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39) 아메노칼의 동무 ②
발행일1962-07-01 [제333호, 4면]
하천으로부터 백미터 10수호의 「하라틴」의 오두막집들로부터 5·6백미터 떨어진 곳에 신부는 약간의 토지를 차지했다.
거기에 갈대로 오두막집을 세우고 다음에 나지막하고 가늘고 기다란 이상한 토막을 지었다. 벽이 대단히 두터웠다. 지붕은 평면이고 에텔의 굵은 가지를 걸치고 갈대와 진흙으로 덮었다.
그것은 태양광선에는 견딜 수 있으나 비가 몹시 오면 힘없이 녹아버릴 것이었다. 창문은 없으나 한편쪽에 50센치 평방의 호나기창이 몇개 있었다. 유리는 없으나 폭풍이 있을 때 달기 위해서 나무들이 있었다.
이 건물에 창문과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출입구였다. 그것은 출입할 때 70센체 높이나 넓이 50센치 정도의 투박스러운 문턱을 넘어야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뿔이달린 뱀을 막기 위한 「바리케트」인 것 같다. 내부에는 방이 두개있다. 하나는 성당이고 하나는 서재다. 각각 넓이가 1메타 75센치 길이가 3미터 70센치 높이가 2미터이다. 집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호(濠)였다.
오두막집은 부엌과 포올의 거처이며 방문객의 객실이다. 신부는 종자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여기에서 나에게 있어서 언제까지나 계속될 나자렡의 생활이 보입니다. 포올과 둘이서 채소밭을 가꾸고 나무접시를 만들고 이웃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선행을 하려고 힘쓰고 그리스도께 기구를 바치는 생활입니다』
『이 지방은 대단히 평온하며 아무런 위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외관상의 고요는 완전합니다. 프랑스에 대한 유럽의 전쟁이 업슨 한 치안은 보장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으로는 마리이를 완전히 안심시킬 수도 없었기 때문에 신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걱정 마십시요. 나와 당신은 그리스도의 품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세계의 군대를 가지는 것 보다는 그리스도를 가지는 편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후꼬오 자신을 말함)이 우리들의 백부 아르망(1792년 9월에 학살된 순교자)이 운명을 따른다 하면 당신은 행복하지 않겠읍니까』
6월 4일 「티오노」 대위는 그의 분견대와 함께 귀로에 올랐다. 신부는 아직 확실치 못한 용세 지워자 포올과 함께 「하라틴」 사이에 남았다. 사막은 고독의 왕국이다. 그것은 몇키로씩이나 간격을 두고 얼마 안되는 주민들이 불타는 태양아래 끊없이 넓은 풍경아래에 산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수도(首都)에 있으면서 「고독한 사람」은 사막에 있는 것보다 훨씬 고독한 것이다. 아무도 말을 부치는 사람이 없고 아무에게도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도 무수한 인간을 팔굼치로 칠수가 있는 것이다. 고독하면서도 서로 웅성댈 수 있는 대도회의 괴물같은 비인간성은 이런 사막의 주민들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무한한 거리가 인간을 부정하는 것 같이 보임으로 인간이 거리를 부정한다. 즉 사막에서는 모든 사람이 이웃사람인 것이다.
그것은 몇개의 텐트로 된 마을이긴 하나 마을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알고 지낸다. 복장만 보고도 누가 오는지 알 수 있으며 자기 편인지 적인지도 알 수 있다. 만일 그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면 서로 인사를 해서 친구가 된다.
모든 일이 서로 차를 마시고 식사를 같이 하는 이유가 된다.
「타만라셋트」의 고원에서는 부근의 「하라틴」이나 지나가는 「투아테그」 중에서 신부의 은둔소를 주목하고 다만 혼자서 「호가아르」에 거주하러 온 이 기묘한 은자마라부트)를 만나보러 오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먀말로 신부가 바로 원하던 것이다. 그 의문은 언제나 개방되어있다. 어떠한 방문객이든지 친구로 영접된다. 겨우 3년전만 해도 「호가아르」는 거의 아무도 침입하지 않는 곳이었다. 「티트」전투 후에 「투아레그」인은 강화를 체결학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러나 불안과 경계가 없지 않았다. 라페리이느는 존경과 우정으로 그들을 대했으므로 그들의 마음을 끌었다.
그는 다만 그곳을 통과했을 뿐이었다. 그는 뭇사와 같이 무장하고 무장한 호위를 데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부는 다만 혼자 무장도 없이 「호가아르」의 한가운데 영구히 거주하러 온 것이다. 라페리이느는 확실히 그 친구의 신변을 열심히 경계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적어도 7·8백킬로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투아레그」인들은 얼마나 전례없는 신뢰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명예심이 대단히 강했기 때문에 이것을 마음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의탁된 이 사람은 그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그들의 호기심을 대단히 자극했다. 그것은 은자이면서도 회교도가 아니고 그리스도교도라는 것이다. 자선을 하고 희사를 구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그는 「투아레그」인 사이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자기 가족들을 떠났을까. 「투아레그」들은 무수한 의문을 스스로 품었다.
그러나 은둔소는 자기들 앞에 있으며 그 문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었다.
은자는 언제나 친절한 얘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들어가 만나서 잡담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대로 신부의 생활을 조사할 수가 있다.
『유목민과 어떤 정주민들은 9월이 되자 이미 나에게 바늘과 약을 얻으러 오는 습관이 생기고 때때로 가난한 사람이 밀가루를 약간씩 얻으러 옵니다』
샤르르 수사는 편지에 쓰고 있다. 한달 후에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경계심이 대단히 강하며 야만적인 투아레그인을 길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들을 대단히 불충분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우리들에게 대해서 거짓말 같은 옛 얘기로 육성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그들은 호기심이 대단히 강하고 개방적인 성격과 그 풍속 때문에 아라비아인 보다도 우리들과 가까운 것입니다.』
회교도 아라비아인들과는 정반대로 「투아레그」들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여자가 아니고 남자인 것이다.
「그 행동은 복장과 못지 않게 이상하다.」 투아레그인은대단히 명랑하고 기민하며 여자들은 대단히 자유롭다.
아라비아인은 동양의 낙인을 보존하고 있다. 「투아레그」인은 아메리칸 인디안과 「고오르」인에 흡사하다. 샤르르 수사는 그들에게 대해서 친절했다. 그는 그들과 농담하고 웃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소교구민들의 신부로서 설교를 하려고 온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는 자기가 천주의 종이라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망각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선 호가아르에서 지금 제일 필요한 것 두가지 그것은 교육과 가정의 재건이다.
너무도 깊은 그들의 무지 때문에 그들은 진위를 분간 못하며 증가되는 이혼과 풍속 때문에 가정생활이 퇴폐하고 따라서 아동들을 교육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
「투아레그」인들은 대체로 시앙심이 없으며 회교의 견지에서 보면 온건한 전통파이나 역시 회교도이다. 신부는 그들의 본당신부라던가 고해신부라는 자격은 전연 가지지 못하나 차츰 차츰 그들의 사적(私的)인 조언자 또는 어떤 의미에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이것은 그의 생애의 최대의 역설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그들을 멀어지게 하니 천주께 대한 신앙은 그들을 결합시켰다.
때로는 이 은수자는 집속에서 대수로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신공을 제외하면 그것은 사실이다. 실제로는 신부의 일상생활의 푸로그램은 대도시이 분주한 사람과 같을 정도로 무거웠다. 미사와 매일의 묵상 손노동 서신 방문자의 접대 이것만으로도 일분간의 휴식도 없었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었다. 잡담하는데 불편이 없을만큼 「타마세크」 말을 알고 있었으나 더욱 그 연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투아레그」 말로 사고하고 싶었다. 그의 가슴 위에 붙인 붉은 성심의 표 이상으로 그를 「호가아르」의 모든 주민들과 구별됙 하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신앙에 의해서는 그들과 대단히 다르나 나머지 다른 것에 있어서는 「투아레그」인중에서도 가장 「투아데」 그인이 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바오로의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하고 있다.
『나는 유데아인을 얻기 위해서 유데아인과 함께 유데아인이 되었다. 이방인을 얻기 위하여 이방인과 함께 이방인이 되었다. 그중에서 몇사람은 만사를 재체놓고 구하려고 하면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이 된다.』
이점에 있어서 신부가 한 일은 가장 순수하게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전통은 항상 새로이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어수선한 호(濠) 속에서 그는 언어학과 인종학의 노오트를 하기 위하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언제나 그는 천주께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려고 하는 것과 꼭같은 충동으로 인간의 생활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