 유명한 20세기의 성자 샤르르 후꼬오 신부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그뿐인가 어떤 곳에서도 침례교 장로교 등의 예배당이 마치 여보란 듯이 이 초라한 천주교회를 억누르듯 위세좋게 높이 솟은 모양은 참으로 신심있는 천주의 자녀들로 선 한가닥 뜨거운 회포를 지니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교무금 하나 제대로 바치는 자가 몇이나 되는지 진정 성심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사실 이들의 생활은 그날 그날 연명하기에도 고작일 지경이며 이 모든 사정을 다 아신 뒤 바오로 신부님은 이곳을 자원하신 것이다. 봄부터 신부님은 대지 약5백평을 작만하시고 내부 90평 신부사랑 및 강당 50평 도합 1백40평의 성당 건립을 기도하고 거기 소용되늰 비용 최저 3천5百만환 가운데 그 출처의 일부를 서 주교님과 루디 서기호 신부님의 알선으로 오지리 가톨릭부인회 주일헌금과 모금으로써 원조해 줄 것을 마라고 있으나 그 나머지 액수는 막연한 것 같다.
원래 작년 가을에 준공하려 든 것이 여의치 않아 겨우 교우들의 손으로 벽돌만 만들어졌을 뿐 (소용벽돌 15만장) 대지는 경사진 산비탈을 깎아 교우들의 피땀흘린 노력으로 닦아 놓았으나 지금은 허허한 공지에 벽돌만이 널려있다.
신부님은 공소의 춘추판공 종부 혼배성사에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부득불 목적지까지 가야된다. 이 섬에서 산곡의 길을 걸어다녀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고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번은 후벨트 배신부(美人)님을 모시고 공소를 돌 때였다. 20리를 더 걸어야만 판공겸 혼배식에 성사를 줄 지점에 닿게 되는데 신부님은 그 이상 험로를 걸을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동행이던 신랑이 타고가는 가마를 빌려 신부님을 태워 교우청년들이 메고갔다. 이러는 교통사정에서 신부님은 소형의 어선을 구입하여 공소왕래에 이용하는 한편 어로철에는 어부들과 같이 어구(漁具)를 챙겨 바다로 나간다. 진정 영육이 함께 그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교회는 전차적(前借的)인 이과율에서인지 점점 어떤 「딜램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좋은 표양으로 솔선수범해야 할 공소회장급의 너무 무능한 소치 철저하지 못한 신도들의 영신사정 많은 냉담자 이미 시작해 놓은 성당공사의 부진상태 -이러는 가운데 영신없는 교우들 간의 불만 · 반목 그에 따르는 소음, 신부님으로서도 이들의 빈곤으로 말미암은 착잡한 사정과 먼저 무엇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하는 터이나 이 역경의 고비를 어떻게 넘기며 어떻게 교도할 것인가 하는데 고심진력하나 참으로 혼자 힘으로는 너무나 벅찬 일이 아닌가 싶다.
신부님을 맞아 어언 이태가 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난처한 일들도 차츰 가시어지매 한줄기 서광이 비쳐오는 듯한 느김이다. 올해들어 정초부터 청년회 · 부인회가 조직되고 신심생활 철저와 교우상호간 친목하며 모두 교회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굳게 다짐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한때 교세가 허핍 · 위약해진 감을 준 원인에 대해 구명하고 타개하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고찰하며 재생이 발걸음을 다시 내딛었다. 그들은 이제 「레지오」 JOC 같은 조직체로서 배가 운동을 전개하며 나아가 신 · 망 · 애(信 · 望 · 愛)의 산 표본으로 사회사업 등 많은 천주성업의 터전을 마련할 것이다. 허지만 성당 건립의 그 모자라는 기금은 어떻게 조달될 것인가?
『정 안되면 구걸이라도 하러나서야 한다.』고 어떤 독지 청년은 외친다. 정녕 올해 성탄절 이전에는 이 항구에 배를 대는 나그네는 저 산 언덕바지에 아치스럽고 웅장한 성전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호리 아이랜드」(聖島)
이것은 신 신부님이 남기고 가신 말씀, 꿈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반성이나 궁리 할 때는 이미 지나고 지금은 실천의 가을이다.』 비오 12세 성하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하며 그들은 더더욱 가톨릭 액숀으로 만만의 준비를 갖추고 이 푸른 섬 위에 그러나 헐벗고 굶주림을 무릅쓰고 그들의 거룩한 꿈을 구현하려 일익 배진하고 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겨자씨 하나를 가져… 모든 씨중에 제일 작은 것이로되 이미 자라면 나무중에 제일 크고… 곧 하늘의 새들이 와서 가지에 와 깃들이나니라』 (성 마두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