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
발행일1961-12-25 [제308호, 8면]
고요한 밤이외다
밤이라도 자정이외다
추운 겨울 밤이외다
고요히 눈 나리는 밤이외다
산과 들과 마을에
천지가 하얀 밤이외다
그믐인데도 하얀 밤이외다
한 없이 고요한 밤이외다
밤 같이 고요한 밤이외다
2.
산도 들도 마을도
밤 같이 고요히 잠을 자는데
여기 이 오양간에는
여윈 등불이 깜박입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고요합니다
양과 소와 말과
짐승들도 숨을 죽이고 있는데
추운 겨울 밤이외다
밤이라도 자정이외다
고요한 고요한 밤이외다
3.
아기가 울었읍니다
말구유 안에서 울었읍니다
우리들 모두가 세상에 날 때
우는 것처럼 울었읍니다
슬퍼서가 아니외다
기뻐서가 아니외다
우리들 모두가 세상에 날 때
우니까 아기도 울었읍니다
그러므로 아기는 우리 아기입니다
우리 아기가 울었읍니다.
4.
얼마나 추웠겠읍니까
동지가 지난 겨울입니다
겨울이라도 밤중입니다
넓은 뜰 오양간입니다
말구유 안이 아니오니까?
고사리 같은 손이 얼겠읍니다
발은 또 짚으로 덮었으나
얼마나 추웠겠읍니까
소도 입김을 뿜어 줍니다
아아 얼마나 추웠겠읍니까
5.
아기는 정말 추웠읍니다
그러나 추워서 운 것은 아닙니다
따뜻한 어머니의 품도 있었읍니다
품에도 아기는 안겼읍니다
그러나 아기는 울었읍니다
세상에 모든 아기가 날 때
우는 그 울음을 울었읍니다
세상의 모든 아기와 같은
아기라도 이렇게 추웠읍니다
우리들 가난한 아기들보다
얼마나 얼마나 더 추웠읍니까
6.
아기는 울기만 하지 않았읍니다
아기는 고요히 잠도 잤읍니다
조울려서 잠을 잔 것이 아니외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자다가 울다가 하는 것처럼
자는 아기는 우리 아기입니다
천만년을 지나도 우리 아기입니다
다만 하나
오양간 위 드높이 하늘에
크고 밝은 별이 떠 있읍니다
왼 세계를 비최는 별이 있읍니다
1961 섣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