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育(교육)] 사랑의 敎育者(교육자) 돈보스꼬
바람을 觀察(관찰)하는 纎細(섬세)한 努力(노력)
발행일1962-05-20 [제327호, 4면]
교육의 이론(理論), 발달된 교육사조(思潮) 그리고 날로 발전해가는 그 시설 등은 다른 부면에 비겨 결코 뒤떨어졌다고 할 수 없는데 청소년들의 실태(實態)는 조그도 개선되지 않는 느낌이다. 그 중요한 책임의 일단은 교육자들이 자진(自進)해서 전력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서슴치 않고 교육자의 거울(龜鑑) 성 돈보스꼬를 소개할 수 있다 그는 불멸의 귀중한 교육이론을 남겼기 때문이다.
사랑의 교육가 성 돈보스꼬는 청소년교육방법에 돤해서 또 스띠 추기경과의 다음 같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1858년 그가 처음 로마에 간 때였다.) 『각하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청소년을 교육하는데는 그들에게 먼저 신용을 얻어야 합니다.』
『글쎄 그 신용을 얻는 방법은 무엇이겠느냐 말입니다.』 추기경은 반문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을 가까이 해야하고 그러가면 스스로 아이들을 멀리하는 정신을 버러야지요』
『아이들을 가까이 하는 방법은?』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서 그들이 원하는데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그들과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실례입니다만 각하께서 원하시면 이론보다 실천을 -로마에선 어떤 곳에 아이들이 많이 모여놉니까?』
『아마 데루메광장이나 뽀뽀로광장 같은데이겠지』
이리하여 십분후 뽀뽀로광장에 도착하였다. 돈 보스꼬는 마차에서 내려 아이들 곁으로 가고 추기경은 차내에서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광장에는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돈 보스꼬가 가까이 가자 아이들은 도망치려 했다.
『??』 추기경은 여전히 창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돈 보스꼬는 자비에 찬 손짓과 친절한 말로써 그들을 불렀다. 약간 주저한 그들 중의 몇몇이 곁으로 왔다.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약간의 선물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가정과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단번에 함께 놀 수 있는 신부라고 여겼다.
『자! 같이놀자구나. 나도 함목 끼워주렴!』 그는 수단자락을 걷어 올리고 아이들과 같이 놀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고는 다른 곳에 놀던 아이들도 이곳에 몰려드렀다. 이렇게 재미있는 분위기를 조성해두고 간간히 기구를 하느냐? 성사를 받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조금 후에 돈 보스꼬가 그곳을 떠나려 할 때는 벌써 아이들은 서로 붙들면서 섭섭이 여기는 것이었다.
이것만으로 추기경에 보내는 충분한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단 15분간에 된 일이었다.
=교육가는 학생의 전 생활에 파고들라=
이것이 그의 중요한 못토였었다. 이와같이 능숙한 굥육가가 되기까지 결코 평이하고 단시일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살려가는데서만 참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학생들의 부주의와 과오를 일일히 수첩에 적었다.
그 자신에 관해서도 이 수첩을 잊지 않았다.
교육가로서의 돈보스꼬 전기작가의 말대로 그는 실로 불어 오는 바람까지도 관찰하기에 이르렀으며 모든 독단적인 것에 반대하고 마음과 도덕과의 수단으로서 감수성이 강한 아이들의 개성에 맞추어 자기자신의 일을 적당하게 꾸려나가도록 하였다. 이렇게 돈 보스꼬의 교육사상은 한걸음 한걸음 점진적으로 진보해간 것이었다.
돈보스꼬는 벌(罰)을 앞장세우는 금압적(禁壓的) 교육과는 반대로 악에 기울어지는 기회를 제거하여 중화시키고 동시에 기회를 경계하여 악의 근원으로부터 막고자 하는 것이었다. 현대의학과 같이 의약보다 위생을 중시한 것이다. 『주의하라 지금이 위험한 때이지만 너는 굳게 그것을 막고 이겨야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내가 곁에 있을테니 네 힘으로 부족한 것은 도움을 구해다오』 이것이 곧 돈 보스꼬의 예방 교육의 이상이다.
그때문에 돈 보스꼬의 교육을 우리는 사랑의 교육이라고 한다. 사랑은 교육의 가능(可能)을 충분히 보장해줄 것이다.
<聖者 돈 보스꼬 傳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