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련 <후> 수상이 교황성하께 탄신하례(賀禮)를 드린 것은 저명한 시사해설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뿐 아니라 12월에 들어서면서 미·쏘간의 각종 협상(協商)의 기운(氣運)은 이것으로 동·서간의 냉전(冷戰)은 전례없이 화해를 가져오게한 감을 준다.
이것을 크게 본다면 「쏘벹트」 공산주의가 공격으로 나오느냐 혹은 방위적으로 답보하느냐는데 달려있는 것으로 본다. 우리는 아직도 <후> 수상의 정치적 「제스츄어」와는 달리 경계할 여지가 많은 줄 안다. 쏘 정부가 발표한 1962년도 예산 총액을 보면 이것은 기록을 깨뜨린 숫자이다. 그 중 국방예산은 전년도의 50% 이상인 것이다. 지난 7월 「베르린」 위기가 한창인 때 <후> 수상은 국방예산의 증가를 절_한 일도 있고 해서 크게 놀랄 것은 없다. 그러나 50_ 이상으로 격증시킨 것은 예상을 넘어선 것이다. 1962년 그 총예산 규모는 819억「루불」이다. 이것은 <가르조프> 재무상이 쏘련의회에서 설명한 것이다. <가르조프>는 1962년 국방예산은 134억「루불」 또는 16.7%의 증가를 보게된 것이라고 했다. 작년도 즉 1961년도의 그것은 92억2천「루불」이었다.
쏘련 「루불」과 미화 「딸라」의 공정환율은 1「루불」당 1「딸라」 22센트 1~1.22인 것이다. 국방 예산은 비상준비금을 설정해두고 있으므로 이런 경상비만으로는 그 규모를 알 수 없다. 또 이것을 미국의 국방예산과 비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쏘련의 국방예산이 50% 이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것이다. 쏘련의 국방예산이 이런 사실을 입증하거니와 <후> 수상은 또다시 백「메가톤」 핵실험을 호언하고 있어 낡은 공갈수법을 되풀이하고 있는 형펀이다. 허나 앞에 지적한데로 동서간의 협상기운(氣運)이 구체적으로 성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르린」 문제를 필두로 또 한 해를 넘겨야 할 동·서간의 문제가 모두이다. 그것들은 아직까지도 한 실험기구(氣球)로 봐서 무난하다. 실험기구 그 자체보다는 그 주위(周圍)의 제반 사정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주변의 사정이 훨씬 평온해졌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 <요안> 23세 성하께서는 성하의 여섯번째 회칙(回勅)인 「에때르나 데이 사삐엔시아」(천주의 영원한 지혜)를 반포했다. 이 회칙은 성 <레오> 교황을 기념한 것이며 461년 그 당시 정치 및 사회상태를 회상시키고 있다. 그리고 세기적 과업인 공의회 소집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종도로조차 나려오려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정식으로 비(非)가톨릭 모든 그리스도교의 공의회 참석을 종용한 것이다. 국제정세와 이번 새 회칙의 반포는 결코 우연하다고 할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