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만일 내 이름을 의지하여 성부께 무엇을 구하면 너희게 주시리라』
오늘은 기도의 생활에 대해 묵상하겠읍니다. 기도는 쉽게 말해서 천주님과의 대화이고 어렵게 말해서 천주님이란 절대적 존재와 인간이란 상대적인 존재와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종교 · 신앙 그 자체가 기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성총을 받지 않고는 절대로 구령할 수 없읍니다. 이 성총을 얻는 방법은 기도와 성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도 『이러므로 너희는 깨어있어 항상 기도하라』 (루가 21,36) 하셨고 바오로 종도께서도 『너희들은 기구에 항구하고 그 기구 중에 감사하며 깨어있을 지니라』(고로새서 4,2)하셨읍니다.
기되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육신의 호흡이 끊어지면 죽음이 오듯이 영혼의 호흡이 끊어지면 영혼의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냉담자가 되는 주원인은 기도를 하지 않는데 있읍니다.
하루는 어떤 해군 수병(水兵)이 군종 사제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읍니다. 『신부님! 군대생활을 하니까 조과도 만과도 바칠 수 없고 때로는 주일도 지킬 수 없으니 야단났읍니다. 그래서 점점 신앙이 약해지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하면 좋아요?』
많은 교우들이 기도를 바쳐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읍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조만과를 바치고 가끔 매괴신공을 마치고 주일날 미사 참례만 하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물론 조만과를 잘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조만과 가 기도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성세의 물로 씻겨진 아릿다운 천주님의 아들 · 딸입니다. 천주님의 아들 · 딸들은 언제나 천주님의 품안에서 떠나지 않읍니다. 우리가 언제나 천주님 품안에 사는 그것이 기도일진데 하루 24시간 우리의 일과는 모두 기도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당 안에서 묵주알을 굴려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온종일 우리의 과업을 충분히 하면서도 동시에 온종일 우리는 기도 속에 서 살 수 있읍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여 오늘 하루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 바치겠나이다』 이렇게 그날 하루를 오로지 천주님께 바치면 됩니다. 비유를 들어보겠읍니다. 진해에서 마산으로 가는 손님이 한분 계십니다. 그는 뻐스정유소에 나와 마산 가는 뻐스를 탔읍니다. 일단 마산을 목적지로 정하고 뻐스를 탔으면 그 뻐스는 마산으로 갑니다. 그 손님이 뻐스안에서 『나는 마산 간다 나는 마산 간다』 이렇게 하지 않고 옆에 있는 손님과 이야기를 하든지 책을 읽든지 뻐스는 줄곧 마산으로 달리고 있읍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아침에 오늘 하루를 천주님을 위해 바치겠다는 의향을 두고 출발하면 공장에서 일을 하든지 들에서 일을 하든지 군대에서 훈련을 받든지 한가지 한가지 모든 행동은 고스란히 천주님께 바쳐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매사를 기도화할줄 알아야 참된 그리스챤입니다.
교우 여러분! 현대인이라고 자청하는 많은 교우들이 신앙생활과 사회생활과를 띠어놓으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주일날 성당에 들어오면 교우가 되고 성당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는 벌써 교우가 아니지요. 직장에서 군대안에서는 교우가 아니던 그가 주일날 성당에 들어오면 비로소 성호를 긋고 교우행세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주일교우」가 되지 맙시다. 주일날에만 계시는 천주님이 아닙니다. 천주님은 어디서나 우리 앞에 우리 옆에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우리의 신앙 위에 건설해야 하고 기도생활 속에서 명심합시다! 결심합시다! 우리의 모든 시간과 정력을 오로지 천주님을 위해 바치기로!
우리는 오늘부터 한가지 좋은 습관을 기릅시다. 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주여! 오늘 하루를 당신 영광을 위하여 바치겠나이다.』 이렇게 첫 출발합시다. 틀림없이 천주님의 강복을 받을 것입니다.
朴道植 神父(鎭海2軍統制府 軍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