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術家들은 自己 意志 說明 해야
뉴욕 수도미술관의 어느 간부가 『이 나라에서 문화의 르네쌍스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지도적인 가톨릭 문화인이 의견을 발표했다.
그것은 서방 특히 미국을 통해서 서구 문화의 수입에 조급한 우리 문화계에 처한 한국의 가톨릭 지성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 美國의 文學 - 죤 피크
「네이센스」 즉 탄생(誕生)의 표적은 있을 수 잇으나 아메리카에서 문화의 「르네상스」 즉 재생(再生)을 말하기가 거북하다.
이것은 가톨릭 미술과 문학을 두고 생각할 때 특히 명백하다. 재생할 거리가 있는가? 우리가 선구자인 것만 같은 것은 우리에게는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콜럼부스와 그의 선원들이 신세계의 해안에서 「떼데움」을 불렀고 초대의 「스페인」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의 정주민(定住民)은 「센트」 루이 「상프란시스코」와 같은 지명들과 전교상 용어로 자기들이 기념을 남겼으나 이러한 모든 시작은 가톨릭 미술이나 문학으로 장식된 문화로 피어난 적이 없다.
「뉴오를레안」 및 「발팀어」 같은 가톨릭 중심지도 공헌한 것이 거의 없다.
바다 건너 영국과 프랑스에는 19세기 가톨릭 부흥이 있었다. 아메리카는 그렇지 않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1900년까지 우리는 비교적 소가(小家)들의 아주 잔 부스러기 만을 생산했다. 아마 오레스츠 부라운손, 아브람 라이안, 죤 바니스터 타브, 루이스이모겐기니 들일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 명단을 우리나라의 초기에까지 소급시킨다면 누구의 이름으로 보탤 것인가. 죠이스 킬머와 아그네스 러풀리어 일까? 그러나 그들은 대가(大家)가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 1920년 중엽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우리 시대에 이르는 동안 존경할 만한 소가들의 송아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선구자들이며 탄생 즉 「네산스」의 서곡이 되기를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메리카에서 가톨릭 문화의 대두가 오래동안 지체되기에는 여러가지 역사적 및 사회학적 설명이 있다.
이것은 가톨릭신자들이 끊임없이 더욱 자기비판적이 된 최근 수년간 특히 그러하다. 그 설명들이 아무리 매혹적이며 의심할 여지가 있을지라도 여기서는 논급하지 않는다.
다만 거북한 사실은 우리는 아직도 끄로델, 뉴먼, 홉킨스, 운세트, 그린과 같은 대가를 생산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T. S> 엘리오트는 어느 아메리카인 가톨릭 작가들보다 더욱 위대한 비판 · 시 · 종교극을 썼다. 그리고 원리 케이서의 『죽음은 대주교에게 오다』는 우리가 일찌기 생산못한 보다 위대한 아메리카의 가톨릭소설과 같이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메리카에서의 가톨릭 문학의 부흥이나 재생을 이야기할 수 엇다. 초기의 가톨릭문화가 번영한 적이 없다. 재생할 아무것도 없다. 아메리카에서 가톨릭 문화는 아직도 탄생해야할 것이다. (필자=마케트대학 영문학 교수)
■ 美國의 美術 - 시드니 하리스
미국의 경우에 응용된 「문화 르네상스」라는 문구를 나는 아주 싫어한다.
「르네상스」가 재생의 뜻이라면 이나라에서는 유럽에서 이해되는 것과 같은 진정한 문화의 재생이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믿건대 최근 10년간 예술이 미국 대중에게 보다 넓은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술학이 가져다준 생활수준의 향상과 한가의 증가와 직접으로 관계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미국에서 일종의 문화 「정도향상」이 진행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진정한 예술에 대한 큰 괌심을 내포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적인 취미 향상의 한 부분이다. 즉 가구 · 의상 등 일반적으로 생활의 쾌감이다. 우리는 피상적인 의믜로 더욱 문명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부르조아」의 가치가 노동계급에서까지 지배를 이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술가의 필요와 목표에 대한 이해가 없다. 정상저인 일상생활을 위한 준비품이 아니다.
은비(隱秘)주의도 아니며 노출(露出)주의도 아닌 표현방법도 없다. 예술가의 구실을 의사 판사 또는 사제와 같이 생활공동체의 이익에 대한 본질적인 것으로서의 용납도 없다.
오늘날 아메리카에서는 예술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여가의 일로 생각되고 있다.
마치 종교가 주일이나 축일에 국한되듯이 에술도 미술관이나 음악회에 있다금 가는데 국한되어 있다. 그것은 시민의 일상생활에 결부되지 않고 특별한 경우인 것이다. 시민들은 마치 예술에 대할 때 「문화」의 표정을 짓듯이 종교에 대한 때는 경건한 태도를 짓는다. 그러나 그 어느편도 대중에게는 중심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소위 「문화 재생」으로 소위 「종교 부흥」에 비교할지도 모른다. 양방이 다 숫적으로는 굉장하나 정신적으로는 얕은 것이다.
만일 그 개인 인격의 핵심이 그의 경건한 외양과 일치 아니하면 교회출석의 통계는 미술관 출석의 통계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가정 직장 사교에 있어 우리 일상생활이 눈에 뜨일만큼 그 어느것에도 영향받은 증거를 볼 수 없다.
신흥 「부르조아지」는 예술을 장식으로 자기 지위 표시로 심심풀이로 아편으로 「이용」한다. 아메리카에는 엄청나게 많은 진지한 예술가가 있으나 진지한 관객은 많지 않다.
이것은 그처럼 많은 근대화기들은 내관적이며 근친혼인적이며 은비(隱秘)적이 되는 경향의 원인이다. 호레이스 칼렌의 문구 가운데 많은 현대 미술가들이 『대화(對話)이기 보다는 독백(獨白)적』이 된다고 말했다.
프란츠 마르크가 몇해전에 말했다. 『그사람들 자신이 -대중이라는 뜻이 아니다-언제나 예술에게 그 본질적인 스타일을 주고 있다. 예술가는 자기 교양의 의지를 설명하고 이행할 따름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모를때 최악의 경우로서 오락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아니할 때 예술가들은 자기의 수법을 추구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어 고립상태에 빠져 무질서의 순교자가 된다.』
예술이란 인간의 내관과 희망 자신을 초월시키려는 숭고하고 비창한 투쟁과 관련되어 자기가 한떨기의 꽃처럼 꺾이기 전에 이 우주 안에 자기의 존재의 의의와 처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사회가 이것을 이해하기 전에는 「문화의 르네상스」에 대한 어떠한 암시라도 다 미숙한 것이다. (필자=영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