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육체를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다』(로마서 8장13절)
유치원 어린 아이가 맨먼저 배우는 것은 웃어른께 대한 인사법이다. 앵두같이 귀여운 그들의 순진한 입술에서 여러가지 재미나는말을 들을 수 있다. 선생님한테 옛날 이야기를 듣다가 낯익은 말을 듣게되면 자기가 경험한 일에 동화되어 버리고 만다. 물 이야기를 하면 어린이는 누구와 어떤 바다에 갔었다고 말하고 싸움이야기를 하면 자기는 누구와 싸워서 이겼다는 등…
우리 각 사람은 자기의 생활 환경에서 여러가지 반사작용을 한다. 우리의 극기생활은 우리 자신과 주위환경에서 나온다.
극기라는 말은 자신을 죽인다는 말이다. 자신의 모든 응력을 올바른 이성 안에 굴복시킨다는 말이다.
극기의 정신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 자리에 오게 하는 어떤 자제(自制)다.
이는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①육체적이며 외적 것이다. 예컨대 힘드는 일을 잘 해치우는 것이나 어떤 일감을 만들든가 음식을 적당히 먹는다든가 사치스러운 화장이나 옷을 안입는다든가 하는 것이다.
②정신적이며 내적 것이다. 바구어 말하면 우리 능력과 정욕을 영혼에게 복종시키는 것이다. 흔히 겸손 순명으로 이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면 언제 우리는 이런 극기할 기회를 갖는가? 먼저 육신이 당해야 될 기회는 ①교회의 명령에 따라 지녀야 될 규율, 단식 등 어려운 일을 하게될 때 ②육신의 오관 즉 눈 · 귀 ·입 등을 잘 다스려 우리 행위를 덕성스럽게 할 때 ③육신의 허약, 병고통을 전추께서 허락하실때 ④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만났을 때 ⑤급격한 변화로 자기자신에게나 집단에 큰 타격을 가져왔을 때 일이 제대로 잘 안될 때.
다음 영혼이 당해야 될 경우 ①정신적 기능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의지와 판단을 제때에 사용해야 될 때 ②말이나 행위로 타인을 너그럽게 해석해 주어야 될 경우 ③타인이 자기에게 대해 비평하는 것을 잘 참아 받아야 될 때 ④정신적 공허와 유혹을 물리쳐야 될 경우
우리는 두가지 계급의 사람이 극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일평생을 깨끗이 산 성인들의 무리다. 천주님을 자기의 무죄함의 증거자로 삼았던 욥 성인의 정신이나 극기와 깊은 망덕을 갖고 메시아의 길을 평찬케 하고 정의의 멧세지를 띄어 보냈던 요안 세자 고양처럼 결백하게 살고 이것이 나의 영생을 얻는데 필요한 것인가? 하고 사물을 판단하던 알로이시오 등 성인들이 이 부름에 속한다. 다른 계끕의 사람은 자기의 과거를 청산하고 새출발하는 죄인들의 무리다. 예컨대 니니베 사람들이 통회와 보속을 촉구하는 요나 선지자의 뜨거운 강론을 듣고 회개한 사실과 성녀 막달레나의 뜨거운 통회의 눈물이 그리스도의 더 큰 사랑을 끌어 들였던 일들이다.
우리는 강림후 8주일에 바오로 종도의 편지를 읽는 기회에 다음 몇가지를 반성하고 결심하자.
①극기는 범죄함으로써 받을 연옥벌을 감소시켜 분다. ②극기를 통해서 우리는 천주께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③극기를 통해서 천주님 같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연고는 예수께서도 수난을 통해서 세계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이다. ④천주님께 효도와 신심을 더 힘있게 드러낸다. 운동을 함으로 육신에 힘을 주듯 극기를 통해 우리는 천주께 가까이 가게 된다. ⑤극기를 하지 않고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맡긴 사명을 다 채울 수 없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⑥외적 극기 없이 내적 극기를 이행할 수 없다.
가톨릭 교회의 극기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천주님 나라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하는 튼튼한 매듭이다.
죄악이 결과는 공허와 슬픔뿐이다. 순결을 짓밟는 정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고 정신적 균형을 상실당하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현대 악한 풍조에 휩쓸려 자기의 순결을 하루반의 모험으로 삼는 젊은 어느 부부의 도를 깨뜨리고 자연법을 범하면서까지 피임법을 쓰는 신자는 없는가?
우상숭배자와 도둑질하는 자와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는 천주의 상속을 얻지 못하느니라. 아멘.
崔昌鼎 (요아킴) (평양교구 소속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