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歐洲隨想(구주수상)] ⑥ 버림받은 「빠리」의 구석
實存主義文學村(실존주의문학촌)에
어미품 잃은 병아리떼들
우똑 솟은 옛 종탑
발행일1962-05-20 [제327호, 3면]
여기에 별로 대수롭게 보여지지 않는 종각이 하나있다. 「빠리」시내에서도 버림받은 듯 「생 제르멘」대로(大路) 한 가에 아득한 옛날부터 서 있는 「생 제르멘 데이 쁘레」의 성당이다. 같은 「빠리」 시내에서도 「노틀담」 대성당이나 혹은 「사끄레 껼」 대성당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하루도 몇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그런 성당은 아니나 「빠리」시민에게는 다른 어느 성당보다도 유명하고 따라서 옛 정이 많이 가는 성당이기도 하다.
「생 제르만 데이 쁘레」라고 하면 「빠리」시내에서도 소위 문화인을 자쳐하는 청년 남녀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요 실존우의 문학청년들의 중심이요, 그들의 고향이다.
이 성당을 중심으로 술집도 많고 사창굴도 많다. 불란서의 문화를 그 품에 따뜻하게 품어 길러 주었던 어머니의 모양은 헐벗고 초라하다. 그러나 그 권위와 품위는 이 종각이 솟은 천녀전 그날 그대로 엄연하다.
이 성당 앞을 오가는 허다한 병아리들은 그 어미 앞을 지나면서도 어미를 몰라본다. 성당 맞은 편에 「드 마고」라는 「꺄페」가 있다. 「마고」라고 하면 꼬리 없는 원숭이다. 두 마리의 꼬이 없는 원숭이라는 뜻으로 이 술집이름을 붙였는지 그 유래는 소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 「꺄페」에 아침부터 쌍상이 붙어 앉아 문화를 논하고 오늘의 자기를 높이 찬양하여 교만하고, 오늘의 자기를 몰라 절망하는 무리들, 어미를 잃고 공포 속에서 움직일 줄 모르는 무리들은 확실히 꼬리없는 원숭이들의 꼴이다. 원숭이면 차라리 꼬리가 있는 것이 귀엽지 않겠느냐.
어미를 지척에서 건너보며 몰라 보는 이것이 바로 20세기의 비극이다.
어미는 그 자식을 알고 있으니 더욱 슬픈 일이다. 이것은 두 가지의 세계요 또한 두개의 세계다. 성당 주위에는 책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어미 앞에서 어미를 찾아 헤메는 글들, 어미를 조롱하고 저주하는 글들, 배반한 그림들 슬픈 정상이다. 20세기의 「바벨」탑은 종이 뭉치다. 20세기의 「바벨」탑은 옆으로 뻗어 지상을 기고만 있다. 성당 안에 발을 들여 놓으면 어둡고 죄로워진다. 11세기의 「메로베」왕조때의 수도원 성당이었으니만큼 수도자들을 위한 내부구조다. 바른 편으로 돌아가면 성 「베드루」조도의 목조 동상이 서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발에 친구를 했던지 바른편 발이 왼통 반이나 닳아 없어졌다. 그 없어진 발을 첫과에서 금으로 잇발을 해끼우듯이 주석으로 입치 아닌 입족을 했는데 그 발톱이 땋아 다시 상한 베드루의 발이 노출되었다.
제대 뒤로 돌아가면 예수님의 성시를 십자가에서 내려노은 「삐에따」의 모상이 백색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 늑방은 얼마나 많은 부인들이 입을 대어 친구를 했는지 입술에 바른 「루우즈」가 옮아 왼통 선혈이 낭자한 듯하다. 딿아 움퍽 움퍽 파졌는데 수녀가 광주리를 들고 서있다. 동량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의 사랑을 애걸한다. 교회는 인류에게 성인을 애걸한다.
성당 밖으로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늙은 어머니의 애걸을 모르고 지난다. 두개의 세계가 서로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