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림절이 찾아 왔읍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이미 오셨고 그는 끊임 없이 우리 생활 가운데 오시고 또 우리는 그의 결정적인 내림(來臨)을 이 세상 마칠 때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스티아니즘」(그리스도교)은 그 창설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종교의 비할 수 없이 찬란한 과거에만 치중하고 뒤만 돌아보아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뒤에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도 계십니다. 장림절은 주님이 이미 오신 사실(성탄)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기간 일뿐만 아니라 그의 제이의 대림(심판)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옛 「유데아」인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구원의 주님을 이미 고대하였읍니다. 이 고대하는 마음이 「유데아」인들의 경신(敬神) 태도를 압도적으로 지배하였읍니다.
또 구약의 예언서도 예수의 탄생으로 그 예언의 일부가 성취되기는 하였으나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는 아니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구원의 주님을 기다리는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의 「유데아」인들처럼 그를 기다리지는 아니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대의 대상에 있어 그들보다 더 분명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을 우리는 이미 소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교회는 우리의 눈을 하늘로 향하고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내 천주에 내 영혼을 네게 받들어 드리오며』(초입경 제헌경)하고 우리의 행동을 천상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위대한 박사 <바오로>가 기독적 희망을 주는 「다이나미즘」과 과감성을 그의 서간경에서 봅시다. 잠에서 깰 시간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밤은 깊었고 낮이 가까웠다고 하십니다. 즉 잠에서 깨어 죄의 밤에서 뛰어나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광명 속에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주 오실 이 광명의 낮은 위대한 「주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날은 우리가 부활주일 광채 찬란한 아침에 노래부르는 것과같이 주께서 친히 내신 날이 될 것입니다. 이날을 준비하는 이 장림시절에 우리는 부활주일 전야에 감격의 촛불을 밝히면서 우리 각자의 영세의 서약을 새롭게 하듯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광명의 갑옷을 입어야하겠읍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비추시는 양반이십니다. 심판때 광명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는 빛을 두리지 말고 살아야 하고 우리 자신이 광명이 되어야 하겠읍니다.
그리하여 _주에 하는 것 같이 정직하게 걷고 포식(飽食)과 과음(過飮)과 간음과 음란한 일이나 쟁론과 질투에 나아가지 말고 거짓과 무성실과 기만과 위선을 피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미 우리가 살아야 할 것을 오늘날 신생활 운동에서 재건국민운동에서 그리고 이번 가을 한국 주교단 회의에서 다시금 요청하는 것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다만 구유에 누워 계시는 무능하게 보이는 적은 애기만이 아니십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시오 구세자이시오 주이시오 심판하실 자십니다. 그러나 그는 다만 우리를 심판하려 오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실 것입니다. 심판 때 우리를 두렵게 하지 아니시고 우리를 희망에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이에 인자 큰 권능과 위험으로 구름을 타고 음을 보리니 이런 변이 되기 시작할 때에 너희는 머리를 들고 우러러보라. 대저 너희 등의 구속함이 가까왔나니라』(복음) 그러므로 비록 자색 빛갈의 제의를 입고 영복경을 창하지 아니하고 재단에 꽃을 꾸미지 않고 「올간」은 잠잠하지만 희망에 찬 마음으로 『알렐루야』를 부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인자를 베프시기 위하여 항상 언제나 오시는 이십니다. (영성체경)
우리는 주님께 언제나 의탁하고 살아갑시다. (초입경·층제경·제헌경) 그러면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 주일동안 우리는 우리 죄로 인하여 장차 당할 바 위험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도록 (축문) 주님께 빌고 장차 임할 우리 구속의 날을 합당한 존경으로 예비합시다. (성체 후 축문) 우리의 기도가 주님을 고대하는 그 정도에 따라 그의 내림이 우리에게 위로울 것입니다.
申相祚 神父(대구 효성여자중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