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후 제6주일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일곱개의 떡과 몇개의 생선을 가지시고 사천명이나 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고 먹고남은 「빵」 부스러기 일곱 광주리나 거두게 하신 기적에 대한 보고가 실려있읍니다. 이 사적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 여러가지 반향을 일으킬 것입니다.
예컨데 초자연계도 모르고 우주와 자연의 심오함도 모르며 단지 그 법칙만을 계량아고 분석하는 「뜨내기 과학자」는 그런 일이 될 법한 일이냐?
그것은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며 일소(一笑)애 버릴 것이며 종교도 모르고 다만 육신생명만을 돌보기에 급급하는 세속의 자식들은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일곱 광주리 「빵」 부스러기는 어떻게 하였을까 혹은 오늘도 그와 같은 영적을 행할 수 있는 위인이 우리중에 거처하시며 가끔 그런 영적을 행하셨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성세성사로 말미암아 천주의 자녀로 태어났고 또 이미 오래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전자와 같이 기적의 가능성을 부인하지도 아니할 것이며 후자와 같이 육신생명만을 위하여 혈안이 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日用할 糧食)을 구하기 위하여 허덕이는 천주의 자녀로서는 오늘 복음을 들을 때 인자하신 천주께 대한 의문이 전혀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일곱개의 「빵」으로 사천명이나 배불린 인자하신 구세주께서 왜 우리의 곤궁을 돌보아주시지 아니하시는지? 무엇때문에 천주께서는 묵묵하시는지? 사실상 「빵」 문제는 천주의 자녀들을 위하여서도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하며 기구하라고 가르쳐주셨읍니다. (마두 6장 11절)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위하여서는 육신생명을 위한 「빵」문제가 절망에까지 빠지게 할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며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천주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어찌 일용할 양식 때문에 실망에 빠질 것입니까?
원칙적으로 보아 「빵」 문제 때문에 천주를 패역하고 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은 참된 신앙심을 갖지 못하였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신적 면을 등한시하고 육신만을 돌보기에 골몰하기 때문에 자주 실망하게 되며 또 천주의 강복도 여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영신을 돌보아야 하며 천주님께 무엇을 구할 때에도 위선 영신적 것을 먼저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 육신생명을 위하여 필요한 것까지도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 하시기를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은 덤으로 주리라!』고 하셨읍니다. (마두 6장 33절) 오늘 복음을 보면 「빵」 때문이 아니라 영혼과 육신의 병을 고치고 천주의 나라에 대한 생명의 말씀을 듣고저 한 것이 뜻밖에도 육신의 배까지도 불리게 되었읍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만 육신의 배를 불리기 위하여서나 육신의 편리만을 위하여서 기적을 행하시지 아니하셨읍니다. 이 때문에 기적으로 배를 불린 유태인들이 기적이 있었던 다음날 다시 배를 불리울가 하여 예수님을 찾아갔을 때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책망하셨읍니다. 『나 진실히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음은 기적을 본 연고가 아니오 오직 「빵」을 먹고 배부른 연고니라. 너희는 썩어질 음식을 수고하여 구하지 말고 오직 영생토록 보존하는 음식을 구하라!』 (요왕 6장 26절)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편리를 위하여서 영적을 행하시지 아니하셨읍니다. 예컨데 「베타니아에서 떠나오실 때 시장하사 멀리서 실과를 얻으실가 하여』 (말구11장 12) 가보실 지경이였으나 기적을 행하지 아니하시고 『길에서 피곤하사 그대로 움물가에 앉으사…「사마리아」 부인에게 내게 마실 물을 달라』고 청하실 지경이였으나 기적을 해치 아니하셨읍니다.(요왕 4장 6-)
예수의 뒤를 따라 높은 성덕에까지 도달한 많은 성인성녀들 역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적을 많이 행하였으나 자기자신을 위하여서는 오로지 통회와 보속만을 생각하였읍니다.
우리는 우선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합시다. 그리하면 인자하신 천주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입니다.
崔昌成 神父(강론=慶北 柒谷본당 주임 성분도회원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