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수필] 성탄과 演劇(연극)
발행일1961-12-25 [제308호, 6면]
성탄 때가 다가오면 나는 언제나 연극 생각이 난다. 어렸을 적부터 성탄 때면 연극을 했고, 또 그러다가 결국은 연극쟁이가 되려고 「극예술 연구회」 회원 노릇도 했고 「드라마티스트」가 되려고 1930년대 전후 해서는 연달아, 『뒤집혀진 3각형』이니, 『마장』(磨雀)이니 『꿈』이니 하는 희곡을 신춘문예 당선 작품으로 내놓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동기로 영문학 전공을 서양사 전공으로 바꾸고, 연극에 대한 마음 속의 불을 끄려고 무척 애쓰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연극에 대한 인연은 좀처럼 나하고 멀어지지가 않았다. 해방 후 성신대학 재직시에 하루는 철학과 급장(현 가톨릭시보 사장 장병보 신부)이 찾아와서 『안드레아 김신부』 연극을 대신학교에서 일반 공개로 할테니 극본을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당시의 성신대학장 장금구 신부가 신학교 개역 이래의 대영단을 내리셨던 것이다.
신학생들의 공개연극? 몹시 흥미가 있고 구미가 당시는 일이라 꺾었던 희곡붓을 다시 들고 서투른 『서학란』(西學亂)을 썼다. 극본은 졸작이었으나 대신학생들 중에 워낙 재주군들이 많아 연출에서, 조명, 장치, 의상 효과에 이르기까지 1백「퍼센트」 수공업으로 자급자족을 어떻게 잘했던지 수천명 관중들에 깊은 감명을 주는 성과를 걷우었다.
지금 쟁쟁하신 서울교구 당가 겸, 성모병원장 박희봉신부는 그때도 이름난 명배우로 주인공 <안드레아>역을 숨찬 연기로 해치웠었고, 현 가톨릭대학장, 소신학교장, 신학교 교수 신부님들, 그리고 서울의 김덕제, 김창렬 신부님들 대구의 장병보, 제찬규, 이 <히지노> 신부님들의 대열연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신학생의 『서학란』 공연은 물론 성탄 때가 아니었으나 그 후 여러 지방에서 이 극이 성탄 때 연출되었던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필자가 혜화동 청년회장직을 맡아 볼 때 본당 행사로 『성탄전야』란 엉터리 희곡을 꾸며서 자작자연을 다 해 본 일이 있었다. 필자가 무대에 나선 것은 그 때가 마짐가이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아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부끄럽기 한이 없다. 다만 화가 조두영 형의 열성과, 국어교수 김병찬 형의 열연이 어찌나 관중에 감격을 주었던지 간신히 그 연극은 내놓은 보람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어언간 12년이 지났다.
머리에 서리는 더욱 희어가고, 장엄한 인생의 「드라마」 속에서 가장 서투른 「피에로」적 존재로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는 느낌만이 더욱 짙어가는 성탄이 또 다가온다.
그러나 순전히 「아마튜어」에 의한 소박한 선탄극에 대한 「노스탈지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찬란한 근대극의 개막이 중세의 부활절과 성탄절의 교훈적이고 도덕적이고 오락적이었던 종교극의 연장으로 피어나온 것처럼, 한국 가톨릭 문화의 발전도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이 성탄 축하 행사를 위하여 무엇을 창안해내는 버릇을 들임에서도 크게 나타날 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다.
더욱이 20세기 후반기의 지독하게 상업화된 성탄 축하가 모든 사람의 정서 관념을 좀먹어가는 이 마당에서, 그리고 건전한 오락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매말은 농촌 본당이나 공소에 있어서, 해마다 그래도 성탄 때이면, 아무리 미숙한 연기와 수공업적인 장치를 가지고라도, 거룩한 밤 고요한 밤을 즐길 수 있는 무슨 「아마튜어」극이 한 두어 시간쯤은 성당 구내에서 벌어졌으면 꼭 내 마음이 흐뭇할 것만 같다.
만왕의 왕이신 천주 성자는 비천하기 짝이 없이도 구유에 누어 계셨는데, 구유 없는 「크라스마스 트리」에 5색이 영롱한 찬란만을 장식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박봉의 시골 교감부인이 6남매 자녀와 함께 스스로 삶을 하직하여야 되는 민족의 찢어진 가난 가운데서, 통행금지 해제를 철야의 주연과 소란으로 악용해본들 또 한해 예수 애기만 헛되이 말구유에 누어 계시는 셈밖에 안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정서 교육과 도의 앙양은 두 가지가 아니라 한 뿌리에서 나와야 할 것이 마땅하며, 그것은 종교를 떠나서 다른 아무데서도 아무리 구하려해야 구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정신을 차려서 성탄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하나는 속된 상업화된 성탄 축하의 유행을 막기 위하여, 또 하나는 감정의 순화화 도의의 앙양을 널리 계몽하기 위하여서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하여 나는 성당에 다니는 어른들이나 학생들이나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나 다 같이 성탄극을 하는데 좀 더 열을 내고 힘써주었으면 한다.
세상이 점점 더 어려워가고 속되어감을 따라, 본당에서도 점점 모든 행사가 귀찮고 웃으깡스럽고 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시야를 널리하여 보지 못하는 탓인지? 혹은 그런 짓은 안해도 성당이 넘쳐 흘러서 못견딜 판이라고 약간 안심이 되어버린 탓인지.
(筆者=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