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5) 눈을 닦고 또 닦아봐도 우리말 『천주경』은 없어
발행일1963-03-03 [제365호, 3면]
전설이라는 것은 때로 이와같은 모순된 말도 곧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교회에서는 성전과 전설을 엄격히 구별한다.
거기서 멀지 않는 곳에 예수께서 승천하신 자리가 있는데 바위 위에 예수님의 발터가 있다. 이것도 물론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리라. 「로마」에 있는 『퀘바디스·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에 남아있는 예수님의 발터보다는 오히려 근사한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 승천하시고 연이어 종도들은 박해를 당하고 또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무슨 재주로 그리스도 승천하신 자리의 바위까지 기억에 둘 수 있었겠느냐? 또 쓸데없는 영적은 안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행적이라면 그리스도 얼마나 무거우셨기에 바위 위에 발터가 남아있겠느냐? 다만 후세인이 얼치기로 지어낸 말이겠지.
「벹파제」에서 떠나 예수께서 종도들에게 천주경을 가르치셨다다는 곳으로 갔다. 거기도 역시 경당(敬堂)을 지었는데 경당 외벽에 각국 나라말로 천주경을 석판에 새겨 붙였다. 6개국어가 붙었다. 중국어는 물론 일본어도 붙었다. 그러나 우리말은 없다. 있을리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도 분한 김에 눈을 닦고 또 닦으며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서글펐다.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 이다지도 뒤떨어 졌는가 싶어 눈물겨웠다.
우리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가 그것도 우리가 미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라까지도 이룩해둔 것을 우리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일본만 해도 우리보다는 얼마나 신자수가 적으냐? 그런데도 그들은 으젓이 자기나라말로 천주경을 천주경 성당에 바치지 않았느냐! 그런데 우리나라 말로는 천주경은 새겨있지 않다. 왜 그럴까. 경제력이 없어 그런가?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모르긴하나 넉넉잡아 2·30만환도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왜? 요는 그것을 서둘러 일해낼 일꾼이 없었던 까닭이다. 첫째 한국인으로서 성지 순례를 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또 성지순례를 했어도 우리나라 말로 천주경이 없다는데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을 사람도 있었겠고 또 신경을 썼대도 나처럼 둔해서 말이 통하지 않아 천주경을 써붙일 수 있는 절차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여하간 부끄러운 일이다. 교회 체면으로도 그렇고 국가 체면으로서도 그렇다. 연 수천불씩 소비해가면서 이름모를 나라에 외교관을 보내는것보다 전세계 각국에서 순례자들이 끊어지지 않는 이곳에 천주경 하나 바치는 것이 더욱 긴요치 않겠는가? 더욱이 신비적으로 생각할 때 이곳에 천주경을 새겨둠으로써 밤낮 끊임없이 우리 민족을 대신해서 무음중(無音中)에 천주경을 천주께 바치는 것이라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겠느냐? 이상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는 않는다.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천주경 성당에 천주경 바치는 운동이 C·C·K를 통해 일어날 줄 기대한다.
그때는 독자제현들께서도 물심양면의 협조가 계시옵기를 간곡히 비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