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週刊世界(주간세계)] 共産(공산)과 對決(대결)하는 南美信組(남미신조)
프로테스탄트와 協同摸索(협동모색)
信用組合(신용조합)의 將來(장래)
「經濟(경제)이지만 司祭(사제)의 事業(사업)」
발행일1962-05-20 [제327호, 1면]
수입이 적고 차금(借金) 이자가 25%까지 오르는 라띤 아메리카에서 신용조합의 발전으로 경제적 및 사회적 향상의 새로운 페이지의 약속을 미국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에서 마련하고 있다.
루터파 세계연맹 사무국(LWFA)은 이에 관하여 미국 루터파 평의회 지부가 남아메리카에서 유통자금의 긴급한 부족을 덜리 위해 신용조합 및 합작회사의 가능성을 조사중이라는 최근 보고가 있었다. 이 계획을 공시한 동 지부의 스츄와트 W. 허만 박사는 라띤 아메리카에서 신용조합운동은 일반적으로 공교측의 주최로서 『극히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공교측이 선도(先導)한 가장 탁워한 데는 페루 리마 주재의 메리놀회원 다니엘 막례란 신부가 제공한 것이다. 동 신부는 신용조합을 3년만에 전남미를 휩쓰리라고 걱정되늰 공산혁명의 최선의 예방책의 하나로 본다. 그가 6년전에 시작한 페루 「중앙신용조합연합」은 2백75개 지부와 6만1천명의 조합원과 2백70만 「달라」 나머지의 자본액을 헤아린다. 산하의 3분지 1에 가까운 지부가 공교본당의 주최이며 나머지는 지역적 및 고용자 칙의 소관이다.
미국 루터파 평의회의 집행위원회는 5천「달라」를 어느 자격 있는 평신도에게 배당하여 남미 각국에서 신용조합의 설립이 희망되는 농촌지대의 시찰여행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것은 신교칙의 주최로서 최초는 아니다.
1962년 말에 동일한 운동을 전국 교회평의회(NCC)의 외국선교부의 봉사본부인 농촌 선교부가 실시한 일이었다.
그 주최로 부라질에 파겨된 엘마크리는 신용조합 설립의 전망 뿐 아니라 신교의 지도력을 발전시키는 사명도 띠었었다. 농촌선교합작위원회(RMCC)의 집행서기인 I. W. 무오우 목사의 말에 의하면 엘마크리씨는 보고는 고무적인 보고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NCC의 계획에 있어 전북미의 선교 각파가 분담한 지금은 미국 · 카나다 해외 선교이사회에서 크리씨에게 지급되어 5년간에 _만 「달라」가 소비되었다.
신교측 지도자들은 독일의 어느 소도시 시장이던 복음파의 헌신적인 평신도 프리드릿히 윌리암 라이파이센이 시작한 신용조합 운동이 현재 전세계에 지부가 2만7천5백개소, 회원이 1천5백만에 달함을 자랑한다.
라이파이센씨의 종교적 열성은 합작은행조직에 있어 그리스도교의 사목(司牧)에 있음을 느낀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그는 신용좋바을 경제적 재건과 교육보금뿐 아니라 도덕적 부흥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미국 및 남미 양방에서 신용조합 추진은 가톨릭이 영도권을 쥐고 있다.
「위스컨신」주 「마디슨」의 신용조합 전국회의에 의하면 1961년 12월 31일 통계로 미국에 공교적 신용조합이 8백96개소이며 신교측 것이 3백37개소였다. 신교측의 내역은 침례교 1백24개소 감리교 62개소 아메리칸 성공회 32개소 나머지 1백19개소가 기타 각 교파의 것이었다. 개별적인 신용조합은 자기들의 저축을 모아서 서로 융통하는 교회 산하 또는 지역주민들의 공동지분(持分)을 소유한 회원들의 공동 계약 또는 주소유(州所有)로서 운영되었다.
다띤 아메리카에 발을 붙인 가톨릭이민의 하나로서 막레란 신부는 최근에 「피라델피아」에서 열린 「펜실바니아」 신용조합연맹의 연차총회에 자기의 경험담을 보고차 초빙을 받았다. 페루의 주교단이 신용조합활동 전담을 자기에게 허락한 것을 지적하면서 동 신부는 신용조합을 『비록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지마는 사제적인 사업』이라고 말했다.
『남방에까지 걸치어 우리 동료인 수천만 아메리카인을 돕는 최선의 방법으로서 나에게 관련되고 교회에도 관련되는 이 운동은 전 미국인에게도 관련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공산주의가 그들의 곤경을 지배한다면 우리도 그 지배를 받을 것이다.』라고 동 신부는 말했다.
『라띤 아메리카인들은 은행과 신용거래를 하기에는 너무도 가난하여 그들의 유일한 대차상대는 일부(日賦) 10% 내지 월후 50%의 이자를 붙이는 개인 대금업자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보내어 말했다. 『수억의 미국 차관(借款)이나 정부에 대한 발전 원조는 신용조합 발전에 주입하는 1백만 「달라」만큼의 의의도 없다. 신용조합은 가난한 자로 하여금 저축을 장려하고 조합의 사업에 있어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고 밭갈이, 파종, 생필품 가옥이나 창고 건축의 자금으로 저리(低利) 융통의 권리를 준다. 그러니까 그들은 저듬을 못하면 차금도 못한다.』
동 신부가 투우를 즐기는 호전적(好戰的)인 토인들의 신임을 얻은 것은 페루의 「푸나」에서 신용조합에 착상했을 때였다. 신용조합 저국협회 이사회 대표인 그는 요원 훈련차 「마디슨」에 있는 동 협회본부로 갈 것이다.
그는 가톨릭 단체의 일반적인 신용조합 보증을 감사하는 동시에 신교의 선교사들 특히 아프리카의 감리교파에서 신용조합 계획을 채용하는 사실을 들었다. 「일리노이」주 「질레스피」의 예수회원 마리온 M. 가니 신부는 피지섬에 1백명 이상의 신용조합을 설립했으며 동 회원 J. P. 술리반 신부는 영령(英領) 서(西)무인도 군도에서 「자마이카」신용조합연맹의 지도자이다.
수녀로서 탁월한 운동자는 성 아오스딩 선교 수녀회의 벨기인 마리아 알리시아 원장수녀로서 「도미니카」 군도에 15개 지부와 5천명의 회원을 지도하고 있다.
그곳의 어느 재봉사는 5년간 월부 15「달라」로 재봉기를 차용하다가 3개월 분납상환으로 2백50「달라」의 재봉기를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