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강생 전 3백년경에, 파사국에 쎌쎄스라는 폭군이 있었읍니다. 에집트를 점령한 후 또 야방의 폭풍을 일으켜 파죽지세로 그레시아국을 처부시려고 10만대군을 출동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호사다마격으로 진군하는 그의 앞에는 큰 바다가 가르막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배다리를 놓아 대군을 건너게 하려는 작전을 벌렸읍니다. 그렇지만 거진 다리를 다 놓아가면 억센 파도가 순식간에 배다리를 떠엎고 또 떠엎어버리고 하였읍니다. 그 때에 이 쎌쎄스폭군은 대발노발하여 바다를 저주하고 또한 바람을 저주하고 하였답니다. 3백명 군졸에게 일시에 소리를 같이질러 능히 바다물을 아주 말려버리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거나 말거나 성난 파도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고 다리를 파괴하기를 거듭하였읍니다. 동서남북을 제 말굽소리로 점령하려는 이 대왕의 세력이 저 성난 바다물결과 바람을 평온하게는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천주이시고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바다와 바람의 창조자의 자격으로서 그의 전능의 여하를 오늘 성경에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종도들은 당황하여 『주여 우리를 구하소서 죽겠나이다』하매 그들을 가긍히 보신 예수께서는 즉시 뱃전에 이르시사 바다와 바람을 안온하게 하셨읍니다. 과연 바다와 바람도 그에게 순명하였읍니다.
우리들 중에는 실지로 저 험악한 바다의 풍랑과 싸운 경험을 가진 이는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바람과 풍랑을 우리는 보다 많이 겪어왔고 또 지금도 겪고 있을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오로지 천주님의 전능한 힘을 빌지 않으면 평온해질 수 없는 저 수다한 바다의 풍랑과 바람이 얼마나 많이 내 마음바다에 또는 내 가정의 문지방까지 이세상 사회바다에 출렁거리고 있읍니까?
①매일 매일의 신문이나 「라디오」 또는 T·V에 수천 수만 말마디의 저 풍랑소리, 전쟁과 투쟁, 정복과 반항, 수백만 수천만의 군주림의 풍랑소리, 약육강식의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굶주림 사자의 표호하는 저 풍랑소리 핵무기를 제조하는 함마와 용접하는 거센 이 세상 바다의 풍랑소리 등 이 여러 가지가 전파와 말소리로 황막한 세상바다에 물결치고 있지 않습니까?
②우리가 사는 조그마한 삼천리강토에는 남북이 양단으로 갈려져 칼날우에서 춤추는 파도소리 경제의 불안정 직업을 구하는 실업자의 하염 없는 소리의 풍랑청소년들의 우법적 사실 죽이고 찌르고 받고 차고 헐뜯고 모략 중상하는 응얼대는 풍랑소리 백년해로를 맹세하였던 쇠줄을 끊고 아침 밥먹듯이 해버리는 이혼과 파염치한 쌍벌소송 제기와 그와 대결하는 성난 풍파소리 사회에는 매일 살인 강도 절도 방화사기 횡령 기만 편취에 죽고 울고 헐뜯는 아우성 치는 성난 풍랑소리 가운데에 우리는 빠져 죽게되지 않았읍니까?
③악을 횡행하는 자가 영웅시되고 선을 찾고 선하게 살아보겠다는 자만이 바보 천치 취급을 받는 슬픈 풍랑소리 양심가로 자처하려하메 우몽질 박자가 되고 남을 속이고 이간하고 목적을 위하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 주의의 흉흉한 풍랑소리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휩쓰는 풍랑의 거센 바다물결이 아닙니까.
이에 과학이 이 성난 풍파를 평온하게 할 수 없고 귀신과 잡신과 미신이 이 풍파를 꺼지게 하지 못하였고 또한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 않은 인간이나 위대한 철학자도 이 색다른 삶의 수화상극의 이념사상을 절충하거나 절대적으로 해결하여 완전한 평온성을 인류사회에 가져다 주지는 못하지 않았읍니까?
큐바에서 실패하고 핵무기와 「미사일」을 싣고 되돌아가면서도 입은 살아서 『평화의 애호자』라고 외친 공산당의 저 후르시쵸프도 이 성난 사회상을 풍파를 영원히 평정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도리어 세상 구석 구석 가는데마다 이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불을 지르고 평온한 바다에 말하자면 거센 풍파를 격증 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이 풍파 충천한 세상거리를 평온케 하실 수 있읍니다. 오늘 성난 바다의 풍랑과 바람을 평온케하신 그리스도께서 오로지 나라와 나라 사이 계급과 계급 사이 인종과 인종 사이에 정의 신의와 사랑의 손길로 평온하게 하실 수 있으니 먼저 우리는 『정의와 천주의 나라를 구하면서』 오 주 예수께 『우리를 (오늘) 살려 주소서 죽겠나이다』하여야 하겠읍니다.
吳基先(대전주교좌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