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레헴」에서의 그리스도의 탄생이 마치 새싹처럼 벌써 세상의 구원을 내포한다면 그것은 강생이 구원의 목적에서 오는 까닭입니다. 천주의 아들이 우리를 구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십니다. 우리는 종도신경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조차 나려오셨다』고 노래합니다. 성탄 전야 미사복음에 천사가 이 사실을 <요셉>에게 고하고 자정미사 복음에서는 목동들에게 이 사실을 고합니다.
구세주 천주의 인간적 탄생은 구원이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이 있읍니다. 구세주께서는 당신 피값으로 우리를 비싸게 사들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와 친밀히 일치해야 하고 우리를 당신 몸의 지체처럼 생각하셔야만 되었읍니다. 그래서 성 <레오> 교황께서 머리 되시는 이의 탄생은 왼지체의 탄생도 된다고 설명하시면서 구세주 강생을 축하하면서 우리의 초자연 생명으로의 재생을 기뻐한다고 하셨읍니다. 인류의 개혁(改革)은 강생 그 자체에서 이루어졌다고 교부들은 가르쳤읍니다.
성탄 둘째미사 성체 후 축문은 탄생으로 묵은 사람을 압복하셨으니 새 생명으로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하고 셋째 미사 축문에도 천주의 외아들이 인성을 취하사 새로나심을 인하여 우리로 하여금 묵은 죄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고 우리 자신이 젊은 선으로 돌아갈 것을 주의 탄생에 돌려 보냅니다. 만일 창조주가 창조물과 일치하시기 위하여 당신을 낮추지 아니하셨고 묵은 인류를 당신 탄생으로 새로운 생명에 다시 부르지 아니하셨다면 죽음이 <아담> 때부터 세상 마칠 때까지 왕하였을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으로의 우리의 재생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직접으로 관계가 있다면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은 영세의 재생이란 모상의 원형(原型)이 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구속이 강생의 순간부터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당신 인간존재 첫 순간부터 우리 구원의 공로를 세우셨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든 인류가 은총 안에서 재건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사생활과 공생활의 공로는 수난의 속죄적 공로와 합하지 않으면 그 효과를 발생할 수 없읍니다. 「빠스카」의 희생만이 주님의 이 전행동과 수난에 포함한 구원의 가치를 결정적으로 거룩하게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전례는 성탄의 신비를 부활의 신비 안에서 거행합니다. 이러한 전망에서 성탄은 구속의 축일처럼 생각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성탄은 부활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상생활은 부활의 신비의 마지막 깊이에서 우리의 신앙을 열어줍니다. 우리를 죽음과 부활로써 구속하신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신 천주의 외아들이십니다. 거기서 당신 구속의 공로의 무한한 가치와 사제적 중개의 탁월성과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기신 높은 효능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이것이 결국 성탄을 구속의 첨례처럼 지내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이 거룩한 밤미사에 교회가 『너는 내 아들이니 나-오늘 너를 낳았노라』(초입경 「알렐루야」) 『네 능력의 날에 네게 권세-있도다 성인의 영광 중에 샛별있기 전에 나-너를 낳았노라』(층계경)하는 구세주적 성영을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마리아로부터 나신 구세주 천주 예수는 다만 천주 성부로 말미암아 나셨읍니다.
셋째미사의 두 독서는 우리 구원의 천주시오 인간이신 당사자 위에 우리의 신앙을 집중시킵니다. 『천주 당신 아들로써 우리에게 말씀하셨도다 저는 천주의 영광의 광채시오 천주의 본체의 모상이 되사 당신 권능의 말씀으로써 만물을 붙드시고 죄를 씻기시며 높은데서 엄위하신 자의 우편에 좌정하시는도다. 천주-일찍 어느 천신에게 「너는 내 아들이니 나-오늘 너를 나았노라」고 말씀하셨나뇨』(헤브레아서 1장 2-5) 『이에 말씀이 강생하야 사람이 되사 우리 사이에 거쳐하신지라 우리가 그 영광을 보매 곧 천주의 독생성자의 당연한 영광이오 또 성총과 진리가 충만하시더라』(요왕 1장 14)
만일 성탄축일이 구속의 시작을 뜻한다면 그것은 완성도 또한 뜻합니다. 그리스도 구속사업의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을 재건하는 것이오 우리를 천주의 아들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성탄 8부내주일 서간경).
영원하신 성자의 인간적 탄생은 말하자면 우리의 초자연적 부자관계의 초월한 원형(原型)입니다. 이것이 제삼미사 복음에 읽는 <요왕>종도의 교훈입니다. 『본따에오시되 그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고 그러나 무릇 그를 영접하며 겸하여 그 이름을 믿는 이에게 능을 주사 곧 천주의 자녀가 뛰게 하시니 이런 자는 혈기로 조차 남도 아니오 육욕으로 조차 남도 아니오 남자의 정욕으로 조차 남도 아니라 오직 천주로 조차 남이니라』 이렇게 우리는 셋재미사 초입경에 『영해가 우리에게 나시니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이로다』하고 노래 할 수 있읍니다. 밤미사 재를 위해 울리는 기도 가운데 교회에서 원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이 되신 천주의 아들에게 완전히 동화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체가 너와 한 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아오니 빌건대 우리로 하여금 네 풍성한 은혜를 이 신성한 관계를 인하야 저와 합치케 하소서』(묵념축문)
성탄은 또한 그 전례의 말세적 사상으로 우리 구원의 완성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해마다 거행하는 강생의 신비는 세상 마칠 때 구원의 신비가 완성될 영광의 내림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고대하는 장림절 주간이 끝나면 성탄은 주의 재림의 표시 그리고 담보(擔保)처럼 나타납니다. 성탄 전야 미사 축문은 『네 독생자를 우리 구세주로 즐겨 영접하는 우리로 하여금 또한 네 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심판장으로 임하실 때에도 두려움이 없이 보게하소서』하고 구속자의 내림과 심판자의 내림 사이에 대조를 이루어줍니다. 성탄날 우리를 위하여 자헌하신 우리의 대주(大主) 천주 구세주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남을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볼 것입니다. (밤미사 서간경)
성탄은 그의 재림의 담보로 주어졌읍니다. 주의 면전에서 하늘은 즐거워하며 땅은 용약할지니 대저 저 임하시는 도다(밤미사 제헌경).
구원의 신비의 모든 과정은 둘째미사 서간경에 축소되어 있읍니다. 구세주의 탄생 가운데 천주의 인자와 인정이 나타났고 재생케 하시는 세와 성신을 우리에게 풍성히 태어주사 우리로 하여금 그 성총으로 의인이 된 후에 희망대로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영생의 상속자 되게 하셨읍니다. 한말로 모든 주일처럼 「빠스카」의 신비가 전례 가운데 현실되는 것이 성탄입니다. 사실 성체의 제사를 거듭하는 부활의 신비가 모든 축일의 산 중심이 아닙니까. 성탄날엔 미사가 세대 올려집니다. 그러나 주년의 모든 축일은 부활의 신비가 교회로 말미암아 거듭되는 그대로 거행되는 것입니다.
성탄이 우리의 신앙에 사랑과 희망과 즐거운 찬미의 샘을 주는 것이라면 어떠한 점에서 구원의 신비가 천주 성자의 지상적 사명과 그의 처녀 몸에서의 탄생 가운데 마치 새싹처럼 포함되어 있읍니다.
申相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