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 「聯立(연립)」이 「中立(중립)」 保障(보장)하나?
발행일1962-05-20 [제327호, 2면]
라오스의 1년전 사태는 공산당이 곧 따먹을 수 있는 사과와 같았다. 허나 그들은 따먹지 않았다. 수년을 두고 따먹으려고만 했다. 아직도 따지는 않는다. 그들은 저들 손에 쉽게 떨어뜨리려 한다.
공산주의와 극동을 아는 자이면 중공과 공산 베트남은 라오스를 공산지배하에 두려고 하는 의도를 의심치 않는다. 북베뜨남군은 라오스에 있었으며 지금도 있다. 쏘련 비행기는 라오스의 파테트 라오 공산군을 지원하고 있다. 하노이지점에서 지격당한 일도 있다.
중공군은 중국에서 라오스에 이르는 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내가 라오스에 있을 때는 분명히 공산군이 우세했다. 내가 「타케크」란데 있을 때 불과 수시간에 공산군은 그곳을 점령했었다.
그들은 이곳을 항구히 점령하지 않았다.
「타케크」는 「메콩」강상(江上)에 있어 타이란드와 접견해 있다. 수도(首都) 「비엔띠앙」만 하더라도 점령하기에 주력하지 않는다. 이곳도 「메콩」 강상에 있다. 그들은 점령했다가 돌려주고 있지 않는가?
「메콩」강을 공산군이 점령하는 경우에는 「씨토」(東南亞條約機構)군 중대한 군사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그러나 공산군이 「메콩」강을 넘나드는 것은 타이군의 개입을 종요아고 있는 셈이다.
공산군은 군사력에 의한 완전 점령을 보류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보다 영리한 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캄보디아와 자유 베뜨남에 도달할 통로는 이미 장만해두고 있다. 라오스 완전점령은 기대리기만 하면 된다.
1961년 4월 25일 라오스의 휴전은 성립되었다. 미 · 영 당국은 휴전의 효력은 하루 이틀에 발효될 줄 알았다. 공산군은 그것을 약2주간 끌었다. 그것은 그들의 전략지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쏘련이 이곳을 장악할 명백한 증거이다. 미국과 서방의 선언된 정책은 라오스에 중립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반공산라오스에 대하여 연립정부를 수락토록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가해왔었다.
그 결과는 결국 공산측에 유리했으며 더욱 의심스런 중립론자를 양성했을 뿐이다. 라오스 연립정부가 진정한 중립을 지속해 갈 수 있을 것인가?
극동의 정세를 아는 사람이면 그 장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쏘련이 개입한 곳에 중립을 바랄 수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특히 극동에서 그러하다. 공산 파테트 라오군이 점령한 서북지방은 군사기지 건설에 광분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침입한 동남아 각지방의 실정은 이제 정치영력(領域)을 넘어서고 있다. 종교는 탄압하며 그들의 이데오르기와 대치(代置)하고 있다. 【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