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정식으로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주일날은 재를 지키지 아니하기 때문에 성회 수요일부터 가산하면 꼭 사십일이 됩니다. 사순절은 우리가 다만 단식을 하거나 보속을 하는 시절만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말해서 신자들이 연중 피정을 하는 시절입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정화하고 계량하는 시절입니다.
우리는 축문에서 『천주여 당신은 해마다 재를 지킴으로 인하야 당신 성회를 조찰케 하시나이다』합니다. 우리는 주년(周年)의 중심에 있읍니다.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 부활주일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 그 전체적인 신비를 동시에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부활과 하나이 되어 있읍니다. 사규성사로써 우리의 개적생활이 부활 때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것은 다만 한 가지 감상적인 기념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죽음과 생명을 신비롭게 우리에게 전해주실 겁니다. 우리는 전해준다는 이 말을 가장 깊은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천주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부착함으로써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닌 그리스띠아니즘의 중심에 있읍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사순절에 예비신자들에게 성세성사를 주는 이상적인 기간으로 하는 이유가 여기있읍니다.
우리는 위대한 신비에 한걸음 한걸음 가까이 가고 있읍니다. 그리하여 영세예식이 죄의 선고의 밤의 어두움 속에서 시작하여 천상 영광의 찬란한 아침에 끝마칩니다. 교회는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전하나니 이는 유데아인에게는 걸려너머짐이 되고 외교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는도다. 그러나 유데아인이나 외교인을 막론하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천주의 대능과 천주의 상지로 선전하나니다』하신 바오로 종도의 말씀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 십자가의 어리석임 속에서 인류는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천주께서 이것을 선택하시기에 주저하지 아니하셨읍니다. 그는 우리 앞에서 그것을 선택하시고자 하셨읍니다. 그것이 오늘 복ㅇ금에서 읽는 광야에서의 시험이었읍니다.
사순절 벽두에서 주신 이 포양이 벌써 사순절 전부라고 할 수 있읍니다. 세상을 구원하셔야 할 예수께서 개선의 메씨아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기대하는 무리의 권유에 순종하시겠읍니다. 인간적인 야심과 영광이 이익을 발견하는 방법을 찾으시겠읍니까 그가 모험하시고자 하는 길은 바깥 원수들을 처부시고 승리하는 쉬운 길이겠읍니까. 혹 겸손을 바탕으로 하고 애덕을 화관으로 하는 마음의 회개와 내적 보속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이겠읍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쉬운 해결을 찾는데 즈기여움을 느끼셨읍니다. 유감당하신 이야기가 그것을 입증합니다. 만일 그가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다면 그는 인간을 위한 자비에서 천주의 뜻에서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시어야만 되었읍니다.
『너 만일 업데여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사탄은 즉시 공격의 활살을 겨누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천주답게 침착하게 단 한 마디 대답을 하시었읍니다.
『주 네 천주께 경배하고 다만 저를 섬기라』 『천주만을 섬기라』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투쟁하는 이 시기 시초에 당신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는 사탄이 남용할려고한 그 본래 가지고 있던 행복을 다시금 느끼면서 천주의 힘에 전적으로 신뢰하고 성영 90 『지극히 높으신 자의 도우심에 거하는 자는 하늘의 천주의 보호하심에 머물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재를 지킴과 동시에 드린 기구로써 불린 천주만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읍니다. 단식이 천주를 향하여 올라가는 기구를 위해 우리의 정신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람」은 한 가지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천주를 제자리에 두고 조물주는 피조물로부터 경배를 받고 그리고 천주께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로 말미아마 부활이 변화시킬 비참한 생명을 바치는 은혜를 그들에게 주십니다. 이것이 천주의 나라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린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생활은 새로운 마음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새롭게하고 또한 우리를 묵은 생활에서 조찰케 해서 구원의 비사(秘事)에 참여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