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88) 대구 계산동본당
歷史 깃들인 반석
옛 南方四道의 本據 面貌 歷然
평신자 일군은 많아
발행일1961-12-03 [제305호, 3면]
본당으로서의 설정(設定)은 이미 1886년이었지만 현재(桂山洞 2街 70)의 자리에 성당이 서게 된 것은 거금(距今) 64년 전인 1897년이었으니 이 본당도 서울주교좌와 약현(新林洞) 다음으로 전국적으로 가장 오래된 본당일 뿐만 아니라 경상도 포교의 본거지로 대구교구의 다른 모든 본당들을 낳은 본당이다.
남방(南方=慶尙·全羅等四道) 교구의 주교좌로서(1911-1937) 26년만이 아니라 그 후로도 계속적인 경상도 교구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교회 내 많은 일군들의 배출과 함께 이 본당의 역사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현재 신자 총수는 6천1백여 명인데 주임 <루수> 박(朴相泰) 신부와 보좌 <베드루> 정(鄭淳在) 신부 두 분이 담당하고 있는 성무(聖務)는 너무 많아 고역(苦役)이다.
『20여 년 전 교우 수 2천명이었던 시대에도 이 본당에는 주임신부 아래 두 분의 보좌신부가 있었으며, 한 때는 다섯 분의 신부님을 뫼신 때도 있다』고 신자들은 신부님의 손부족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대외적인 큰 행사를 잘하는 것으로서 또 평신자 일군들이 많은 것으로 이름난 대구교구의 모든 행사나 사업들은 언제나 이 본당이 앞장을 서야 될 뿐 아니라 인적(人的)인 구성이나 경제적인 부담도 항상 다른 본당들의 2배 내지 3배를 담당하고 있어 일의 추진은 이 본당의 열성적 협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지난날 교회 사업에 공적이 큰 평신자들이 여러분 있어 평신자의 단체활동이 가장 왕성하던 곳이라 현재에도 그 아름다운 전통은 대부분 지니고 있지만 한편 고목(古木)과 같아서 고루한 일면도 없지는 않다.
3년 전 이 본당 어떤 신자의 단독 부담으로 칠성동에 성당이 신축되고 본당으로 구역을 나눠주었지만 아직도 관찰지역이 넓어 내당동(內唐洞)에는 본당이 하나 더 신설되었으면 하는 것이 당면한 숙제며, 장차 진출할 수도단체나 착수할 새 사업을 위해 서부 변두리에 넓은 부지를 마련해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관으로서도 겸용(兼用)하게 될 『효성유치원』 원사를 현대식 3층(철근 「콩크리트」) 건물로 신축(新築) 중에 있지만 아직 일반 교우들에게는 경제적인 부담을 가하지 않고 있는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관할지역을 20개의 소구역(小區域)으로 나눠 이를 맡은 구역회장들이 각 가정을 순방하여 본당과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는데 본당 내 단체로는 경제적 전반문제를 의논하는 평의회(評議會)와 회장단과 청년회 성모회 학생회 합창단 등과 사도직 단체로 「레지오·마리에」 6개 「쁘레시디움」(성인 3·미성년3)과 최근에 조직된 JOC(가톨릭 노동청년회)가 있으며 이밖에 교회의 공인(公認) 단체는 아니나 신자들로서만 조직된 친목(親睦) 단체인 우륙회(友六會) 십오회(十五會) 성우회(聖友會) 대건회(大建會) 신우회(信友會) 통공회(通功會) 등이 있어 이 사사로운 단체들이 큰 행사에는 서로 경쟁적으로 교회일을 도우고 있는 것이 아름다운 특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