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音樂人(음악인)
발행일1963-03-10 [제366호, 4면]
[設問]
①본명은, 언제 영세했읍니까?
②음악인 「구룹」이 필요치 않습니까?
③전공은 무엇이며 과거 발표작품 중 대표작품은? 또 현재 무엇을 연구 중입니까?
④신앙생활과 음악생활 관계를 말씀해 주십시요
⑤신앙이 방해가 된 때는 없읍니까?
⑥음악생활 신조를 말씀해 주십시요
■ 音樂의 歸結點 宗敎 / 權泰浩(權泰浩 音樂硏究所長)
그의 반백의 머리 한 가닥을 쳐들며 굵은 네모테안경 너머로 시름진 눈을 감으며 『매기 머리는 세어 백발이 다 되었네…』 이렇게 그의 왕년의 황금성(黃金聲)이 이제는 쇠잔한 여음으로 목쉬어 울릴 때 차라리 그것은 이미 음악이란 예술을 넘어 무한한 인간의 소리를 느끼게 한다. 지금부터 30 수년전 동경 「양국공회당」이나 「오오꾸마」 기념회관 같은 국제적인 무대에서 권태호씨의 인기는 인종을 초월해서 일본 전국을 휩쓰는 갈채를 받았다. 학창시절 동경에서 맞은 베토벤 백년제에 당시 일년 전부터 그 준비로 초대된 유명한 독일인 음악가 조세프.게니히씨로부터 수많은 음악인들 속에서 베토벤 「제9번 심포니」 합창의 「테너·쏠로」의 단 하나의 적격자로 인정을 받았으나 「리허샬」이 끝난 본 공연 무대에서 기어코 일인에게 그 위치를 양보치 않을 수 없었을 때 그 지휘자는 그 후로 권태호씨의 한 변명이 된 『권태호 거기를 사수하라』는 격려를 남겼다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오상방지거의 본명으로 영세받은 이후 그의 예술 내지 인간으로서의 생활에 참다운 의의와 겸허한 뜻을 비로서 터득하지 않았나하며 이런 의미에서 그의 생애의 가장 절실한 감명으로 대구 갈멜수녀원 엘리아 원장 수녀에게 그의 본명을 방지거라 전제하고 영세하기 일년 전부터 그를 위해 기구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예술의 최고봉은 음악이지요』 이렇게 말한 권씨는 이 위대한 음악이 종교의 신비를 통하지 않고 어떻게 있을 수 있으며 그러므로 베토벤, 하이든, 헨델, 슈벨트 같은 악성들이 미사곡을 짓지 않았던 이가 없었고 그들의 수다한 명곡도 그러한 미사곡들의 부산물에 불과하며 음악의 참다운 경지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종교에 귀이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씨는 현재 대구에서 「국민가요합창단」을 조직하여 그 보급에 힘쓰고 있으면서, 하필 어떤 종교음악 기구에서만이 아니라 이런 일반기구를 통해서도 얼마던지 천주를 찬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권씨는 성당에서 미사 때 합창단 뿐 아니라 일반교우도 어느 일정한 시간에 다같이 노래함으로써 천주를 찬양하고 싶은 자연적인 감흥을 다같이 발휘할 수는 없을까 하는 의견을 덧붙였다.
■ 音樂 거짓 없는 人間表現 / 鄭勳謨(서울大 音大 교수)
①17년 전 부군이 성모병원에서 대세받고 선종한 후 같은 해에 8남매와 같이 입교하였다.
②7년 전 성모성년 때 이문근 신부님이 「로마」에서 돌아오신 후 그 분을 중심으로 신부님이 회장이 되고 본인이 부회장이 되어 「구룹」을 조직하였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자 바쁜 생활에 얽매어 현재는 유명무실하개 되었다. 다시 재조직하여 가톨릭 지성인으로서의 단결을 바란다.
③12세 때부터 성악(聲樂)의 길로 나와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연마하여 독창회 7회와 부부독창회 1회를 가졌으며 내가 좋아하던 곡은 독일 리드(LIED)였다.
현재는 서울대학의 교수로 있으며 음대 졸업생 70여 명과 그 외의 문하생을 합하면 100여 명의 제자를 갖고 있다. 외유(外遊)를 하고 돌아온 문하생 중 이정희씨, 이경숙씨, 이명숙씨, 김해경씨, 유태열씨 등과 이태리에 전경순씨, 독일의 박노경씨 등은 모두 한국에서 손꼽히는 음악인들이다. 이밖에도 성악으로 활약하는 분 중에 양천종씨 조영호씨 등등 있다.
⑤종교와 음악은 불가피한 관계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이란 항상 거짓 없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인데 음악생활 역시 솔직한 인간의 표현인 것이다. 솔직하지 못하다면 음악도 그 표현에 있어 불만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⑥음악인들, 특히 가톨릭 음악인들은 한 형제처럼 서로 이해 협조해서 훌륭한 종교음악가로서의 발전과 긍지를 가져 자라는 다음 세대에게 구감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 聖音樂 거쳐 信仰에로 / 河大應(曉大敎授)
지금부터 24년 전 하대응씨가 동성상업 음악교사로 있을 때 그 당시 서울 명동 가톨릭 합창단을 맡고 있던 불인 변신부님이 신병으로 눕게되자 현 노 대주교님(당시 명동 보좌)이 그 후임자를 물색 중 하대응씨께 지휘를 의뢰하여 그로부터 14년 넘어 계속해서 동 합창단을 지도 육성했다. 그의 성(聖) 음악에 대한 조에로나 국내에서 「파이프 올간」 연주의 권위자로도 현재 그가 머물고 있는 대구에서 보다(효성여대 음악교수) 오히려 중앙에서 익히 그의 명성은 높히 인정되고 있을 것이다.
사변은 이런 뜻에서 대구 예술계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왔다.
하 교수는 가톨릭 합창단을 지휘한지 4년 후에 자까리아 본명으로 영세받았다. 하교수는 일본 동경음악학교 유학 당시 제5회 전일본음악 「콩쿨」에 입상하였고 일본에서 2회의 독창회를 가져 당시 일본 음악계에서 신진 「테너」로 촉망을 받았다. 하교수는 그의 깊은 신앙을 통해 종교 음악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그 심미를 감득할 수 있으며 또한 예술을 통한 보다 깊은 인생을 터득하는 길에서 항상 영혼 깊이 감사의 정을 금치 않는다고 했다. 종교의 신앙이 내세적이고 구원한 신비 세계를 추구할진데 예술지향도 현세에서 인위적으로 진지하개 진선미의 신비세계를 탐색한다면 예술은 다른 차원에서 또 하나의 신앙이 된다고 말했다.
역시 인류 역사의 위대한 악성들, 모차라트·헨델·하이든같은 이들이 다같이 성음악의 창조자들이였음을 지적했다. 하교수의 오랜 음악생활 가운데서 특히 감명 깊었던 때를 시공관에서 연 김대건신부 백주년 기념연주를 지휘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가톨릭음악인 기구의 유무에 대한 의견으로서 하교수는 이문근 신부님 위시로 기존 한 음악협회를 더욱 강화하고 지방과도 유기적인 유대를 맺어 가톨릭 음악의 보급 연주, 교육 내지는 심의(審議)기구 같은 것을 두어 보다 적극적인 문화활동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 宗敎音樂도 對外出演을 / 安容九(서울大 音大 조교수)
①요셉 유아영세
②「그룹」의 긴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 때나 성탄 시기에 음악인들이 단합하여 대외적으로 공연을 하거나 혹은 성당에서 미사곡을 연주한다면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③9세 때부터 「바이얼린」을 배우며 자랐다. 서울음대를 나와 독일의 「뮨헨」과 오지리의 「비엔나」 음악대학에서 4년간 연구하고 영국의 음악대학에서도 6개월간 있었다. 59년 2월에 귀국하여 국내에서 발표회를 10여 회 가졌다. KBS 교향악단의 악장으로 귀국 후에 일하다가 작년 10월에 17명으로 구성된 「안용구 현악합주단」이란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작년 12월에 국립극장에서 코렐리의 성탄협주곡의 수곡을 첫공연하였다. 그 후에는 대전·대구·광주·부산 등지를 순회공연하였고 지난 3월2일엔 인천에서도 공연하였다. 오는 3월9일엔 국립극장에서 제2회 공연을 갖는다. 연주하는 곡은 주로 실내악적인 고전과 현대곡을 연주하며 비발디·코렐리·바흐·헨델과 같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과 현대음악을 좋아한다.
④다행히도 천주께서 본인에게 음악의 재질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의 음악생활은 천주께 영광을 돌리는데 힘쓰며 나의 전공분야는 앞으로 신앙생활을 더욱 깊게할 것이다.
⑤항상 바쁜 생활을 하는 관계로 열심치 못한 것이 천주께 죄송하다
⑥외국의 예를 보면 국민학교 아동들에게 도의교육 대신에 음악·미술·문예 등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음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서부터 생긴 것이라고 보는데 그 음악에 도취하여 열중이되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감 무아경에 빠지게 된다. 보다 대중과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이 음악을 외국에서처럼 우리 국내 가톨릭에서도 음악분야에 주력하여 경비를 좀 들여서라도 미사 때만이라도 좋은 곡을 들려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고맙겠다.
■ 音樂人 구룹 만들었으면 / 李瑚燮(首都女子師範大學音樂_長·피아노·작곡가)
①사무엘. 성탄 때 영세하였다. 13년 전부터 가톨릭 교리를 연구하여 성당에 다니며 신자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해왔다. 영세가 늦은 것은 자신을 「쎌프·콘트럴」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린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에 영세한 후에도 별로 새로운 기분은 없었다.
②「구룹」이 조직된다면 쌍수로 환영한다. 무엇보다 가톨릭 예술인으로서의 단합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③피아노와 작곡을 한지도 어언 30년이 되었다. 음악인으로서 존경하는 분은 바흐나 베토벤이다. 그리고 늘 연주하여 좋아하는 곡은 쇼팡의 전 작품이다. 과거 광주에서 독주회를 가진 이외는 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지금도 항상 바쁜 일과를 보내느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으나 꼭 실현할 결심이다. 작곡은 전후 합하여 60·70편 정도이며 작년 4월에 「작곡집」을 내었다.
④나의 일상생활은 신앙을 기저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나의 작품이 꼭 신앙으로 얽매어 있는 것은 아니다.
⑤예술 작품이란 하나의 마음의 표현이니까, 나의 경우는 종교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고 본다.
⑥인간은 어디까지나 절대자인 천주님에 대해서 약자이다. 죽을 때까지 나의 분야에 꾸준한 노력과 정력을 기울여 천주님의 품속에서 우수한 작품을 만들며 자기를 키워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