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敎育의 目的
천주교요리문답에 『사람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 명기되어 있음을 본다. 여기에 인간은 어떠한 목적으로 그 무엇을 목표로 삼고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그 삶에 대한 목적과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도가 명시되어 있은 즉 이제 새삼스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고 가치있는 삶이라 할 것인가? 또한 인간의 삶을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한 교육이란 그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이며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교육방침을 어떻게 세워여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될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법 제1조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인류 공영(共榮)의 이상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하였다. 이 말은 선뜻 이해하기 곤란한 점도 있다. 그러나 교육목적을 가톨릭견지에서 볼 때에는 그 목표가 아주 뚜렷하다. 그것은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한 그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는가? 그 목적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인간교육은 가톨릭적 인간관(觀)을 기반으로 하는데에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고 또한 여기에서만이 비로소 인간교육은 완전하고도 충분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가톨릭직 인간관이란 어떠한 것인가? 쟈끄 마리땡이 말(王學洙 · 安仁熙 譯의 敎育哲學)을 인용하면 『인간이란 이성이 부여된 동물이며, 그의 최고의 존엄성은 지성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천주와의 개인적 관계에 있어서 자유로운 개인이다. 그의 최고의 정의는 천주의 법칙에 자진복종하는데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신성한 생활과 은총이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요구되는 하나의 죄인이며 또한 상처입은 동물로 그의 최고완성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하였다.
이같이 천주의 창조활동에 의하여 생(生)을 부여받은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은 선생(先生)이 후생(後生)에 대하여 ①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②천주의 법칙에 자진봉족하려 노력하고 ③천주께 가까이 전하려고 온갖 정성을 기울일 수 있겠금 그 삶을 지도육성하는데에 있다고 본다. 즉 교육이란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한 그 위대한 사업을 이어받아 선생으로서의 인간이 후생인 인간의 삶을 천주의 뜻에 보다 가까울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교육자이 직능은 천주의 사업에의 참가이며 또한 봉사라고 볼 수 있고 자고(自古)로 교직(敎職)을 천직(天職)이라 함은 그 근본 의의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1960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교황 요안 23세께서 인간의 직업중 가장 신성하고 고귀한 것은 성직자(聖職者=인간의 영혼지도자) 교육자(敎育者=인간의 지성과 심신의 지도자) 의사(醫師=인간의 육신을 다스리는 자)라하신 말씀도 교육자의 임무와 직능을 이상의 의도에서 말씀하신 것이라 하겠다.
이상 가톨릭교육의 목적을 논한바 진정한 철학은 신학을 토대로 하여서만이 이루어짐과 같이 진정한 인간교육은 가톨릭적 인간관을 기반으로 하는데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學校管理
무릇 어떤 가정을 막론하고 대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면 직각적으로 품겨주는 그 무엇을 느낄 수 있듯이 학교도 들어서자마자 품겨주는 그 무엇을 느끼게 된다. 현관을 거쳐 교실까지 돌아보면 학교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과 또 그 학교의 독특한 교풍(校風)을 상상할 수 잇게 된다. 마찬가지로 가톨릭에서 경영하는 학교라면 역시 어디인지 모르나 가톨릭적 냄새가 풍겨나오고 또한 풍겨나와야 된다. 그러나 가풍(家風)이나 교풍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학교의 교육목표와 방침과 교육실천에 의하여 장구한 시일과 적당한 단계를 밟아야만 비로소 훌륭한 교풍이 이루어짐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학교의 움직임을 크게 보아 관리(財産管理, 敎師管理, 學生管理) 장학지도(奬學指導)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가톨릭에서 경영하는 학교는 상기한 방명이 가톨릭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은 제론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첫째로 재산관리면에 있어서는 교사 교구(校具) 비품 실습지 등이 외관상으로 정리 정돈되고 내면적으로 알뜰히 보관되고 또 합리적으로 활동되고 있는가? 경리면에 있어서도 규모있는 살림살이를 하면서도 가능한 범위내에서 교사나 학생에게 불편을 주지않고 교육의 효과와 능률을 올리고 있는가?
둘째로 교사들이 확고한 신념과 뚜렷한 교육관을 가지고 권위있는 교육을 하고 있느냐가 기본문제라 하겠다.
특히 가톨릭학교에 근무를 희망하는 자는 교사로 봉직하기 전에 우선 자신의 신앙에 대한 태도가 선결문제라고 보겠다. 신앙과 직업이 일원화(一元即) 되지 않는 이상 신념과 자신이 확고하지 못하며 따라서 능동적인 것에 반하여 수동적이고 자신의 실력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민도 희열도 맛보지 못하는 무의미한 생활이 지속되어 참된 삶의 보람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하나 신자교사는 어느 의미에서 미신자 교사보다 두려운 점이 더욱 많다는 것을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헛된 우월감과 함부로 설치는 경거망동은 절대로 용인될 수 없으며 사랑과 겸손, 인내와 아량으로서 동료와 제자에게 좋은 표양을 보이고 중견적 존재로서 직장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봉사하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미신자인 교사는 설사 신자가 안된다 할지라도, 종교를 이해하고 그 분위기 속에 젖어서 같은 보조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생활태도를 가짐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안위와 교육적 효과를 걷을 것이다.
셋째로 학생관리에 대한 문제다. 의사는 환자치료에 앞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고 전쟁의 승리는 적을 잘 아는데 있다는 손자(孫子)의 병법과 같이 학생을 지도하려면 그 대상인 학생을 잘 파악한 다음에 지도원리에 입각하여 그 대상에 적절한 지도방법이 세워져야 한다. 즉 학생의 성별 연령 질의우열 가정환경 신앙별 등으로 보아 대상자(해당학교)가 어느 위치에 놓여있는가를 고찰한 후에 『성장하는 생명이 건전하고도 올바른 성격을 갖도록 전인도야(全人陶冶) 보도(補導)하는 것이 교육자의 생명이라』는 지도원리와 올바른 가톨릭적 인간을 양성하고자 하는 가톨릭적 교육의 목적을 기반으로 하는 지도방법이 필요하다.
洪承恒(대구 효성여자고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