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召(성소)] ⑥ 성골롬바노회 SOCIETY OF ST COLUMBAN(S·S·C)
極東(극동)이 布敎地(포교지)
한국서는 두 교구 맡아
발행일1962-08-12 [제338호, 3면]
성골롬바노 외방전교회는 미국 「뉴욕」의 「부루클린」 뫼괴본당에서 1912년 중국에 간 갈빈 신부께서 1918년에 창립했다.
갈빈 신부께서는 중국에 사제의 필요를 느끼고 분도 15세의 허가를 얻어 처음에 애란(愛蘭)에 그다음 미국에 새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성골롬바노회 현 신학교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고 연구소는 로마에 있다.
순명허원을 지키고 로마포교성성에 직접 속하면서 성골롬바노회 선교사들은 영혼구원을 위해 주로 극동에서 일하고 있다.
그 지원자들은 모든 계급에서 모든 나라에서 나온다. 본회가 최초에 중국에서 전교할 목적으로 창설되었으나 그후 한국에 두 선교구 북버마에 1개 선교구 그리고 필립핀에 46개 본당 그뒤에 중국에 3관구가 증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골롬바노회 신부들은 일본과 「피지」(FIJI)제도(諸島)와 남미에도 일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성골롬바노회 신부들이 「로스안젤스」에서 중국과 필립핀 본당을 맡아있고 「카리포니아」 하부지방에서 여러 멕시코 본당을 맡고 있다. 그 대신학교는 「보스톤」 부근 「밀톤」에 있다. 미국의 총본부는 「오우미허」 부근 「니브레스커」주(州) 성골롬반에 위치하고 있다. 지원자는 초등 중학을 마친 후 들어간다. 성골롬바노회 첫35년 전교결과는 만족한 것이었다.
회원은 활발하게 일선에서 전교사업에 종사하는 3백명 이상은 거의 8백명으로 증가하였다. 중국전교가 공산당으로 말미암아 문을 닫은 이후 필립핀이 현재 가장 많은 회원을 가지고 있다. 백성들이 신앙을 더 잘 받아들인 때는 선교 역사상 아직 없었다고 귀환한 선교사들은 말하고 있다.
만일 추수할 적당한 일꾼만 있다면 앞으로 25년동안 영혼의 더 큰 수확이 기대될 수 있다.
성골롬바노회 공식 기관지는 월간잡지 「극동」(THE FAR EADT)이다. 특히 선교사의 성소를 느끼는 청소년들이 읽기를 원하면 보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1931년 장래 방인자치교구의 준비로서 전라도 지구를 대구감목대리구로 설정하였다가 1934년 4월 10일 전라도 감목대리구에서 전라남도지구를 분리할 때 성골롬바노회에 전남을 위촉하여 초대교구장으로 임(MC POLIM) 신부가 부임되었다. 현(現) 교구장은 현(玄) 대주교시다.
현대주교께서는 1932년 동회가 한국에 진출한 선발대중 한사람이다. 춘천교구는 1940년 13월 8일 서울교구에서 분리되어 역시 성골롬바노회에 동 교구를 위촉 초대교구장으로 구 주교가 부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약 1백명의 회원이 한국에서 포교에 종사하고 있으며 동회 연학소는 서울 성북구 돈암동 307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