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15) 聖(성)스러운 反逆(반역) ②
미셀·까루우즈 原著
발행일1961-12-17 [제307호, 4면]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듀베리에>와 재회했다. <듀베리에>는 마침 모록코에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후꼬오>가 모록코에서 모은 정보를 보충하기 위하여 「리프」까지 가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1885년 1월9일 지리학협회의 대회의(大會議)가 있었다. <모노왈>씨는 이 젊은 탐험가에게 금메달이 수여된다고 알렸다.
『<드.후꼬오>씨는 조금 전까지도 이곳에 있었읍니다. 아마 겸손하느라고 어딘지 구석으로 가서 숨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주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매우 크나큰 미래를 약속하는 유망한 여행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4월24일, 「스에스」운하의 건조자(建造者), <휄드낭.드.레셉트>의 주최로 협회의 본 회의가 열렸다.
<듀베리에>도 마침 그곳에 있지 않았었다. 그는 「휏쯔」에로 향하는 도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열의에 가득찬 일편의 「레뽀오트」를 남기고 갔으므로 그것이 참회자(參會者) 앞에서 낭독되었다.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드.후꼬오>씨 이전에는 제도공(製圖工)들은 대단히 불확실한 위도의 측정과 더욱이 불확실한 경도의 측정으로서 마음대로 1만2천2백8키로메타의 도정에 표식을 세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천문지리학을 제국 내부의 약 20정도의 방위표식에 의하여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1883년, 6월20일부터 1884년 5월23일까지의 11개월 동안에 <드.후꼬오> 자작이라는 다만 한 사람의 인간이 세밀하게 모록코를 측정하여 길이를 적어도 두 배로 하였다. 그는 선인에 의한 6백89키로 메타의 도정을 완성하였으며 새로이 2천2백50키로메타를 더 붙혔다. 천문지리학에 관해서는 그는 위도 40도와 위도 45도를 측정했다. 그리고 우리가 수심의 단위로서 밖에는 고도를 측정할 수 없던 곳에서 그는 3천의 고도를 측정하였던 것이다. 아시다싶이 이것은 <후꼬오>씨의 혜택으로 모록코의 지리적 인식에 열여진 전혀 새로운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듀베리에>와 마찬가지로 <후꼬오>는 이 기념할만한 회의에 출석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알제리아」에 돌아왔으며 그 곳에서 또다시 작품의 편집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1885년의 여름동안 그는 경한 장질부사 같은 병에 걸려서 「튜케」에 돌아가 그곳에서 요양생활을 보냈다. 그는 일도 외출도 전혀 못했다. 기나긴 하루를 그는 자기자신과 마주앉아 있었다. 그는 별로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옛날 「소뮤르」에 있어서의 82호실과 같이 그의 「튜케」의 방에는 은밀한 경이가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안내자 없이 왕래하는 「지롱드」지방의 평온한 포도밭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 <후꼬오>의 눈 아래에서는 아프리카의 태양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조개껍질 속의 바다의 울붖음과 같이 그는 사면이 고요한 속에서 자기 귀가 「부유쟈」나 「티이쟌」의 야자나무가지의 속삭임으로 울리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 시대의 태조와도 같이 아름다운 <시디.벤.타우드>의 기품있는 얼굴과, <시디.에드리스>와 <부우람>과의 이별을 다시 한 번 회상하였다.
이와같은 사람들은 하루 5회씩 있는 예배시간이 되면 너무나 비천한 일상생활의 모든 근심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지고자」(至高者)의 앞에 엎드리는 것이었다.
『아라프으·아 봐아르』(신은 가장 위대하신 것) 이렇게 그들은 말한다.
그리고 <샤르르.드.후꼬오>는 전율하는 것이었다. 그에게서 멀지 않는 마을의 교회 속에서는 종자매인 <마리>가 기구하고 있었다. 그들는 아프리카인이고 회고도이며 그 여인은 프랑스인이고 가톨릭신자였다.
조금 전에는 <후꼬오>는 제종교간의 대립은 그들의 공통적인 부정을 의미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여행 이전의 일이었다. 바다의 양 편에서 신자들이 기구하는 것을 본 지금으로서는 그는 이제는 그때와 같이는 생각하지 않았다.
「멕카」의 순례자들이나 「볼도오」 지방의 소교구의 소녀에게서 우선 유일한 주인 지고자와 아브라함의 신에 대한 신앙과 찬미의 부르짖음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꼬오>는 즉시 굴복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느듯 보이지 않고있던 것이 보였다. 이미 불에 타버린 제밖에 없던 곳에 그는 타오르는 관목의 숲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저항했다. 어떠한 길을 택할 것인가. 그는 자기 주변에서 모든 것이 변해가는 것을 보았으나 그 자신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신자들의 신앙의 이 비극적인 공통성과 대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모록코에서 회교도들의 신앙을 앞에 두고 희교에 끌리게 됐다고 하는 것은 아마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모록코의 한복판에서 <마흐멧트>의 제자인 동무를 옆에서 그는 그들의 마음의 속삭임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와같은 밤의 잠심 속에서 저 신비적인 밤에 대한 아라비아인들의 신앙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밤은 하늘은 반쯤 열리고 천사들도 땅위에 춤추며 내려오고 한없이 넓은 해변은 죽은듯이 조용하여 자연계 속의 생기 없는 모든 것들이 창조자를 찬양하기 위하여 업드려 절한다』
천공은 신의 영광을 말한다고 시편은 노래한다. 피조물 가운데 있는 『창조되지 않은자』의 감초여있는 현존을 느끼기 위해서는 회교도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스도교를 내버린 청년시대에 있어서도 그는 우주의 소리 없는 음악소리를 알고 있었다.
『이 고독의 적요, 나는 20세 때부터 곧고을 느낄 때마다 이것을 느겼었다.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더라도 나는 서적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앞에둔 고독을 사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너무나 조용하기 때문에 고독하면서도 결코 외톨이 아니라고 느낄 때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밤과 침묵의 모티브는 거리의 등불과 소음보다 훨씬 초월한 것이었으나 그것은 하나의 길이기는 하나 목적은 아니며 하나의 질문이기는 하나 대답은 아니었다. 광명과 계시의 말은 저편 멀리에 있었다. 대답 없는 고독의 저편에는 신과의 대화가 있다. <후꼬오>의 친구인 회교도들이 예언자들의 말을 부르짖어서 그에게 기억을 새롭게하고 <마리>는 「로고스」(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그에게 또다시 반복했던 것이다.
「지롱드」지방의 「튜케」의 평온한 방속에서 몇 시간이고 <후꼬오>는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앞에 전개된 덕의 세계와 신앙의 세계가 조금 전의 아프리카의 그것과 같이 심연에서 솟아올라 왔으나 그는 그리스도교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기 혼자서 이교적이라고 이름부친 일종의 덕을 가져보려고 고집했다.
그래서 전부터 애독하고 있던 고대 희랍과 로오마의 작가들을 탐독했으나 그는 거기에서는 그가 원하고 있는 영혼의 휴식은 찾지 못하고 『공허와 혐오』를 찾아냈다. 또다시 그는 그리스도교의 서적, 아마 <보수에>의 (그리스도교회) 『신비』을 손에 들고 거기에서 교회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영적 양식을 얻어보려고 했다. 그는 급속하게 생명의 신비적 의의를 재발견하기는 했으나 신에게 대한 신앙 앞에 아니 그보다도 신의 아들에 대한 신앙 앞에서 주저하였던 것이다.
하나의 그리스도 신자로서 이와같은 분열은 기묘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 신자는 동시에 신에게 대한 신앙과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모든 것을 귀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종자에게 있어서는 가령 그가 나서 바로 세례를 받은 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천주의 아들이 오시기 전까지에는 <아브라함>에서 <요안> 세자에 이르기까지 다만 하나이신 천주께 대한 2천년의 신앙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유데아의 대중은 구세주를 내버리고 말았다.
이 19세기 말엽에 있어서는 고래의 그리스도교 제국의 광대한 지역을 덮을듯한 무신론의 파도가 맹열히 공격해 왔으므로 그에 못지 않는 이교에의 호응의 큰 파도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로디이>와 <바레스>와 같은 그의 많은 친구들도 <후꼬오>와 같이 회교도의 신앙의 힘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도의 매력을 알게 되었던 것일까. 이것은 빠지기는 쉬우나 쉽사리 빠져나올 수는 없는 거대한 미로인 것이다.
단지 하루동안에 「부우·아마마」의 공격은 <후꼬오>를 전우로서 전장에 이끌어낼 수 있었으나 그리스도교의 신앙심은 단 하루동안에 재발견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