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37) 1년간에 5천km
발행일1962-06-17 [제331호, 4면]
샤르르가 2년간 머므로던 「베니 아베스」를 출발한 것은 1904년 1월 30일이었다. 막연하기는 하였으나 영세 예비자이며 미사때 복사노릇을 하는 포올 안바레크와 함께 떠났다.
한마리의 나귀에는 여행용의 미사제구와 약간의 식량과 즉크구두 두켤레를 싣고 그뒤에는 새끼 나귀가 빈몸으로 따라갔다. 은수자와 젊은 흑인은 「아드라아르」의 총사령부로 귀대하는 아프리카 엽기병에 의하여 호위되고 있었다. 길은 검고 높은 언덕을 지니서 일직선으로 남쪽으로 향했다.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단지 캬라반이 가는 소리뿐이다. 파리떼가 쉴새없이 날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없다.
때로는 까마득하게 멀리 식물이 있는 작은 섬이 하늘과 달까말까 하게 지나간다.
그것은 지평선 바로 위를 헤엄치며 가고 지평선과는 결코 접촉하지 않으며 지나간다. 그것은 신기루인 것이다.
시간에 따라서 어떤 때는 그것은 날라가는 한마리의 새일때도 있고 외로운 사람이기도 하고 말을 탄 사람일때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어린아이가 점잖게 누더기옷을 입고 산양을 몰고 가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그는 광대무변한 지경에 다만 혼자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더욱 멀리서 흑인이 가죽부대를 실은 낙타를 끌고가기도 하고 푸른 베일을 쓴 여인들이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나뭇단을 머리에 여나르고 있기도 한다. 신부는 매일 날이 새기 전에 미사를 지낸다.
그는 레니오 대위가 주는 말을 사양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갔다.
2월 2일 캬라반은 총사령부에 들어갔다. 라페리이느는 진심으로 옛친구를 환영하고 그에게 최근 뉴우스를 얘기했다.
샤르르 수사는 2월 1일 아가부리로 출발했다. 신부가 걸어가는 동안에 사령관은 그 인상을 레니오에게 전하고 있다.
『드 후꼬오는 대단히 기력이 좋습니다. 그는 투아레그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읍니다. 그는 우리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승락했고 대단히 명랑하고 한 침대에서 자는 것도 승락했읍니다. 그는 탁타에 안장을 놓고 창대신에 지팡이를 가지고 나갔읍니다. 나는 시찰로 그를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햇는데 만일 그가 투아레그인과 좀더 친근해지면 그를 좀더 자유롭게 할 생각입니다만 그를 호가아르의 초대주임신부 뭇사소속 신부로 하려고 꿈꾸고 있읍니다 그의 머리는 예리하며 어떠한 꿈도 언어의 지식이 앞서야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읍니다. 아라비아인은 그들의 대대의 적이며 우리들은 어떤가 하면 방해자 이고 미지자 입니다. ! 마우튼 자는 그와 또다시 수일을 같이 살게되어서 대단히 기쁨니다.』 2월 20일 신부는 아가부리에 도착했다. 많은 캬라반이 왕내하고 있다. 흰옷을 입은 아라비아인 군중 속에서 신부는 처음으로 짙은 청색의 긴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전신을 휘감은 투아레그인의 남자들을 보았다.
면사포가 열린 사이로 크고 검은 눈과 볕에 끌고 옷감에서 물이 옮아 청동색이된 피부를 보았다. 그들은 키가 후리후리하고 그 걸음걸이는 이상하게도 품이 있으며 오만해 보였다. 「투아레그」의 여성들은 우아하고 얌전하며 얼굴은 노출하였으며 아라비아 여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자유를 볼 수 있다.
그는 미래의 친구들의 언어를 더듬더듬 말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정총하게 그 말을 배우고 싶었다. 신부는 완전히 학문적 의미에서 어학자가 되려고 하고 있었으나 동시에 신비주의적 어학자였다. 학문은 조건에 불과하고 목적은 사랑이다. 그 오아시스에 삼주간 체재한 후에 라페리이느가 도착하자 샤르르 수사는 그와함께 약간의 호위를 데리고 남쪽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물이 고갈된 인스이스강의 바닥에 켐프를 했다.
신부는 마치 모이세가 시내산의 부근에서 헤브라인을 데리고 행한 것과 같은 소박한 부활제를 지냈다. 도중에 신부는 얼마나 많은 오아시스에 「사랑의 집」을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는 곳마다 노오트를 만들고 라페리이느와 토민들이 하는 말을 빠지지 않고 기록했다.
「호가아르」의 투아레그인은 -그는 노오트에 기록하기를- 귀족 · 사족(士族) 평민의 세 계끕으로 구분되어 있다. 귀족중에서는 「겔 레라」씨족이 가장 고명하고 「아매노갈」은 그중에서 선발된다.
사족은 약간의 다른씨족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그 다리」의 씨족은 「티트」의 전쟁에서 특별히 많이 피살되었다. 양계끕이 다 가죽(산양과 낙타)의 소유자이기는 하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전사인 것이다. 제삼계급은 평민이며 그 수요도 제일 많고 일반적으로 부유하고 목축과 상업으로 생활하고 있다.
특히 투아레그적인 이 세 계급 밑에 두 종류의 주민을 가입시키지 않을 수 없다. 옛적에는 흑인종이엇던 농민 하라틴과 노예들이다. 이 노예들도 역시 흑인이기는 하나 아라비아인에게서 보다는 우대를 받고 있다.
『우리들은 도처에서 평온하고 정중하게 영접을 받았읍니다. 라페리느는 호평을 받았으며 토민들은 그가 친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신부는 어떤 때는 전연 다른 소리를 듣는다.
『토민들은 우리를 기분좋게 환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심이 아니고 필요에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참으로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요』
6월 7일 아넷트에 돌아온 캬라반은 다리샹트 울드 이무다가아느의 텐트의 평에 캠프했다. 신부는 그 여인에게 인사를 하고 감사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대단히 기뻐했다. 『그 여인은 40세에서 50세 가량이며 품위가 있고 말이 적고 소박하고 겸손합니다』 6월 12일 라페리이느는 「안 사라」에 돌아가기 위해서 신부와 작별하고 「호가아르」를 순찰하고 있는 루우셀 중위를 따라서 신부는 5개월간 유목민이 출몰하는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는 유목민의 캠프 근처에 거처를 정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이렇게 편력하는 동안에도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9월에는 성서를 타마세크말로 번역하는 일을 완성하고 그 철저한 수정은 때가 올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 지방을 처음으로 순찰한 것으로 이미 그를 투아레그의 세계에 확고하게 결부시키고 말았으므로 그는 거기에 텐트를 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페리이느와 그 사관들은 아직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치안이 대단히불안하다고 생각했으며 「아메노갈」의 동의를 얻으려 해도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샤르르 수사는 대단히 수척하고 피곤해 가지고 「인 사라」에 돌아왔다.
그는 46세였으나 10년이나 더 늙어보였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이틀 밖에는 머무르지 않았다.
또다시 그는 토민 안내자 한사람을 데리고 출발했다. 10개월간에 그는 5천킬로메타나 걸어다녔다.
가르다이아에서 그는 고해성사를 받고 묵상을 하고 게랑 주교와 백의 선교회의 신부들과 긴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타마세크어로 번역한 성서를 주었다. 「무사부」의 회교도의 명사들이 많이 방문해왔다. 그중에 한 사람은 신부를 만난 후 누구에게나 이런 말을 되풀이 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주께서 당신과 함께 있어 지이다. 이 말이 내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읍니다.』
「투우쟈아」의 은자이며 그의 친구인 하지 에드리스의 열렬한 편지를 「카사부란카」의 영사를 통해서 전해받을 것도 이때였다.
『나는 대단히 당신의 소식을 알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당신 소식을 듣지 못했으며 나에게 그것은 대단히 흥미 있기 때문입니다.』
『최후로 나는 당신에 대해 이곳 프랑스영사에게 물었읍니다. 거기서 나는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서 천주께 봉사하고 「영_한 자에게 일생을 바쳤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는 세속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은 현제와 미래를 통해서 근본적인 것입니다!』
『영원히 충실한 당신의 하인』
『하지 에드리스 엘세르가위이』
『당신과 함께 가스바다도우라의 여행을 한 자』
샤르르 수사의 마음은 기쁨과 고통으로 가득찼다. 샤르르는 그 친우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또다시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