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기도]
발행일1962-07-22 [제336호, 2면]
■ 일반의향
苦行하며 公議會 도우자
『모든 신자들이 열렬한 기도와 자발적인 육체고행으로 공의회 사업을 도울 수 있도록』
주예수여, 당신은 오래동안 「나자렡」 가정에서 기도하시고 일하셨나이다. 우리의 개인 성화(聖化)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우리의 일을 바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소서. 제2차 바이깐 공의회가 곧 개최되려고 하는 이때 우리는 성신이 모든 주교들에게 광명과 힘을 주시도록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고통을 받치고저 하나이다.
매일 우리의 감각과 우리의 호기심과 우리의 태만과 우리의 허영을 극기할 많은 기회가 우리에게 있나이다. 그것을 관대하게 받고 매일 제대상에서 거듭되는 당신 희생에 그것을 합할 줄 알게 해주소서.
성신이여 구원의 희생에 더욱 더 우리를 일치시킬 수 있는 어떠한 자발적인 희생의 생각으로 우리를 비추어주소서.
극기를 실천하는 가운데 내적 자유를 발견하면서 기쁨과 평화 속에 쉬게해주소서.
그리하여 더욱 더욱 이 세속과 죄에 죽으면서 마치 이미 우리 영혼이 영광의 몸으로 사는 것처럼 더욱 열심히 생활할 수 있게 해주소서.
성부여 당신 아들 예수의 교회를 너그러히 바라보소서.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요 우리는 그의 생명으로 사나이다. 그 안에 빛나는 광채로 끌리도록 더욱더 그 생명이 자라도록 해주소서. 교회에서 아직 멀리 있는 그들이 가톨릭교회로 바삐 돌아와서 마침내 한 우리와 한 목자가 되게 해주소서.
■ 전교의향
善의 敎會, 바르게 認識되길
『서로 다른 종족(種族)의 특징과 요구에 따라 전교지방의 교회가 그 가르치는 임무를 효과있게 이행할 수 있도록』
전교지방교회의 자유는 교회 창설자가 인류의 선을 위하여 교회에 맡기신 사명을 다하기에 필요하기 때문이오 무슨 특권을 누리고자 함이 아니다. 이 자유가 위험에 처해있고 조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더욱 요구된다.
오늘날 자기 선전을 위해 필요한 교회의 부정할 수 없는 권리가 가끔 인증되지 않고 부인되고 짓밟히고 있다. 이것은 특히 공산주의의 세력과 그들의 광신적이고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나라의 경우가 그러하다. 북한과 중국와 북베트남에 박해가 처참하게 계속되고 자유로히 장성할 수 있는 교회의 권리가 유린되고 있다.
그것은 소위 불법성직자 애국적교회로 신앙을 위해 투옥되어 있고 강제노동수용소에 있는 주교 신부들을 대치시키고 있고 신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자유 -집회 학교 출판- 를 거부하고 있다. 무자비한 침묵의 시기요 파괴의 시기이다.
그 이외의 나라에서도 「모슬렘」이던 아니던 노골적이 아니기는 하지만 압박이 사실화 되어있다. 마침내 극(極)에 까지는 가지 않으나 여러나라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가톨릭활동의 존중에 어떤 신뢰의 결핍을 느낀다.
신흥국가들은 자기들이 강하고 자기네 궈리가 상실되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것을 보일 필요가 있다. 누가 이를 부정하랴.
그러나 이 독재주의의 경향은 개인과 교회의 권리를 회생시키기까지 나타나서는 아니된다.
정부는 교회로부터 아무런 것도 무서워할 것이 없다. 교회의 활동은 다만 그들 국민의 정신적 물질적 번영을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이점 가톨릭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강하다.
선교(宣敎)의 보호제도가 어떤나라에 성립되는 것은 역사적 환경 때문이요 비오 11세께서 1926년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교회는 방인(邦人)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아니되고 그것은 악을 거르려 그들과 그들의 번영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면 아니된다.』
이 시기는 지나갔다. 지금은 교회와 국가의 충분한 동의와 반족에서 기초(起草)될 수 있는 계약을 제하고는 교회의 선을 위해 이제는 특별한 권한도 제가 제기되지 아니한다. 성직자는 정치에 간섭해서는 아니되고 신자는 나라의 생활에 활동적인 부분을 담당하여 선량한 시민으로 자처해야 한다.
『교회가 얼마나 시민사회의 정당한 어른을 존경하고 또 존경하도록 가르치며 얼마나 공동권리와 안전과 자유 이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 것을 선교사와 신자들에게 가르치는지 모든 시대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을 모르는 자가 없다』고 역시 비오 11세께서 말씀하셨다.
신응국가가 교회의 태도에서 위험을 느끼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예수께서 『진리는 너희를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말씀하셨다. 최근 『마뗄 엗 마지스뜨라』 회칙에 환기된 사회교리는 질서와 평화가 사랑으로 지배된 세상에 인류의 확장을 허(許)하는 이상적 사회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교회는 사람들의 현대적 과업을 경멸하지 아니하고 천주께 그의 사회적 책임을 둔다. 교회는 그들의 불행을 없이하고 그들을 일으키고 가르치도록 도와준다. 비오 교황께서 중국교회에 하신 말씀이 다른 나라에도 적응할 수 있다.
『교회는 정치적 야심이나 속적(俗的) 관심이 조금도 없다. 예수께서 우리 모든 이에게 주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 뿐이다. 그것이 그의 제자임을 참으로 알게하는 표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자유는 사실 개인과 국가에 반영된다. 여기 편견을 치워버리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다.
빛이 진실한 자에게 내리고 교회가 그 표양과 교리로 고상하고 공평하고 아버지 나라의 구제자의 길을 보이는 것을 이해하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