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와 思想界(사상계)
두가지 熟考(숙고) 할 일
公議會(공의회)와 오늘의 思想界(사상계)
발행일1962-06-10 [제330호, 4면]
■ 公議會와 現代
공의회는 신(神)의 말씀을 새로운 방법으로 그 시대에 통용(通用)되게 하는 그러한 필요에서 오게된 것이다 물론 공의회의 결정은 모든 시대에 통용된다. 이것은 시대의 제약(制約)을 받은 역사적인 언어(言語) 가운데도 타당한 진리를 구체화 해두고 있음과 같다. 허나 그안에는 특정된 시대적 면모(面貌)가 있고 그때의 사상 및 사상의 한층 명확한 표현 그리고 어떤 언어의 발명을 요구한다. 그런 언어는 교회의 항산(恒産)이 되고 또한 그런 사상과 언어가 교회의 것이었던 시대를 기념케 해준다.
인간이 전단(專斷)하는 지성을 그리스도를 위해(코린토 後 10의5) 복종시키고 포로를 삼으며 그리하여 교회의 새론 정신적 성장과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성장의 양(量)에 이르게 한다.(에페소 4의 13)는데 공의회이 사명이 있다면, 이번 공의회는 현 교황의 교회의 ACCIORNAMENTO(現代에의 適應)에 그 임무가 있다고 했음과 부합된다.
그때문 공의회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오늘의 사상계를 면밀히 검토하고 복음서의 등불을 모말아래 두지 않고 이 사상계에 높이 올려 현대라는 집 안에 살고 있는 뭇사람들에 그 빛을 던져주는 일이다. (마두 5의 15)
■ 第1次 바티깐 公議會 以來의 思想變遷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공의회가 변명해야 할 오늘의 사상계는 과연 어떤가? 쉽게 과거를 회고해보자. 제1차 바티깐 공의회로부터 백년을 경과했다. 세계사에 비긴다면 얼마되지 않겠지만 그간 역사의 광란(狂亂)하던 템포에 비긴다면 그렇지도 않다. 그 당시의 자유라는 별(그것은 凶星이라고 함이 좋으리라)이 꽃피어 오를 때였다. 자유주의는 정치를 지배하고 경제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신학에 있어서는 차츰 분명해진 역사주의(歷史主義)의 단독지배 아래 개가(凱歌)를 올렸으며 그것은 가톨릭신학 내부에 들어와서 모델이즘이란 명목으로 역사 안에 파고든 위기(危機)를 통과하기에 도달했다. 신학 및 시학에 불가결한 건전한 철학의 부흥은 계몽사상에 의한 대동요(大動搖) 후에 즉시 개시된 바이지만, 그것은 자유주의 공격을 감당하는 정도였고 주리주의(主理主義)와 신앙철학의 양극단 간에 그 아무것도 극복해 넘기지는 못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호이엘박흐 그리고 헤겔의 철학은 시대의 문을 심히 흔드는 유물론(唯物論)이었다.
만일 그 소리만을 듣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현대적인 것으로 여겨질런지 모른다. 허나 그로부터 사태(事態)는 더욱 변했다. 이태리의 자유통일운동은 그당시 제1차 바티깐 공의회가 개막중이었을 때 국가-교회간의 주변(周邊)을 몹시 흔들엇지만 그러나 천년을 지켜온 교황령은 항상 엄연히 서있었다. 이런 일은 다른 가톨릭세계에서도 일어났다. 프랑스는 세속주의의 승리와 국교분리를 체험했고 독일서는 군주정치의 와해로 교회의 정치적 입장에 중대변화를 가져옸다. 라띤 아메리카제국서는 교회의 공적 활동을 축출하려했다. 한편 대세계관계(對世界關係)를 가지게 되는 북미 가토리시즘은 세계전체에 중한 비중을 가져왔다.
이렇게 근 백년간의 가토리시즘은 대세계 관계에 있어서 본질적은 아니지만 그 구체적 형식의 주요부분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인류의 정신 · 물리(物理) 생활에 상처를 입혔다. 1차대전은 지금까지의 자유주의 형식에 종지부를 찍은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
자유주의의 전락(顚落)은 가톨릭생활의 부흥을 약속하는 듯했다. 여기 언급(言及)해 보겠다. 퇴진(退陣)하는 두 세력이 등장을 본다. 하나는 러시아에서 권력을 얻은 유물론적 마르키시즘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 이태리에서의 무의미하고 비인도적인 나쇼날이즘이었다. 이들이 패전하자 퇴진한 자유주의는 어부지이(漁父之利)를 얻듯 재등장의 기세를 보이고 있다. 1918년 후 철저히 극복된 듯한 그것이 재등장 한다는 것은 여러 뜻으로 생각조차 못했던 1870년대의 정세(情勢)로 뒤돌아서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 과거의 것이 그대로의 꼴(形)로 반복하는 일은 없다. 한번 생긴 일은 없었다고 할 수 없고 뒤에 이르기까지 어느 모양으로서든지 작용해간다. 옛것을 많이 돌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시대는 역시 새 시대요 번화 많은 제약(制約)을 받는다. 우리시대를 규정(規定)하는 것은 이미 1870년의 사상상황(狀況)을 다 포함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허나 그때는 싹트기 시작한 것이었고 지금은 그뜻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현대사상의 근본을 살펴보자. 그렇게 함으로 공의회가 당면한 과제를 알아낼 수 있겠다.
■ 人類의 體驗
현대사상의 근저(根底)를 이룩하는 뚜렷한 특색은 세계의 협소화(狹小化)와 전혀 새로운 인류일체(一體)에의 의식(意識)일 것이다. 코럼브스의 대륙발견 이래 체험해온 바지만 오늘의 기술적 가능성으로 경이적인 현실성을 띠게 되었다. 아침을 독일에서 먹고 점심은 에집트에서 이튿날 아침은 극동 어디서 먹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의 연설은 런던에 앉아서 즉석 듣는다. 라디오 텔레비는 가정에서 세계의 것을 알게 해준다. - 세계는 이렇게 축소되었다.
또 한가지. 중국 일본의 도시는 구라파 미국의 도시와 다르지 않다. 특수문화는 말하자면 기술통일문화에 덮여지고 있다. 인류는 유렆 아메리카적 특색을 띤 기술문명의 카테고리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 인류 전체는 지중해지방(地中海地方)에서의 헤레니즘적 통일문화로서 달성한 저 통일화(統一化)에 도달했다. 이런 상황(狀況)은 여러 새 가능성 새 과제를 교회로 하여금 겪어가게 했다. 교회는 가톨릭(普遍的)으로 항상 원리적(原理的)으로 전 인류와 관계되어 있다.
따라서 전 인류의 일치운동은 교회의 인류적 사명실현(實現)을 새로 전제(前提)하고 있다. 교회는 더욱 충실한 세계교회가 되어야 한다. 전교국에 통일적 교계제도(敎階制度)가 설치되고 그 방향으로 전진이 있어야만 한다. 여기 숙고(熟考) 할 일이 있다. 그리스도교는 코이네 즉 그레시아=로마문화의 통일어(統一語)와 만(會)난다. 이 언어는 사상적으로는 무엇보다 스토아파의 범신론적, 내재론적(內在論的) 철학가의 색채를 띤다. 허나 이것은 어디서나 통용되고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언어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주저없이 이 언어를 택하고 이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고대 이교(異敎)의 이 언어는 마침내 그리스도교의 언어가 된 것이다. 교회는 오늘 새코이네에 봉착했다. 즉 기술문명으로 성취된 생각, 언어인 것인데 이는 철(鐵)의 장막까지도 넘어서 통용되고 있다. 교회는 여기 새론 노력을 보내야 한다. 포교에 있어서도 적응(適應) 즉 제문화(諸文化)에의 신앙의 적응을 논하고 있다.
오늘 기술적 통일 문화에의 사고방식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용되고 그것이 꼴(形)을 바꾸어서 거기 알맞는 신앙고지(告知)의 새 형식을 차리도록 하는 그런 일어 긴급한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가지 생각은. 기술문명의 승리는 본래 구라파적인 승리를 말한다. 허나 그 승리는 구라파적인 것의 부단한 무력화를 동반했었다. 두 대전 경험 및 구라파 문화의 암흑면이 그러나고 있으니만큼 우리는 종전같이 안이하게만 보고 있을 수 없다. 아시아인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 교국의 비그리스도교인을 구별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기본권(基本權)과 그리스도교도의 무력(無力)을 분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2천년사의 유혈 불관용 박해만을 지적하고, 그 반면 인도의 관용(寬容) 불타(佛陀)의 체념(諦念)과 자비(慈悲) 가운데 그리스도교 이상의 인류평화를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국의 종교적 유산에의 진실성을 증명하려 한다.
여기서 우리는 기술 문명의 승리와 동시에 국민문화의 부활(물론 국한된 것이겠지만)도 있다는 파라독스적 형상을 체험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리스도교 이전의 것 그리스도교 이외의 것 등의 독자적 가치를 우리는 부정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 세계는 지금까지 유렆의 정치적 우위(優位)를 힘입어 서양문화의 유산에다가 일종의 절대성을 주려는 경향이 강했엇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확신케 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음은 사실이다. 세계적인 시야(視野)가 새로 열리면서 서구인들은 그런 꿈을 깰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문화적 역사적 의미의 한계(限界)를 의식했지만 신앙의 가장 중요한 외적 지주(支柱)를 잃고 그 신앙은 상대주의(相對主義)에 매도(賣渡)했다. 이 상대주의는 아마 현대사상계의 큰 특징이며 신자들의 마음 속에도 파고들었다. 상대주의는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것이 인간적 문화형성(文化形成)의 상대성을 인증케 하고 자기의 인간적, 역사적 유산(遺産)만을 절대시 하지 않으며 서로 만족할 것을 찾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상호의 새론 이해와 및 잠겨지 경계를 타파하기에 도움될 것이다. 상대주의가 절대적인 것을 모두 지양(止揚)하고 단지 상대성(相對性)만을 허용한다는 것은 그것은 곧 신앙의 부정인 것이다. 이것 역시 공의회에서 논전(論戰)될 한 과제일 것이다.
교회는 인간정신의 전체적인데 눈떠야 한다. 교부(敎父)들이 시집가는 신부에 비교하고 시편(詩篇) 작가가 말하는 여러민족에 싸인 새색씨(詩篇 44의 10)에 비긴 가토리카(普遍的敎會)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항상 인류에게 통일이 표적을 주고 신앙, 전례의 통일에 있어서 뭇한계(限界)를 넘는 평화적 사명을 수행하려 한다. 교회는 성선과 물(水)의 새 탄생(요왕 3의4)에 의거한 진실로 영적인 존재로 통일이라는 고차(高次)의 테두리에서 다양성(多樣性)의 법칙을 유효(有效)하게 해야한다.
교회는 모든 법칙이 동시에 각국에 한결같이 적용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통일의 거울인 전례에 있어서도 교회가 참으로 「성신에 충만한 예식」(로마 12의1)에로 이끌자면, 각기 정신적 특수성(特殊性)에 맡겨운 표현이 되어야 하겠음을 더욱 고려해가야 한다. 이런데서도 주교의 권한(權限)을 강화할 필요성도 생기게 된다. 그러면서 베드루좌(座)에의 부동(不動)의 중심을 둔 통일체가 되어가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