岩下神父(암하신부) 「모로카이」 紀行文(기행문)
患者의 使徒 다미안의 偉業을 찾아
「癩」의 醫療時代는 오다
발행일1963-01-27 [제360호, 4면]
나는(1934년) 2월15일 「요꼬하마」를 떠나 22일 「호노루루」에 도착했읍니다. 「하와이」를 보고 싶었던 것은 10 몇년째 희망이어서 1925년 말 구라파서의 귀로, 「모로카이」를 둘러보고자 했었읍니다. 이제 나의 「모로카이」행은 실은 다미안을 사모하자는게 제일은 아니며 그곳 환자들을 위문하자는 것도 목적은 아닙니다. 직접 목적을 말한다면 복생병원(復生病院) 일을 보자니 여러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국립병원 좋은 곳도 있는데 불과 2백명 정도를 수용하는 이곳(復生)에 무슨 의의가 있는 것이겠읍니까. 이 대답을 위해서도 적당한 의의를 발견해야 했던 것입니다. 가령 수술실 하나를 세우기에도 전국의 그것을 돌아봤으나 너무 거창하거나 적은 것이어서 분에 맞추자니 자연 힘든 일이었읍니다. 어쨌든 복생병원같은 특수성을 발휘해야 했읍니다. 이것이 「모로카이」 방문의 목적이었읍니다. 오래 있고자 했지만 전후 19일간 체재한 셈입니다.
「호노루루」에 도착한 나를 영접해 준 분들은 35년간 「하와이」서 지낸 위스수사와 다미안 신부의 후임자와 렌스다인 신부, 이분은 「호노루루」에서 집무하고 있읍니다만 그리고 「모로카이」도 요양소장 쿳크씨였읍니다. 쿳크씨와 비행편으로 다음 주일 오후 「모로카이」로 왔읍니다. 바다의 아름다움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읍니다. 「모로카이」 절벽이 곧 보입니다. 요양소 안에 비행장이 있어 도착하자 많은 자동차들이 달려들었읍니다. 「드라이브」하는 차들도 있었고 이것은 모두 화자들의 소유로 「모로카이」에만 백대 가량 있다고 합니다. 여자를 태우고 『할로!』 어쩌고 하면서. 나는 먼저 미국의 물질력에 직면한 것입니다. 라디오를 듣자니 그날은 환자들의 시간이 있는 날인 것 같습니다. 그곳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이 노래는 누구를 위해 부른다고 하지 않겠읍니까.
「모로카이」도의 환자를 수용하고 있는 곳은 섬 중앙의 약간 북쪽 3각을 이룬 반도(半島)인데 약 10평방「마일」이나 되고 앞은 대양(大洋) 뒤는 절벽으로 전혀 교통이 없읍니다. 환자들의 거주 구역은 한 곳은 「가라와오」란 덴데 여기 다미안이 있었으며 지금은 폐허가 되었읍니다. 다른 곳 「가라우빠빠」란 데에 「하와이」 정부는 모든 시설을 집중한 모양입니다. 수도물 관계인 듯합니다. 이 양지역은 약 2「마일」 떨어졌고 그 북쪽에 비행장 등대시설이 있었읍니다. 「가라와오」의 절벽은 깊은 계곡이 파여졌고 비가 오면 아름다운 폭포가 내려 쏟아집니다. 볼드빙이란 백만장자가 기부한 아름다운 정원 둘레 3방으로 집들이 들어섰읍니다. 절벽에서 바다로 향해 서서히 벌려진 이곳, 그 전에 묘소였다는 곳도 지금은 목장이 되어 소말들을 방목하고 있었읍니다. 「다미안」 교회는 그의 죽기 직전에 완성된 것입니다. 교회 길섶에 그와 4인 수사들의 무덤이 있읍니다. 이곳이 다미안이 처음 상륙하여 천신만고를 다 겪던 곳입니다. 지금은 사는 이 없고 파도소리 새소리만 들려올 뿐입니다. 정부는 이곳을 잘 가다 듣는다고 합니다.
「모로카이」를 출발하기 전 또 한 번 이곳에 와서 「가라와오」의 기분을 마음에 새겨 봤읍니다. 「모로카이」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어기면 5백「달라」 벌금-. 절벽의 길을 통해 돌아왔으나 그 길은 다미안이 다닌 길은 아닌듯 하다는 것입니다.
적수공권으로 이곳에 건너온 다미안이 처음 어디서 살았는지 알 길은 없읍니다. 1879년 경의 다미안 신부를, 오늘 이같은 완비된 설비를 보고 그 고심을 상상할 수 있을지 저렇게 굴러다니는 환자들의 자동차도 다미안과 관계 없지 않겠지요. 「가라우빠빠」에는 다미안 기념관이 있어서 환자들이 그곳에 나를 초대했읍니다. 나는 일본의 동경을 상영해주고 북생병원서 가져온 편지도 전하고 했읍니다.
이곳 환자들은 정부로부터 많은 물자를 배급받고 있읍니다. 어떤 일본인 환자는 「호노루루」에 6인 가족이 있어 이곳서 지급받는 돈으로 매달 25「달라」씩 송금하고 있었읍니다.
이곳의 환자 수가 줄어가는 것을 보고 새 시대가 온 것을 느껴씅ㅂ니다. 오늘은 다미안의 시대가 아닙니다. 종교가들이 이 사업을 해가는 태도부터 달라져야 했읍니다. 앞으로는 의료적사업(醫療的事業)이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가도 의료적 방면에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編輯室註= 복생병원은 일본 부사산(富士山) 산록에 있는 가톨릭 나병원이다. 일본 대표적 철학자인 필자는 여기 필생의 정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이곳서 서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