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2) 回回敎(회회교)가 판치는 예루살렘
聖寵 받지 못한 聖地
발행일1963-02-10 [제362호, 3면]
성부(聖婦) 안나라면 성모마리아의 어머님이시다. 따라서 성부 안나의 집이라면 성모님이 탄생하시고 자라신 곳이다. 어머님을 공경하라고 명하는 우리 가톨릭 성모님이 탄생하시고 자라신 곳이라면 얼마마한 정성과 노력으로 이 유서 깊은 자리를 돌보고 보살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조그만한 경당이 서 있을 따름이다. 창은 추녀밑에 바짝 붙여 조그맣게 몇 개 내어 놓고 그나마도 살창을 했기 때문에 매우 어두웠다.
성지순례에서 여러 번 느낀 것이지만 만일 이 유서깊은 곳이 「로마」에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성당이나 정원을 이렇게까지 초라하게 버려두었겠는가? 베드루 대성전이나 바오로 대성전은 두드라도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 성당만한 것이라도 세웠을 것이 아니냐? 그런데 그저 유서있는 곳에 장소표시와 보존을 위해 탑을 세우는 셈치고 성당을 지어두엇다는 정도다.
이것은 아전인수격인 말처럼 들릴런지 모르지만 천주교회의 잘못은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천벌인 것이다. 천주교회에서는 오늘날까지 일반 미신자들에게 어굴하게 비난을 받고 있는 지난(至難)의 계획 십자군을 일으켜가면서까지 성지회복과 그 보존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메 오늘날 성지가 이꼴이 된 것이다. 왜 실패했는가? 그것은 성지회복을 천주 원하지 않으신 까닭이다. 왜 원하하시지 않았는가? 그것은 천주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까닭이다. 왜 버리셨는가? 그것은 성경에 『에루살렘아 네가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내신 자들을 네가 또한 돌로 처죽이는도다. 나 몇 번이나 네 자식들을 모으기를 마치 닭이 제새끼를 제 날개 밑에 모음과 같이하려 하였으되 너는 싫어하였도다. 슬프다 너희 집이 장차 비리로다.』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시와 애절히 눈물을 흘리시며 이르시던 이 말씀처럼 천주께서는 여러 번 당신이 간선하신 백성들을 돌보시고 보살펴주셨건만 그들은 그것이 자기내들의 특권인양 여기고 우쭐거렸을 뿐 조금도 선민다운 생활을 하지 않고 심지어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참아 눈으로 보지 못할 참형에 처했으니 저들이 천주의 노여움을 산 것은 마땅한 일이며 천주의 노여움을 산 자들이 천주의 이름으로 어떠한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니 만일 십자군이 성공했더라면 가톨릭교회가 이 나라에서도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요. 가톨릭 교회가 이 나라에서 유서 깊은 곳마다 큼직큼직한 성전을 지었을 것이요. 큰 수도회가 많이 들어왔을 것이며 그렇게 되었다면 세계 제일의 성경학대학도 섰을 것이니 그리고보면 우선 큰 건물들로서 도시의 면목부터 일신되었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자연 성지의 이름도 더 높아졌을 것이요 따라서 순례자들의 수효도 더 많아질 것이니 그들이 뿌리고 가는 외화만 해도 년 기십억이 될 터이니 주님의 이름 때문에 저들의 산업이 크게 발전되었을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불행하게도 십자군이 실패하메 무지막지한 아랍인들이 물러가지 않게 되고 그들이 물러나지 않으메 회회교가 성행되고 회회교는 문화를 그다지 애써 숭상하지 않으니 오늘날 성지의 모양이 이꼴이 된 것이리라.
성부 안나의 집을 떠나 「베사이다」를 찾았다. 성경에는 「면양」지(池)라 번역되어 있는데(요왕 5·2-16) 이곳은 지금 발굴 중에 있다.
옛날의 성외목욕장이었는데, 하드리아노 대제 때는, 이 곳에 신도시가 서서 신전을 지었던 것을, 성녀 헬레나(꼰스단딩대제왕후) 때에 헐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층층으로 쌓인 큰 초석들이 남아있다. 계단을 따라 지하 깊숙이 내려가보니 지하라 어두워서인지 물은 뿌연 흙탕물처럼 보여, 맑지 못하다. 물에 손을 담가보니 그다지 찹지도 않다. 예수 당시만 해도 이곳에 여러 가지 질병의 환자들과 불구자들이 모여, 천신이 내려와 물을 혼들기를 기다려 제병을 고치려 했다는데 지금은 사람의 그늘조차 찾기 어렵다. 이것만해도 벌써 이 나라에 영적이 끊긴 표요, 그리스도 후 이제 다시는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으니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메시아였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저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 아니더냐? 그러메도 그들은 아직도 불신에 고집하고 있다. 가련한 일이다. 여기를 떠나 비라도의 궁전이 있던 곳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