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민속
그리스도적 정신과 救主 탄신일 축하
그것도 『감미로운 환희 속에…』
발행일1961-12-25 [제308호, 8면]
【성탄주간】 聖誕樹 点火
중세기의 성탄주간은 신자가정에서 거룩한 때라고 하는 특징을 가졌다.
많은 종교적 풍속이 지방적으로 수입되었다. 시골 사람들과 짐승들을 위하여 그것은 중노동에서 멀리하고 쉬는 계절이였다.
그리하여 많은 때를 기도하고 종교적 신심생활 하는데 보내었다. 또한 신자가정이 매일밤 매괴신공을 드리고 혹 성탄노래를 따른 다른 신심업을 하는 동안 성탄수의 불을 켜는 풍속이 많은 지방에 있다.
성탄부터 공현절까지 밤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성탄의 노래를 부르는 옛 전통이 있다. 한 가지 매우 보급된 풍속은 성탄역사의 사실을 회상하면서 종교극을 연출하는데 있다. 남독과 오지리에서 이 극이 시골 지방에서 아직도 연출되고 있다.
【성 스데파노】 말의 주보
옛날에 이 성인은 말(馬)의 주보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지만 그 관계가 아마 옛 「겔만」 풍속이 말을 위한 제사를 위하여 동지 다음날을 택한 사실에서 나왔을 것이다. 역사적 이유야 어떠하건 이날 아직도 시골 사람들은 성당까지 말을 끌고 와서 미사 후 사제로부터 특별한 강복을 받는다.
【요왕종도】 保護酒
성 <요왕>의 사랑이라 불리는 술을 강복하고 마시는 습관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성인이 독약이 든 술을 마시었으나 해를 입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이 경문은 교회의식서에 있다. 성 <요왕>의 술은 일년동안 집에 보존한다. 혼배할 때 신랑 신부가 교회에서 돌아와 그 술을 마신다. 그것은 또한 여행자들을 위하여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생각해왓다. 그래서 먼 여행을 하기 전에 보호를 구하고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술을 마신다. 마지막 성사를 받은 임종자에게 한 목음 마시게 한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영혼을 힘있게 해달라는 뜻으로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마시는 것이다.
【저성영해치명첨례】 어린이 주교
11세기 이 날은 수도원과 주교좌 성당에 있는 생도와 보미사 아동의 축일이였다. 생도들과 보미사 아동들의 주보성인이였던 성 <그레고리오>의 영광을 위하여 3월12일에 전에 직혀 오던 풍속을 이날로 옮겼다. 한 사나이가 이 성인 노릇을 했다. 이것이 소위 「어린이 주교」의 중세기 풍속의 기원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날 「만우절」과 같은 날이 되어 많은 난동이 있었기 때문에 14세기에 다시 이 풍속이 12월6일 성 <니고나오> 첨례날로 옮겨졌다. 차차 아해들의 성 「그레고리오화」로 넘어갔다.
많은 나라에서 어른들이 주교의 노릇을 하였다. 그래서 어른이 성 <니고나오> 대신에 그 첨례 전날 아해들을 방문하였다. 이 아름다운 풍속이 많은 지방에서 성 <니고나오>의 전야제를 낳았다.
【신년】 강복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많은 통속적인 신심을 일으켰다. 시골에서는 많은 가정이 매괴신공이나 다른 기도를 올리면서 그 순간을 보낸다. 모든 교회의 종은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울린다. 「비엔나」의 「성」 <스데판> 돔에서 종을 울리는 풍속이 유명하다.
불란서와 「가나다」에서는 가족을 강복하는 옛부터의 풍속이 있다. 가장이 무릎을 꿇고 있는 가족의 이마에 십자성호를 끗는다. 구라파 다른 나라에서도 자시(子時)에 부모가 아해들에게 십자를 끄어 천주의 강복을 증거해준다. 부모가 아해에게 강복 주는 습관이 일년을 통하여 여러 기회에 실천한 것이 종교개혁 이전 많은 나라에서 보편화된 전통이였다.
【성 실베스델】 定婚 뽑기
묵은 해가 가는날에 거행되는 풍속이 많은 나라에서 「실베스델」이라 불렸다. 그날이 성인의 첨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이전에 그날 밤에 새해가 가지고 올 것을 알아내기 위해 점치는 장난을 한 것이다. 젊은 처녀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결혼해 줄 젊은 남자를 발견하기 위한 표를 찾았다. 이러한 예언은 자연적으로 성 <실베스델>과 관련이 있었다. 그것이 다만 이단적이라기 보담 기독적 실천의 성격을 주었다. 그래서 젊은 처녀들이 좋은 배필을 구할 수 있도록 성인께 구한다. 이런 습관이 속화되어 「비엔나」의 『성 스데판』 「돔」 앞에서나 「뉴욕」의 「타임 스퀘어」 앞에 「성 실베스델」의 밤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 같다.
【공현일】 "방" 붙이기
집을 강복하고 박사의 이름을 문에 기입하는 습관이 이날 거행된다. 예컨데 1961년 공현(公顯)날 집을 강복했다면 세 박사의 첫 이름자를 따서 아래와 같이 문턱에 기입한다. 『19 M.B.G.61』 그리고 동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기념하기 위하여 물을 강복하는 것이다.
삼왕뽑기
많은 구라파 나라에서 이날 특별한 「빵」을 만들어 그속에 콩같은 것을 넣어두었다가 중식을 위한 특별 모임시간에 그 「빵」을 나눈다. 콩 든 것이 자기에게 닥치면 왕이 되는 것이다. 거리, 「빵」 파는 점방, 진열장에 「빵」과 금박을 한 종이로 만든 왕관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사에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애덕의 정신을 발견한다. 예컨데 불란서에서는 나누는 「빵」 옆에 주님을 위한 큰 「빵」 쪼각을 두고 축하 후에 그것을 가난한 자에게 준다.
【전례적 시즌 꽃】 성탄수 태우기
성탄절은 공현날로 완료한다. 그러나 세기를 통하여 구유와 「데꼬레슌」이 성모치결례첨례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시대 가톨릭 가정에서는 성탄수가 공현일에 켜지고 그날 아침에 도착한 박사들과 함께 구유 앞에서 한 번 더 기도를 올린다. 1월7일날 성탄의 「심볼」과 장식을 제거하는 것이 보통인 것 같다.
아해들은 성탄수와 구유를 해체하고 석고상과 장식물을 포장하고 다음해를 위해 그것을 정리하는데 도와줄 수 있다. 나무쪼각과 푸른 잎과 가지는 난로에 불지르거나 부모와 아해들이 마지막 성탄노래를 부르는 동안 1월7일 밤 공중에 기쁜 불을 피울 수 있다. 그리고 성탄 때 주신 모든 은총과 기쁨을 천주께 감사한다.
결론
성탄 민속의 수많은 그리고 여러 가지 습고나을 상기했는데 그것은 성탄이 우리 주님의 생일을 기념한다고 하는 사실 위에 합한다고 하는 것이 명백히 나타나야 한다. 남아있었던 외인들의 축일이나 습관의 흔적은 그의 본뜻을 상실하였고 완전히 그리스도화 되지 아니한 거기 「그리스디아니즘」의 위대한 축일과 외적 또는 유기적(有機的) 관련성을 적어도 가지고 있다. 지금 모든 것이 민속은 장림과 성탄의 전례적 행사에서 나왔다고 하는 뜻을 거기 나타낸다. 한 말로 기독적 모든 우리 습관의 목적과 뜻은 복자 <헨리 수우조>의 노래 가운데 예수 영해께 비친 아래와 같은 짦은 말속에 포함된다. 『감미로운 환희에서』(in dulci inbi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