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週間世界(주간세계)] 오는 公議會(공의회)에 대한 展望(전망)
各界論評(각계논평) 時間(시간)·忍耐(인내) 있어야
再一致(재일치)는 사랑의 實現(실현)
발행일1962-08-12 [제338호, 1면]
필자 제임스 튜세크 몬시뇰은 NC통신 로마책임자이다. 그는 공의회 준비위원회 공보관계 일원이며 이 글은 그의 일련된 공의회전망(展望) 기사이다.
제임스 튜세크 記
한주간 한주간씩 다가오는 가을의 제2차 바티깐 공의회에 참석할 비가톨릭 교파들의 참관 대표들의 명단까지 차례로 발표되고 있다. 동시에 원하거나 말거나 그리스도교도의 일치가 산산히 부서진 이래 처음으로 각 교파 사이에 가톨릭과의 대화가 번지고 있다.
교황은 이번 공의회의 주목적은 성교회의 내적(內的) 요구에 참여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재일치의 길이 트이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원기리의 간접적인 효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가톨릭과 비가톨릭 양측에서 각각 난관을 공개했으나 결정적인 가능성도 밝혀졌다. 전례없이 솔직성에 사랑을 겸한 대화이기는 하나 거기는 회의도 있고 경계도 있고 비우호적 태도도 있으나 대부분은 찬성과 열의를 표시했다.
먼저 교황은 1959년 6월 29일 「아드 빼뜨리 까데드람」에서 『그대들을 남의 집에로가 아니라 그대들이 본집 즉 만민에게 속하는 아버지의 집에로 초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비가톨릭 측 각 파의 반응은 실로 흥미있는 것이다. 런런 올토독스의 제임스 비로보스 주교의 논평. 「원만한 화해를 바라는 많은 신학자들은 올토독스와 가톨릭 사이에 진지한 대화의 가능성을 환영한다.』
미국 감리교의 아서 C. 리히턴버거 감독의 담화. 『가톨릭과 공통되는 점과 분리되는 점을 발견하는 결과를 바란다. 』
스코트란드 장노교 총회 교파관계위원장 W. C . 린달 목사의 논평. 『가톨릭과 우리 사이에 새로운 개방성과 용의가 있다. 아직도 경계할 요소가 있어야 할 것이나 우리는 우호관계를 바란다. 비공식 회담이 환영될 날이 왓다고 우리위원회는 믿는다.』
「코펜하겐」의 덴마크 루터파 영수 한스 푸룰상-담가르트 감독(WCC의 간부)의 논평. 『교황의 이니씨아티브는 새로운 전망을 열었고 재일치에 향한 중요한 한걸으을 디딜는지도 모른다.』
WCC의 5개조항 선언. 『로마 가톨릭교회와 대화하는 사실을 환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변화는 수속상의 변화이다. 대화의 기회가 포착되어야 하겠으나 그것은 실지 문제가 유효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대한 그리스도교도 재일치국장, 베아 추기경의 논평 『재일치 달성의 전망에 착각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랑과 인내가 요청되는 과업이다. 첫째 장애는 비가올릭 각파 자체 사이의 분열이다. 거기 따르는 난관은 어느 대교파들을 대표하여 토론하기로 함께 앉을 권위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WCC의 성명. 『현재 진행중인 신학자들 사이의 비공식 토의는 전적인 공식 퇴의로 바꿔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의 차이와 분열이 교회의 사명과 갱신을 방해하며 사실상 모순이 없는 경우라도 화해의 복음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독일 루터파 CEC의 영수쿠르트. 샤아프 목사의 차이지적. 『우리가 세례를 주었는데도 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에로 넘어갈 때 조건부 세례의 반복을 가톨릭교회가 요구함을 볼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대단히 놀란다.』
남북 아메리카의 그리크 올토독스의 영수 아코보스 대주교는 성교회이 무류성의 교의가 재일치의 중요한 장애라고 말했다. 그는 방법의 설명이 없이 『재일치의 우위성에 교의를 예속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교의문제에 관해 베아 추기경은 일찌기 1961년 11월에 「취릿히」대학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올토독스측-역사적 오해와 반감을 떠나서 주요한 난관은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
성공회와 프로테스탄측 -의화(JIST IF ICATION) 성사(SACRAMENT) 성모신심(DEVOTION TO MARY). 특히 최대의 난관은 교회, 교회의 권능, 교회의 가르치는 권위에 대한 개념.
루터파와 종교개혁 추종자측-교계제도가 원칙적으로 거부되어 없음. 신자의 양심상 의무를 결정할 수 있는 권위문제는 집회와 의견 교환의 실지 문제에더욱 넘중한 난관을 일으킨다.
누구와 의논할 것인지 또 집회에서 있을 수 있는 결론을 실천케 할 권위가 누구에게 있는지 언제나 의심하게 된다.』
베아 추기경은 1962년 4월 25일 로마의 외국통신원 구락부에서 이번 공의회는 일부의 장애 극복을 시도할 것이라 말했다. 즉 『본질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을 구별하여 『교의적 및 실천적 사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실천적 분야는 기율, 교회법, 전례, 신심행사와 전통의 형식을 말하는 바 이분야에서 커다란 관용과 양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의에 관해서는 그 지위가 완전히 다르다. 동방 및 서방에서는 그리스도에게 받은 교의대로 교회가 가르치는 전부를 보존해야 하고 믿어야 한다.
그러니까 거기는 양보의 여지가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받은 교의의 주인이 아니다. 교회는 교의를 위탁받었으니 원상 그대로 전해야 한다.』
교의의 불변성은 비가톨릭측에서는 『도그마의 감옥』이라고 생각한다.
1961년 2월 4일 이태리 제노아의 어느 회석에서 베아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미 여러 세기동안 모교회(母敎會)에서 갈려간 형제들은 성교회이 전통적 용어로 표현된 교의상 교훈을 흔히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들의 사고방식과 용어를 벗어난 각색의 철학체계의 영향을 입고 있다. 이에 공의회는 적지않은 오해를 제거하면서 설명할 수 있다. …… 결정적인 사랑의 태도, 눈이 뜨이게 신앙심이 있고 도덕적인 생활의 표양 갈려간 형제들과의 우애있는 협력, 전문가들 사이의 신학적인 이야기와 기도를 자극함으로써 공의회는 그리스도교도의 재일치를 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