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기까지 (13) 祈求(기구) ②
발행일1963-02-10 [제362호, 4면]
수련이는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사보이 호텔」로 찾아가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미남이를 길러가며 박영진만을 기다려온 내력을 말해야 한다.
잠깐 동안에 일어난 일이지만 오명철에게는 몹시 거처럽게 보엿을 것이니 무슨 말로 결백을 입증할 것인지 기가 막혔다.
『수련아! 내일은 경찰서에 먼저가야 한디』
옆에 누웠던 순옥이도 수련이의 괴로운 심정을 아는듯 넌지시 입을 열었다.
『경찰서에 먼저 갔다가 거기서 늦으면 「사보이 호텔」은 또 놓치게…』
『그렇지만… 두구두구 귀찮을 걸 먼저 치뤄야 해』
『아이 똑같은 시간에 두 가지 일이 맞걸니다니… 큰일났어』
『경찰에 가서는 그저 모든 것은 진영이한테 미루어 넘겨』
『그야 물론이지 내가 알게 뭐야 난 그저 진영이따라 인천 송도까지간 간것뿐야. 홍씨와 만나자는 약속도 한 일 없구…』
『그렇지만 너는 모르게 진영이가 홍전무에게 무엇이라구 했는지 그걸 아느냐 말야』
『그걸 내가 알게 뭐야. 왜 하필이면 미남이 아버지 친구분이 찾아오는 날 형사가 오냐 말야』
『그럼 진작 형사를 떼버리지 않구 어물어물 따라 갔느냐 말야』
『처음에 너무 당황했지 뭐야, 형사를 따라가다가 생각하니까… 용기가 나지 뭐야』
『뭐 괜찮을 거야. 증언이나 듣자는 걸거야』
『증언이 무슨 증언이야 내 참』
『들리는 소문이 홍전무가 회사돈을 많이 썼대』
『그럼 사기꾼이게…』
『그런가바… 돈 쓴 자리를 모조리 뒤지는 모양이야』
『난 돈 한 푼 받은 일 없으니까…』
『그렇지만 중간에서 진영이가 받아 썼는지 뉘알어』
『설마 진영이가 나 준다고 속이구 홍전무 돈을 받아서 가루챘을라구』
『모르는 소리마… 처음에는 진영이 자신이 홍전무를 상대하다가 홍전무 눈치가 달라지니가 이번에는 얼굴 이쁜 아이들을 중매를 드는거야』
『세상에 뭐 그런게 있어』
『다 먹구 살자는 노력이겠지만 진영인 나뻐. 어떻게든지 홍전무에게 돈만 뜯어 쓰자는 배짱인가봐』
『내가 너무 어수룩해서 걸려들었지 진영이가 그런 줄은 몰랐대두』
『진영이가 동무들 소개해놓고 중간에서 가루챈 돈만 해두 거액일거야』
『아이 머릿살 앞아… 그만 그만…』
수련이는 들리는 소리마다 추접고 깨름하여 다시 더 묻고싶지 않았다. 순옥이 역시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밤은 어느 틈에 밖아왔다.
수련이는 입맛이 깔깔해 군입으로 나섰다.
『아니 아침 한 술 뜨구 나가… 괘니 허기지려구』
아주머니의 쭝얼대는 소리를 그대로 못 들은 채 수련이는 언덕바지를 총총이 내려섰다. 순옥이 말도 그럴듯해서 경찰서에 들려서 「사보이호텔」로 가기로 작정했다.
수련이는 경찰서 앞까지 와서 「사보이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오명철이와는 곧 전화가 통했다.
『거 뉘십니까』
아직도 잠이 덜 깬 음성이었다.
『저는 저…… 어제밤에 뵈인 수련이올시다』
『네… 네 미스김이시군요』
『네 어저께는 너무 실례가 많았어요』
『엇저녁일 잘 되셨어요』
묻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마치 경찰서로 끌려갔던 죄인 취급이다.
『제게는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오해하시면 곤란해요』
『하…하… 오해라니… 그럴리야 없지만 어쨌든 무사히 나오셨으니 잘 됐읍니다』
『오늘 좀 만나 주시겠어요』
『만나 뵈어야죠. 오늘은 온종일 「호텔」에 있겠어요. 틈 계신대루 언제든지 전화주세요. 어디로든지 가겠읍니다』
『그럴 것 없이 몇 시간 후 제가 「호텔」로 찾아가겠읍니다』
『그럼 기다리겠읍니다.』
수련이는 오명철이와 약속되고 보니 한결 가슴이 후련해졌다. 그는 곧 경찰서로 들어섰다. 수련이로서는 평생 처음 들어서는 경찰서이다. 어쩐지 공기가 침울하고 어디선가 누가 노리고 보는듯 공연히 가슴이 설레었다. 결국 경찰서에서 알고자 하는 것은 홍창식이와의 관계였다. 두 사이가 얼마나 접근했던가 또는 홍창식이에게 돈은 얼마나 얻어 썼는가. 그리고 윤영진이와 같이 약을 먹은데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수련이는 무엇보다도 사나이들이 여자에게 미치면 회삿돈이고 남의 돈이고 마구 글어쓰고 몸을 망친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우기 수련이가 취조받는 마즌쪽에 쭈그리고 앉은 여인이 홍창식의 부인이라는데 더욱 놀랐다. 게다가 국민학교에도 채들어가지 않은 아들까지 딸린걸 보고는 무책임한 사나이에게 분노를 참지 못했다. 홍창식의 부인도 수련이가 자기 남편 관계로 불리워 온 눈치를 채었는지 가끔 옆눈으로 바라보는 표정이 몹시 차가왔다. 숫제 저주하는 것 같았다. 수련이는 몸서리를 쳤다.
세상에 술집에 와서 큰 소리 치고 돈을 뿌리는 잘난척하는 무릇 사나이의 가족들은 다 저러리라 생각을 하니 숫제 수련이는 고개가 수그러졌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구 혹 또 부르더라도 미안하지만 협조해주시는 의미에서 꼭 좀 나와주세요』
계정은 제법 점잔은 말을 했다. 수련이는 시간이 많이 안 걸리고 무사하게 나오는 것만 하늘만 싶어서 곧장 문을 나섰다. 거리는 여전이 분잡했다.
마치 오랫동안 그리던 고장같이 눈이 번했다.
수련이는 곧 택시를 잡았다. 합승도 타지 않던 수련이었만 마치 무슨 큰 행운이나 잊어버릴 것 같아 초급한 마음에 「사보이 호텔」로 달리려는 것이다.
수련이를 맞아 들인 오명철은 아직도 잠이 덜 깬 사람 같았다. 침대 받치에 여자의 부라우스가 몹시도 빨개보였다.
『이 사나이가 여자와 동행을 한 거구나. 수련이는 직각했다. 같이 묵고 있는 여인이 오명철의 부인이라구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쩐지 불쾌했다. 미남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만난다는 사나이가 이래선 맥이 풀릴 지경이었다.
『게 좀 앉으세요』
수련이는 「쏘파」에 걸터앉으며 곧 물었다.
『미스터 박은 지금 어디계세요』
오명철은 일부 거드림을 피려는 것인지 대답은 하지 않고 우선 담배를 한 개 끄내 불을 붙었다. 그는 유유히 첫목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하는 짓이 몹시 메스꺼웠다.
『박군은 지금 홍콩에 있읍니다』
『그런데 어쩌면…』
『물론 그러실겝니다. 그러나 그 때 박군은 좌익으로 몰려서 부득이 홍콩으로 다라났거든요. 뒤를 쫓기고 보니 부득이 미스김에게 연락도 하지 못한 것이죠』
『그럼 홍콩에 가서도 엽서 한 장두 업어요』
『그건 할 수 없죠. 만일에 미스김에게 엽서라도 띄우면 그 편지는 미스 김보다 사찰기관에서 먼저 봅니다. 그렇게 되면 첫째 미스김이 먼저 괴롭게 지내게 되거든요』
지난 일은 어쨌든 지금 당장 어떻게 될 것인지 그걸 알기에 급했다.
『그래 지금은 어떻게 지내구 있어요』
『글쎄, 인제는 뭐 좌익이구 공산당이구 다 청산되구 건실한 실업가가 됐읍니다』
『그래서요.』
『인제는 세상도 여러번 달라지구 박군도 당당히 귀국할 수도 있지만- 우선 날더러 먼저 가보구 오라구.』
『……』
『애기 이름이 미남이라죠.』
『네!』
『안양에 있다죠.』
『네.』
『이번 길에 꼭 그 미남이는 데리구 와달라는 부탁입니다.』
『미남이를요?』
『미남이는 박군의 아들이 아닙니까?』
『그러면 난 어떻게 되죠』
『게 까지는 의견을 듣지 못허고 왔어요. 우선 미남이 먼저 데려가려나 봅니다』
수련이는 왈칵 눈물이 치밀었다. 도대체 이 사나이가 그간 수련이가 지나는 일을 사긋사긋이 알고 있는 것부터 이상하고 불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