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NC】 「네게브사막에서 발굴작업 중 발밑에서 졸지에 무너지는 동굴 천정의 구멍으로 쓱 빠져내려 밑바닥에 자빠진 발굴인들이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알려진 「예루살렘」이라는 「히브리」문의 각자(刻字)를 발견했다. 최근 고고학적 발견으로서 「예루살렘」시 외에서 발굴된 기원전 6세기의 유데아 왕국의 왕 성 요새를 비롯하여 「베에르세아」지구에서 발견된 기원전 4천년대의 도기 파편 등 수종에 달한다. 이 「예루살렘」이라는 각자(刻字)는 남부 「팔레스틴」의 「네게브」 반사막지대 북방의 고대 성서읍(聖書邑) 「라킷쉬」 부근 장굴(葬窟)의 벽에 긁어서 새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네게브」는 고대에는 비옥하고 인구가 조밀했던 곳이었으나 최근에 주요한 관개시설의 터로 변했다.
최근의 발견 이전에도 「예루살렘」이라는 「히브리」문의 가장 오래된 각자는 기원전 4·5세기의 물병 손잡이 위에서도 발견되었었다. 이 지명의 「에집트」어와 고대 「셈」 방언인 「악카디안」어의 번역이 발견된 바 그것은 기원전 2천년대로 소급되는 것이었다.
3개의 남인상(男人像)과 2개의 풍범선의 그림과 함께 두 줄의 글귀가 최근에 발견된 바 그것도 벽면에 속필로 긁어서 세겨진 것으로 보인다. 두 줄의 명문(銘文) 가운데 긴 편은 『온 땅의 천주님. 유데아의 산들은 당신에게 「예루살렘」의 천주에게 속하나이다』라는 글이다.
그 명문을 수리한 고적보존국의 한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루살렘」의 천주라는 말은 성경에 오직 한 번만 보인다. 이 말은 역대하(歷代下)의 「에제키아」왕조 때(기원전 7백1년) 「앗씨리아」왕 「세나케리브」의 「유데아」 포위를 서술한 장(章)에 있다. 「예루살렘」만이 「앗씨리아」군의 습격을 물리쳤다.』
그 문장의 내용과 문체 두 가지가 다 「에제키아」왕조 이강(以降)의 명(銘)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루살렘」의 남편에 있는 「라마트·라헬」에서 발견된 왕성요새는 기원전 6백9년부터 5백7년까지 재위한 「요아킴」왕이 건축한 것으로 믿어진다. 그 왕성의 요샌ㄴ 엘레미아 선지자의 말과 부합되는 것 같다. (22장 13절 14절)
『불의로써 제 집을 세우되… 「나는 스스로 넓은 방들이 있는 커다란 집을 지으리라」고 말하며 그 집에 창을 내는 자는 앙화로다』 최근에 발견된 창의 장식적인 난간은 아마 그 요새의 정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이 요새는 일곱단층(層) 가운데 둘째로 낮은 단층에 있다. 가장 낮은 단층은 대략 기원전 7백42년에 죽은 오지아왕 시대로 소급된다. 바로 이 단층에서 발굴인들은 소작인의 농가들에 둘러싸인 왕실 포도원의 중심 건물로 추칙되는 것을 발견했다.
「유데아」왕국 왕성 요새의 윗단층에는 「페르시아-그리시아」식의 요새가 있다. 다음 단칭에는 기원전 4·5세기의 주택지가 있고 그 다음 단층에는 기원전 2,3세기의 로마식 건축이 있고 그 다음 단에는 비싼틴식 성당과 수도원이 있고 가장 높은 단층에는 초대 아라비아식 주택지의 유물이 있다.
「베에르세바」의 전 아라비아인 장터의 최근 발굴은 연애와 번식의 셈 여신(女神) 「아스트라르테」의 여인상(女人像)의 파편과 함께 도기 파편, 취사 및 식사기구 부억 화덕을 파뒤집었다.
이 모든 발견은 기원전 8세기 이후의 것으로 믿어지며 「오지아」왕 시대에 이 도읍의 중요성이 확인된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발견된데서 약 2야드 밑으로 내려가서 기원전 4천년대로 소급되는 도기 파편과 부쇠 기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