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적인 뜻에서는 개화기란 짧고 꽃이 져서 화려하지 않은 시기가 더 긴 동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인생에게 비기지 아니하고 우리들의 나라, 사회의 앞날을 위하여 어제와 지금과 같은 황폐·불모의 시대를 아름답고 화려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의욕(意慾)적인 고무(鼓舞)를 나보다-아니 우리 나이층보다 더욱 발랄하고 희망에 부픈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무기력, 부정, 부패, 무질서, 등등의 발언을 정치적인 유행어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슨 특권자나처럼, 우리 사회를 저희들 수중에 넣어가지고 온갖 협잡을 하다가 코를 다친 기성세대-그러기 보다 노폐물들의 층인데 우리 사회에는 지금 그러한 고루완미한 축들이 더 많고, 무식을 지혜의 무기처럼 항다반 남용하는 자들이 지도층에 버젓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 지도층이란 정치적인 면이기 보다 각기 우리들의 주변에 득실글거리고 있다.
대소의 집단 구석구석에서 옳고 바른 것을 통용하지 못하게 우둔과 무식과 부패·부정의 무리들이 가로막고 있다.
『당신들 자신 속에 소금을 가지라』 또는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 등등 그 교훈적인 예어(例語)가 허다하지만 나는 한층 강력하게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내가 있다』는 「꺄뮤」의 말을 내세우고 싶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한다』는 말은 이미 무기력한 전날의 철학자의 말로서 혈기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다만 그 「반항」을 이른바 「비트」 족적 혹은 기분파 무산계급적 처지에서 함부로 『나는 반항에 산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들은 학업을 통하여 옳은 것을 위한 모든 것에 관하여 연찬(硏鑽)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사회에 나와서는 마치 『언청이 나라에서는 입_ 성한 사람이 병신 구실하게 되는』분격과 비애에 부닥드릴 것이다.
그러한 썩어바진 곳에 당신들으 「소금」만이 될 것인가. 건실하게 반항하는 상대를 갖지 못하는 인간이란 무엇이 될 것인가. 부패에의 동화! 그것을 가리켜 처세수단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세속적인 것을 경멸하라는 것은 아니다. 현명하게 처세를 하되 처세의 전문가(아첨꾼)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에 닳고달은 현명이란 부패·부정에의 동화 이상인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많은 세월에 걸쳐 학창에서 공부를 쌓고 인격을 함양하였다. 그러나 완전히 그 세속과 분리 격리된 위치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대강은 그 세속- 그것도 정상(正常)되지 못한 세속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세속의 와중에 들어오면 환멸을 느끼거나 자칫하면 「영리」에 편들어 「초록동색」이 되고 말기 쉽다.
여러분들- 「모랄」의 가치를 생각해 본 일이 있을테지.
여러분들은 소설이나 영화 그밖의 작품을 많이 탐독하였을 터인데 그 이야기 속의 「모랄」이란 일개 작품상의 「모랄」만으로 그치는 것일까. 「모랄」이 없는 이야기란 가치 없는 작품인 것이다. 어떠한 이야기며 작품에 있어서 그것은 저그나문 인간을 그리고 있는한 일종의 「모랄」이 없어서는 아니 된다.
인간이 일체의 「모랄」이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므로써다. 모든 일을 「내일에의 희망」 등으로 수식처리하는 것은 체념이요 나아가서는 무기력이다. 매일매일 오늘 지금을 더 좋게 살려는 것은 찰라주의가 아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악에 반항하여 단결하라.
李相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