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스로마나」(가톨릭大學生 및 知性人 機構) 아시아지역 책임자 마리아회원 다벤포르트 신부와 필립핀 학련회장 레오나르도 L.탄쿠안 2세(世)군이 약 10일간 서울·광주·대전·대구 및 부산 등지의 학생지도 신부 및 학생회 중요 회원들과 긴밀한 접촉을 가졌다. (旣報)
대한가톨릭학련 아오스딩 나(羅相朝) 신부의 안내를 받아가면서 줄곳 학생들과 만나고 그들의 의견과 고충을 들어주고 그 해결의 방도를 설명해주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미국인의 「제스쳐」, 그리고 그 풍모는 세계 어디서나 미국인임을 감추지는 못한다.
이미 그것은 우리에게는 친숙해진 것이다. 다벤포르트 신부와 같이 학생지도 신부라는 간판을 달고 나섰을 때 그 쾌활한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스위스 「프리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불어는 마음대로 구사하고 있었다. (프리부르크는 佛語使用洲) 그 위 철학은 독일어로 공부했다고 하니. 3년 전부터인가 「빡스 로마나」 본부 건물은 「프리부르크」 정문 언덕을 다 올라가다가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제1차 대전 후 이 가톨릭적 평화재건(대학생 운동을 통한) 운동이 이곳에서 발생(1921년) 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곳에 본부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빡스·로마나」는 거의 완숙한 세계기구가 되었으며 다른 국제단체에 비겨 그 전통과 활동 범위에 있어서도 굴지(屈指)의 것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곳잘 「빡스·로마나」의 회원 출신인 저명한 유엔 외교관 학자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을 열거한다. 그런 것을 「로마」 성청도 충분히 인정했기 때문에 중요예산 항목을 도와주고 있는 것인가 한다.
다벤포르트 신부는 학내에서의 가톨릭 「셀」 운동에 대단한 관심과 또 상당한 「테크닉」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셀」 활동에서도 기본 자료는 기도와 교리문답이겠지만 마치 생물체(生物體)의 세포(細胞)처럼 거기에도 성장과 영양을 공급해 줄만한 높은 단위(單位)의 각종 영양소가 필요한 것을 강조했다.
각 「셀」 회의에 참가한 인상을 묻는데 대하여 아직 「디스컷슌」에 능숙지 못한 것을 지적했다. 외국어를 사용한 탓을 꼽기도 했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덮어두고 문제를 포촉하는데서부터 시작하여 좀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데 접근해가는 더 많은 노력(노력이라기 보다 테크닠)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학생들이 달려들만한 토론 재료를 내걸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부터 지도신부의 많은 경험과 또 새로 발전하는 사태를 관찰해 가는 면밀한 노력이 요청된다. 국내 중요 학생지도 신부들에게서도 똑같은 인상을 받지만 이번 다벤포르트 신부의 능숙한 솜씨를 볼 때 학생지도란, 이것은 온전히 전문가의 소관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학생성소(聖召) 문제에 언급했을 때 사실이 성소의 부족은 교회가 당면한 긴급한 일에 속한다. 다벤포르트 신부의 학생성소 강조에는 십분 동의하지만 이곳서는 신학교 문이 좁은데 그것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나오자 가장 현실적인데를 못 보았다고 하고 앞으로는 기회 있으면 한국의 신학교에 돈을 보내자고 역설할 것을 단단히 다짐하기도 했다.
이런 것을 비롯해서 잠시 돌아보는 사회실정조사 여행에는 많은 허술한 점을 피할 길 없는 법이다. 이런 점은 국내 지도 신부들의 정확한 판단이 거기 보충되고 그대로 반영되어야 하겠다. 또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필립핀의 가톨릭 학생운동을 소개할 때 탄쿠안군은 항상 필립핀이 90%가 가톨릭인 것을 전제했다. 필립핀은 아시아의 유일한 가톨릭국이다. 허나 그곳을 보고 온 이곳 사람들의 말은 별로 가톨릭국 같은 인상을 받지 못한듯이 들린다. 이 점을 비추었더니 다벤프르트 신부는 자기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필립핀에 갔었다고 했다. 그는 3년 남직하게 일본에 있었으니 만일 한국이 일본과 대동소이하다면 가령 학생들이 입시·진학 그리고 학자금에 고생하고 있는 것은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필립핀의 사정은 아주 다르며 도대체 고교까지의 진학에 별난관은 없고 교육의 기회는 구미 각국과 별 차이 없는 것을 볼 때 역시 천주님은 가톨릭인구가 왕성한대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의미심중한 표현이다. 그곳의 경제사정과는 달리 교육의 양(量)은 대단한 것이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가톨릭에서 그곳 교육에 많은 노력과 재정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로서도 한국 가톨릭학생 운동이 「빡스·로마나」와 긴밀히 유대해 간다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아직 한국학생들의 사정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유학생 수효도 제일 빈약하다. 이런 의견에도 다벤포르트 신부는 『예스』를 연발하기에 인색지 않았다. 대한학련 및 각 교구학련은 이제는 건실한 토대에 섰다. 8년간 장족의 발전일로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국제회의 경험도 쌓고. 다벤포르트 신부의 말대로 『아시아에서는 가장 활발하고 인상적인 곳이다』고 한 것이 그냥 외교적인 수인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