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기까지 (8) 回顧(회고) ②
발행일1963-01-01 [제357호, 4면]
『엄마 신부님이셔 인사드려 응』
미남이가 수련이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신부는 벌써 미남이의 어머니인 줄 눈치챘는지 미소를 띄우고 바라보고 있다.
수련이는 가슴이 뜨끔했다. 신부와 술파는 계집-거리가 너무 먼 것 같았다. 뭇사나이에게 손목을 잡히고 시달림을 받는 것이 직업이고 보니 비록 마음만 올곧게 지니고 있다 해도 차마 신부 앞에 나설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
『신부님 우리 엄마 「핸드빽」 속에 묵주가 있어요』
어느 틈에 보았는지 미남이는 신부에게 수련이를 이렇게 소개했다. 수련이 어머니도 보기에 딱해졌다. 신부는 어느 틈에 한 걸음 가까이 수련이와 인사를 할 태세이다.
『미남이 어머니올시다』
수련이는 겨우 한 마디 했다. 신자도 아니며 묵주를 갖고 있다는 게 어쩐지 죄만스러웠다. 더우기 자기같은 꼴에 묵주가 당치도 않은 것 같아서 더욱 어색해졌다.
『미남인 착한아이올시다. 주일학교에 계속해 보내 주세요.』
신부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네!』
수련이는 겨우 대답만 했다.
『엄마! 요담 주일날도 아침 일찍와 응 같이 성당에 나가요』
미남이는 신부에게 칭찬을 받은 여세를 가지고 어머니를 졸랐다. 어느 틈에 기차는 홈으로 달려들었다. 수련이는 신부의 뒤를 따라 차에 올랐다. 신부도 서울로 가는 길인가부다.
기차는 몹시 분비었다. 승객이 가득차 겨우 부비고 들어갈 지경이다. 수련이는 숫제 잘됐다 시펐다. 신부와 마주 앉게되면 입장이 곤란할 것만 같았다. 꼬치꼬치 묻기라도 하면 대답이 막힐 것만 같아서이다. 어엿한 남편이 있고 직업이 창피하지 않으면 무엇을 꺼릴가보냐 모두가 자기의 처지가 감히 신부 앞에 나서기 어려운 까닭이다.
수련이는 뒷사람에게 밀려들듯 겨우 차속에 들어서보니 신부는 보이지 않았다. 수련이는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천주교를 믿어요. 첫째 마음의 터가 잡히고 무슨 일을 당하던지 망설임 없이 척척 풀어나간대두…』 옆집 아주머니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옆집 아주머니는 「빠」나 「땐스홀」에 나가는 여자들의 옷을 지어주는게 직업이다. 과부이다. 친척도 자식도 없이 외롭게 지내건만 언제나 표정은 평화했다.
『아주머닌 걱정도 없으신가 봐』
순옥이가 빈정댄 적도 있었지만 아주머니의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 천주교 믿는 이들은 그렇게 변덕스럽겐 안 살아요. 다-천주께서 안배하시는 일인데 숙명할 뿐이죠. 우리가 오직 힘쓰는 것은 죄를 짓지 않고 신덕을 닦는 것 뿐이라우』
아주머니가 천주님 이야기를 할 때는 언제나 태도가 엄숙하고 낯빛이 따스해 보였다.
『그렇지만 우리같은 타락한 인간들. 그런 소린 들어 무얼해요 흐…흐…』
수련이는 자기가 사는 세계와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아서 숫제 웃어버렸다.
『그건 당치도 않은 헛걱정입니다. 천주교는 그렇게 문이 좁지 않ㄷ두요. 성세받기 전에 지은 죄는 한꺼번에 다 풀린답니다』
『그럼 다 죽을 때쯤 해서 얼른 믿고 얼른 천당에나 가면 좋겠네』
순자가 눈을 끔뻑하며 입을 빗죽했다. 분명히 아주머니를 조롱하는 태도다.
『그건 억지의 소리지. 하루라도 더 일찍 천주께 은총받고 신덕을 많이 닦는게 이 세상에서 누리는 진짜 행복이래두요』
아주머니는 수다스럽지 못해서 입힘으로는 당하지 못하였으나 신념을 가지고 열을 올려 하는 말이다. 수련이의 가슴에는 무언가 부딪치는게 있었다.
수련이가 묵주를 산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묵주를 산 뒤부터는 마음이 산란할 때나 걱정이 있을 때면 슬며시 묵주를 꺼내 손에 쥐곤 했다. 그 묵주를 미남이가 보고서 신부 앞에서 발설을 한 것이다.
『이리 오세요 여기 자리가 있어요』
저 쪽 끝 출입문 가까이서 신부가 손짓을 한다. 수련이는 망설였다. 묵주는 웬거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인가. 이왕 묵주까지 갖고 있으니 곧 교리공부를 시작하라면 큰일이 아닌가.
『괜찮습니다.』
수련이는 허리를 굽혀 호의에 감사했다.
『어서 이리오세요』
낯설은 중년 신사가 소리를 친다.
『저 사나이는 또 누구일까』
혹시나 남령 「빠」에서 만난 술 손님이나 아닌가 해서 가슴이 덜컥 했다.
왜 하필이면 신부님과 술 손님과 동시에 마주치게 되었는지 몹시 난처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다. 머지 않은 찻간 저쪽에서 빤히 보고 부르고 있으니 안 가겠다는 핑계가 서지를 않았다. 수련이는 마지못해 사람을 뚫고 신부 곁으로 갔다. 다행히 중년 신사는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자! 여기 앉으세요.』
중년 신사가 비어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제가 앉았던 자리인데 신부님께 앉으시라 했더니 신부님께서는 또 부인에게 사양을 하십니다』
『신부님! 앉으세요』
『아- 괜찮아요. 어서 앉으세요』
신부는 구지 고집했다.
『신부님은 제가 모시고 또 저쪽으로 가보렵니다』
수련이는 천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신부님을 모시고 저쪽으로 간다는 것은 이등차를 말하는 거다. 그러면 신부님과 마주칠 기회는 지나가고 만다. 우선 거북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
『너무 죄송합니다』
수련이는 진심으로 신부와 중년신사에게 사의를 표했다. 중년신사는 곧 신부님과 함께 이등차가 달린 앞쪽으로 빠져 나갔다. 수련이는 비로소 자리에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가 인상이에게 너무 했나)
반성을 해보았다.
(그럴 수밖엔 없어)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다가 또 그보다 더 큰 망신이나 하면 어쩌게 아직도 인상이네 일족이 그득한 고장인데…)
숫제 잘했다 싶었다. 그러나 가슴속 어느 구석엔가 마치 묵은 상처같이 쓰라림이 번져 울린다. 인상이네 흰벽과 붉은장미가 무슨 그리움같이 떠올랐다. 마치 자기가 그 아름답고 평화한 낙원문턱에서 들어설 자격이 없어서 되돌아가는 서글픔이 가슴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어느틈에 기차는 서울역에 닿았다. 수련이는 무거운 걸음으로 「홈」에 내렸다. 벌써 저쪽에 신부가 모시던 중년신사는 보이지 않았다. 수련이는 신부 앞으로 다가섰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서울댁은 어디시죠』
수련이는 대답에 궁했다.
『서울댁』이라니.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혼한 남편과 같이 사는 집인가. 그렇지 않으면 시부모가 계신 곳을 말하는 것인가. 수련이는 지금 찬마루에 얹어 놓은듯한 오막사리 주인집 아랫방에 살고 있다. 그것도 남령 「빠」에 같이 나가는 순옥(順玉)이가 얻은 방에 한 자리 얹혀있는 신세이다. 그것도 서울댁이라 해야 할 것인가.
『저… 저는 영천(靈泉) 쪽으로 갑니다』
차마 집이라는 말이 안 나와 영천 쪽이라 대답했다. 집도 많고 사람도 흔한 서울 바닥에서 『집이 어디』라는 대답조차 선듯 나오지 않는게 수련이의 처지이다. 말도 많지 않고 지극히 온순한 한 젊은 사나이에게 이렇게 굽조이지 않으면 안 되는가. 수련이는 등에서 땀이 흐를 지경이다. 공연히 그가 자기의 모든 죄과를 꿰뚫어보는 것 같아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수련이에게 신부는 딱 질색이다. 신부를 무시하고 뻔뻔스럽게 말괄량이 같았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부님. 그럼 여기서 실례하겠읍니다』
수련이는 또 무슨 말이 나올까 겁이 나서 약간 당황한 걸음으로 신부곁을 떠나고 마랐다.
영천 산마루 집에 돌아와보니 순옥이도 외출하고 안집 아주머니도 물을 길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수련이는 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몸보다도 마음이 피곤해서이다. 날카로와진 신경을 가라앉혀 보자는 것이다. 베개를 찾다가 머리맡에 한장 쪽지를 발견했다. 순옥이의 필적이다.
『수련아! 진영이가 인천에서 중상을 입고 입원중이다. 나도 지금 병원으로 간다. 너도 돌아 오는대로 오너라. 병원은 성모병원 육층 육백십이호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