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召(성소)] ② 분도회(OSB)
기도하고 일하는 家族(가족)
피난길 倭館(왜관)서 멎고 布敎(포교)
발행일1962-07-08 [제334호, 3면]
「몬떼까씨노」의 폭격은 단순한 건물 이상의 것을 파괴했다. 왜냐하면 모든 분도회 수도원처럼 「몬떼까씨노」는 「홈」(家庭)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본질적으로 가정적인 생활이다. 수사들은 신부이건 평수사이건 그들이 압바스(수도원장)와 하나이 되어있고 서로서로 다만 그들의 허의 초자연적인 사슬로 뿐만 아니라 공동 노동과 그리스도의 봉사에서의 상호협력에서 솟아오는 자연적인 애정과도 연결되어있다. 이러한 생활의 설계는 의심없이 실천되고 있다. 그것은 14세기의 시험에 견디었고 아직도 기독세계 위에 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성분도는 시초에 기도와 고행의 고독한 생활을 계획했다.
그러나 교회의 요구가 「몬떼까씨노」에서 수사들의 일족(一族)을 함께 모으도록 그를 고무(鼓舞)했다. 이 수도원이 북쪽에서 중앙구라파에 이동한 야만들을 가르치고 문명화시킨 많은 분도회 창설의 시초이다. 그들의 표양과 교육으로 수사들은 이 백성들이 안착(安着)해서 땅을 갈고 책을 읽고 쓰고 기도하도록 가르쳤다.
사실 현세계는 많은 학문과 대부분의 과거의 기록과 많은 예쑬과 음악이 오늘까지 유지된 것은 암흑시대에 학문의 진리를 그들이 고상하게 보호한 덕분이라고 하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기도하고 일하고」란 이 균형잡힌 「프로그람」으로 오늘의 분도회도 같은 교육적 문화적 선교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수도원을 시골 지방에 두는 전통은 수사들이 그들의 풍속인 충분한 농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더 제한된 「스케일」 위에 인근 도시의 교회에서 본당 일을 도우는 신부는 그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분도회 일이 성하게 된 것은 시작부터 분도회 기도로 지지받고 성화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염경기도는 성무일도를 창하기 위하여 낮동안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자기 형제들을 모으도록 하는 모든 수사들의 제일의 과제(課題)이다. 여기에 퍽많은 사사신공이 예컨데 영적 독서 묵상 등 첨가된다. 이 모든 것의 목적은 수사들의 매일의 생활을 더욱 그리스도화 하게 하고 영혼 구령을 위한 더 계속적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데 있다. 이것이 분도회 수도원 이 모든 일에 있어 천주께서 영광을 받게하는 기도와 일, 평화와 형제애에 있어 관대한 마음이 그것을 주기에 열심한 젊은이에게 주는 생활이다.
현재 경북 왜관에 자리잡고 일하는 분도회는 독일 성오틸리아수족(修族)이오 창설년월일은 1887년 1월 6일, 한국에서의 사업개시는 1909년 12월 13일이다.
총회원수는 12000명이오 한국에 있는 회원수는 디모테오 빗델리 (李) 원장 이하 약 7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