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38) 아메노칼의 동무 ①
발행일1962-06-24 [제332호, 4면]
1905년 1월 일년만에 신부는 「베니 아베스」로 돌아왔으나 그곳에는 겨우 4일간 지체했을 뿐이었다. 4월이 되자 라페리이느는 「호가아르」에서 여름을 지내라고 신부를 초청했다. 샤르르 수사는 게랑 주교와 유브랑 신부에게 허가를 얻었다.
5월 3일 신부는 포을 암바랫크를 동반하고 출발하여 또다시 「아드라이르」와 「아가부리」를 통과하여 6월 8일 「인 사라」에서 같이 만났다. 대위는 자나리스트와 지리학자와 알제리아와 스당 사이의 전선가설을 준비하는 우정성(郵政省)의 시찰관과 그리고 사하라 정복자의 역사가 고오리에 등을 사막에로 후송하는 임무를 띠운 호위소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티노오는 또한 신부를 뭇사근처까지 인도해야 했다. 일행은 「호가아로」에 돌입했다. 특히 야간에 행진했다. 왜냐하면 여름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더위가 심했기 때문이다
『오전중에 두시간만 것도나면 모든 사람들은 낙타에 올라탓다. 그러나 신부는 묵주신공을 하거나 덕서도문을 외우면서 기진맥질 할때까지 걸어서 갔다. 가장 변화가 많고 곤란한 토지를 무리해서 가려고 하고 있었다. 아침 5시부터 태양은 불같이 내려쪼이고 기온은 그늘에서 40도 내지 5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각 사람이 하루에 8내지 10릿터의 물을 마신다. 그러나 그 물은 가축들이 다니는 웅덩이에서 떠온 것이 아니면 때로는 마그네슘이 들어있는 말할 수 없는 물이었다.
그러나 신부는 바람이 태풍같이 불거나 혹은 우리들이 「당신이 타지 않으면 나도 걸어가겠읍니다」라고 하기 전에는 여전히 바쁜 걸음으로 걸어갔다.』
『우리들의 켐프는 언제나 장방형으로 설치되었으며 총탄을 재운채 토민들은 전투태세로 외투를 입은채 잠을 잤다. 이는 남쪽 모록코에 「리도 데 오로」 방향으로 쉴새없이 공격대가 사하라를 종횡으로 달리고 있었던 시대이었으며 「투아레그」가 최근에 항복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우리들의 규율과 경계를 주목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신부의 자리를 정했기 때문에 티오노 대위는 말한다!
그는 고립해서 따로 떨어져 신공을 할 수가 있었다. 출발할 때 시간이 허락하면 그는 급히 텐트로 올라와서 미사를 들였다.』 미사를 드릴 때 한 사람이 언제나 지키고 있었는데 이것은 우리들 모든 사람의 경이(驚異)였으며 계시였다. 신부는 특이하게 열심하였으며 참으로 탈혼상태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수일후 「인 우제르」의 우물근처에 아매노칼을 찾기 위하여 파견된 부하병 한사람이 돌아왔다. 아메노칼은 그 부근의 「디 사와텐」에 있으며 그 다음날에는 도착한다고 예고했다. 실제로는 하루 늦게 그 다음날 겨우 도착했다.
1905년 6월 25일 캠프 전체가 일어섰다. 프랑스 사관과 아라비아 낙타병이 쉴새없이 지평선을 경계하고 있었다. 뭇사는 고의로 지금까지 정책적인 평화를 서약하고 있었다. 이번 회견에서 무엇을 결심하고 있는 것일까? 돌연히 큰 아우성이 일어났다. 먼곳에 낙타병이 나타난 것이다. 한참동안 기다렸다. 뭇사가 이제 「켄 루다」의 주요인물들을 데리고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가 키가 크고 당당하며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무장을 갖추고 베일을 쓰고 위엄있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메노칼이 제일먼저 프랑스의 대위에게로 근접했다.
정중한 인사를 했다.
양편의 호위가 이 예절을 지키고 있었다.
예식이 끝나자 분위기는 훨신 치밀하게 되었다. 사관들과 투아레그인과 신부는 함께 차를 마셨다. 뭇사는 2년 이래의 책동을 사과하고 프랑스의 권력에 완전히 가담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여러날 동안 양쪽 군대는 함께 행군했다.
대위는 뭇사에게 신부를 소개하기를 『유일한 천주께 봉사하는 그리스도교의 은자(마라부우트)이며 고독을 즐기고 「겔아하가아르」 족의 말을 배우고 싶어하며 주민들에게 많은 봉사를 하고 대단히 효과적으로 봉사를 권고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긴 회담을 통해서 실제적인 문제를 검토했으며 신부의 거처를 「다그라셋트」에 정하기로 했다. 그곳은 「라고 라리」족에 속해있으며 뭇사에게 가장 충실한 가장 많은 수효를 가진 부족의 근거지였다.』
라페리이느라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드 후꼬오 신부를 「호가아르」 초대주임 신부로 모신다는 것은 기묘한 은유(隱喩)였다. 교우없는 주임신부 또한 파레리이느가 말한 바와 같이 그를 뭇사 소속의 신부로 한다는 것은 맹량한 생각은 아니었을까 겨우 최근에 화려한 전사들의 수령이며 신앙심 깊은 이 회교도가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신부를 그 영적지도자로 받들 수가 있으랴. 수개월 전에 그는 스스로 물었다.
『투라레그인은 군인과 신부를 구별하여 우리들 속에서 천주의 종 평화와 자비의 사도 만인의 형제를 발견할 수 있을까』
프랑스 사람과 투아레그인 사이, 라페리이느와 뭇사 사이에 끼어앉아서 얼굴을 나타내고 있는 신부는 어느편에나 극히 친절한 인간이라는 곤경에 수없이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신부는 어느 편에 대해서도 적의 씨족의 종이 아니고 언제까지나 천주의 종으로서 있을 수 있을까, 샤르르 수사는 시련을 감수할 각오였다. 대위는 뭇사에게 신부가 은둔소를 투아레그인 사이에 세우는 것을 승락하는가를 물었다. 아메노칼은 이미 신부와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승락했다.
그는 자기 생명을 걸고 책임진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시기가 온 것이었다.
드 후꼬오 신부에 있어서 이것은 그의 인생의 초대의 대전환기였다. 기록하기 위해 다른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신부는 뭇사의 신비적인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마레노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대단히 훌륭하며 총명하고 지극히 개방적이고 지극히 경건한 회교도이며 자유주의 회교도로서 설을 바라고 있기는 하나 동서에 야심적이고 금전 쾌락 명예를 사랑한다. 그와 담판한 결과 나는 호가아르에 정주하기로 결정했다.』
「투아레그」인 사이에서 만일 드 후꼬오 신부의 역할이 조그만큼이라도 의문을 품게 된다면 이 공식적인 추천도 한번에 거절될 가능성이 충분했을 것이다. 그는 조금도 그리스도교의 신앙이나 프랑스 사관과의 우정을 숨기지 않고 「호가아르」에 왔다.
아무런 술책도 없었다. 그가 라페리이느의 친구가 된 것 같이 뭇사와 「투아레고」인의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양편이 다 알고난 후에 한 일이었다. 캬라반은 두주일간 공동으로 여행을 한 다음에 해산했다. 역사가와 신문기자들은 동부크루에로 출발해야 했다. 그들은 자기네들을 대접하러 올 수단분견대를 기다렸으나 헛된 일이었다. 뭇사는 자기 부하의 「투아레그」인 세명으로 하여금 그들을 안내하게 하겠다고 제안했다. 티노오 대위는 주저했다. 신부는 모록코의 경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뭇사의 말을 전폭적으로 믿으라고 권고했다.
그의 의견이 통과되어 모든 일은 대단히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뭇사는 티노오가 신부를 타만라셋트에로 호송하는 사이에 그곳을 떠나 귀로에 올랐다. 안내가 아니면 도저히 살 수 없는 미로와 같은 좁은 길을 나와서 일행은 높이 천5백미터 위에 있는 자갈 투성이의 광대한 고원에 도달했다. 그중에 언제나 물이 고갈되어 있는 「타만라셋트」하천의 커다란 하상이 있다.
움물과 생기없는 소관목과 「하라틴」족의 오막사리 등의 무리가 있다. 이것이 「타만라셋트」의 부락이었다. 동쪽에는 거의 수직으로 된 톱날같은 행태의 긴 절벽이 그 고원을 내려다 보고 있다. 「하라틴」들은 제방에서 베어온 갈대로 만든 오두막집으로 만족하고 있다.
가장 빈곤한 자들은 「제리바」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정방형으로 꾸민 간단한 울타리며 삼면만이 막혀있으며 지붕도 없는 것이다. 이 지방에 있어 유일한 아름다움은 아침에 이슬이 내려서 극히 미소한 이상한 꽃들이 가지각색으로 무수히 피어나는 것이다. 말숙히 개인 하늘은 완전히 투명하다.
높은 하늘에 투명한 구름이 몇개 지나간다. 「하라틴」이 농부라면 프랑스의 농부의 가장 비참한 생활에도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갈밭 속에 고립되어서 근소한 토지에 보리와 야채를 약간 농사짓는다. 「타만라셋트」는 그당시 고갈된 하천과 3킬로메타 사이에 산재하는 20호를 넘지 못하는 수효였다. 신부가 그곳에 거처를 정한 것은 1905년 8월 13일이었다.
「베니 아베스」의 은둔소가 아무리 엄격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곳은 오아시스와 수비대로부터 15분 못되는 곳에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샤르르 수사는 「인 사라」에서 7백킬로메타 떨어진 곳에 다만 몇사람의 토민들과 함께 월세계의 한복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