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1) 에루살렘 聖路(성로)는 兩斷(양단)
2千年輪 「오리브」 지금도 茂盛
朴相泰 神父 記(대구 계산동 주임신부)
발행일1963-02-03 [제361호, 3면]
공의회가 끝난 거년 12월9일 하오 4시15분 빠울린회원들의 주선으로 우리 일행 70여 명은 4발프로패라 비행기편으로 「로마」에서 「빨레스띠나」를 향해 날랐다. 방음장치가 잘못된 관계인지 대형 젯트기를 탄 때보다 소음이 더욱 심하게 들려 귀가 먹먹하다. 서너 시간이면 목적지에 닿으리라 생각한 것이 내 오산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떳건만 비행기는 내 몰라라는듯 요란한 소음만 낸다. 예기했던 것보다 시간이 느리고 보니 『예수님 가신지 이미 근 2천년! 때는 흘러 산천과 인면(人面)이 다 변했을 오늘 성지를 밟아본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차라리 주교님을 모시고 하루바삐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하는 후회도 난다.
이것은 주마간산격(走馬看山格)으로 자유구라파를 단시일 내에 일주하느라고 몸이 심히 지쳐있는 탓도 있겠지. 두루 살펴 보아도 외국인들 뿐 그나마도 지위 높으신 주교님들이 거의 전수를 차지했으니 외로운 마음이 들어서이겠지. 더우기 내 혹시 못나게 처신했다가 조국과 민족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해서 유달리 신경을 쓴 탓이겠지. 하여간 무언가 종잡을 수 없는 허전한 기분이었다. 밤 10시가 가까와서야 욜단의 수도 「암만」에 도착했다.
욜단의 왕도 처음에는 동부 「에루살렘」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렇던 것이 욜단과 이스라엘은 서로 지독한 원수가 되어 이스라엘이 보기 싫다고 수도를 「암만」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으로부터 해방되어 꿀과 젖이 흐르는 복지(福地)라고 찾아왔던 「빨레스띠나」는 지금 이스라엘과 욜단으로 갈려져 있다. 「에루살렘」 성도도 이스라엘 편과 욜단 편으로 담 하나를 사이로 갈려져 있다. 마치 우리나라가 38마(魔)선으로 갈려져 있듯! 독일이 동서로 갈려져 있듯!
「암만」에서 내려 대기해 있는 13대의 고급차에 분승해서 「에루살렘」에로 달렸다. 밤 10시가 지났다. 저녁은 비행기 안에서 준 것으로 끝이고 주지 않는다. 저녁밥이 있대야 먹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건만 주지 않으니 서운하다. 배정받은 방은 제(諸) 신부님과 나와 둘이 한 방이 된 것이 다행이다. 그는 서구 일주를 하면서 늘 같이 다니던 친구다. 곤히 잠들어 아침 일곱시에야 눈을 떴다. 다른 주교님들은 다 유서 깊은 성당에 가서 미사를 올리기로 배정된 모양이나 이름 모를 나라의 일개 신부로서 유서 있는 곳을 택하기도 건방져 보일 것 같아 여관 가까이에 있는 성당에 가서 미사를 올렸다. 미사 후 보미사 하던 아이가 악수를 청하기에 손을 내밀었더니 한 무릎을 꿇고 장궤하며 손우에 친구한다. 이런 풍습은 「로마」에서 한 번 당한 일이 있다. 성당 안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을 때 어떤 노신사가 악수를 청하기에 손을 내밀었더니 역시 손등에 친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제들에 대한 한 존경의 표시일 것이다.
11시경 「에루살렘」 성 밖 「올리브」 동산에로 갔다. 「올리브」 동산은 예수께서 가끔 철야기도 하시던 곳이다. 지금은 경당(敬堂)이 서 있고 그 안에는 예수께서 수난 전날 죽기에 이르시도록 근심하시여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구하시던 때에 의지하셨던 바위가 있다. 바위의 질은 백석이요 4·5평은 실히 되어 보임직한 것이었다. 모두 그 바위에 친구하기에 나도 인류구령을 위해 애태우시던 주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친구했다. 정원에는 년년묵은 올리브나무들이 여기저기 서있고 그 사이 사이에는 화초를 심어두었다. 예수 10자가에 못박히신 현상과 같이 생겼다는 올리브 고목이 있었는데 연륜은 2천년이 넘었다 한다. 올리브 나무의 수명이 2천년이나 되는 지는 모를 일이나 아마 옆순이 나서 자라고 또 옆순이 나서 자라 2천년을 이어왔을 수도 있겠지 그래 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듯 하다고도 생각된다.
거기서 떠나 성부(聖婦) 안나께서 사르셨다는 곳으로 갔다. 가는 도중 장의(葬儀) 행열를 만났는데 들 것 위에 관을 올리고 관의 뚜껑도 덮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행열을 관 전후로 해서 경건한 태도로 모두 경문을 (계와 응을 받으며) 외우며 지나갔다.
성부 안나성당에 들어가니 정원은 역시 이름 모를 나무와 화초로 꾸며져 있고 새 우지지는 소리가 들려 퍽 이색적이었다. 큰 수풀에나 들어온 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