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불란서 「리옹」에서 탄생한 안또안 쌩떽쥐뻬리(1900-1944)가 오늘 살았다면 63세가 된다.
이렇듯이 여러 번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아니한 이 사람은 가공(架空)의 인물의 영웅과 좀 비슷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인물 이상의 실지 인물이 되고 싶어했다. 이 천국의 기사(騎士)는 수계(守戒)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 정말 신자다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즉 인간을 존경하고 인간을 위해 마음을 쓰고 따라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이해받고 싶어하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 「타이틀」로 그의 생애와 업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계 문학 전집 제1기 13권 참조)
항공의 개척자, 탐방 기자, 전시 조종사, 이런 것 등이 쌩떽쥐뻬리의 일생의 중요한 변천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안락과 위험 속에 있지 아니하였다면 그 생애는 결코 안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그가 원하였던 것과 같이 불란서를 위한 민간의 교외 사명을 다하다가 1944년 7월31일 독일 구축기의 추격을 받아 비행기에서 죽었다.
쌩떽쥐뻬리는 본래 문학가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활동가였다. 그러나 그에게 활동이 넉넉지 못하였다. 그는 문화의 한 가지 방편으로 문학을 택하였다. 문학을 통하여 인간의 공로와 정서 그 실패와 성공이 그를 엿보고 있는 허무에서 빠져나온다.
모땔랑과 까뮈가 전쟁에서 찾는 위험의 접근이나 용감한 우의를 쌩 떽쥐뻬리는 자기 직업의 연구 속에서 발견하였다. 그는 국가가 준 자기 의무에 대하여 명상하면서 문인이 된 것이다.
그의 윤리는 위대성의 윤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몬땔랑처럼 교만 위에 서 있는 것도 아니요 마르로처럼 반항 위에 서 있는 것도 아니요 오직 불만 없는 승락(承諾)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 도덕상의 법칙과 의무는 무자비하지도 않고 엄격하지도 않다. 사실 그는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 도덕을 제시할 때 많은 미소를 지우는 순박성으로 대(對)한다. 그는 자연적이요 섬세하고 순결한 일 안에 있는 감수성이 한없이 강한 영혼에게 시인이 된다.
쌩 떽쥐뻬리는 영웅다운 희열에 가까이 가기 위하여 평범한 행복을 초월하라고 우리에게 강요한다. 작가의 명상의 근원에 인간 불멸의 깊은 감정과 정복자와 건설자의 비타협적인 도덕 이상으로 그 멸성을 지니는 의지가 있다.
높고 귀한 윤리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을 때 약간의 불안이 있다. 니체는 그의 힘의 의지의 거짓 종교와 또한 우리가 그 년에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역사 위에 생길 수 있는 모든 익나적 결론과 더불어 훨씬 멀리 있었다.
니체에게 있어서는 영웅주의는 한 특정인간의 「타이프」인 몇몇 사람에게 실현될 경향이 있는 귀족 계급을 건립하였다. 그것은 기타의 사람들을 무시하기까지 하였다.
쌩떽쥐뻬리와 함께 니체는 지나갔다. 영웅은 백성에게 봉사해야 하고 그는 영웅이 될 수 있는 좋은 뜻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 영웅주의는 두 가지 점을 강조한다.
한편 그것은 본질적으로 영혼의 완성이요 또 다른 한편 그는 사람을 사물의 우정과 인간의 사랑에 둔다.
그는 개인을 인간답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먼저 영웅을 만들고 그 다음에 그는 그를 인류에게 접근시킨다.
우리는 그의 작품 『사람들의 땅』에서 아래와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 『한 가지 직업의 위대성을 무엇보다 먼저 아마 사람들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우리 밖에 자리 잡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에 의해 우리의 형제들과 결합되었을 때만 비로소 우리는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우리가 서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한쪽을 쳐다보는 것임을 경험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들이 같이 있을 한 봉우리를 향해 같은 「로우프」에 묶여져 있지 않고서는 동료랄 것이 없다』
쌩떽쥐뻬리는 비니(VICNY 불 시인 소설가 극작가) 키쁠링(KIPLING 영 소설가)의 이름으로 불린다. 사실 그의 작품은 그 행도으이 철학과 인연이 있다. 같은 진실로 살고 붓을 들면서 희생과 인류 형제애와 책임을 찬양하였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위대성 그것은 자기 일의 한도 안에서 사람들의 운명의 조금을 책임진다고 느끼는 것이다』
인간에게 이보다 더 어떤 훌륭한 이상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黃敎仁 神父(빠리외방전교회원전 효성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