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강림 후 제10주
성바오로께서는 은혜는 여러가지가 있고 은총이 모든 이를 위하여 내려오고 따라서 천주의 은혜인 성총은 구령을 위하여 풍부하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구령을 위하여 덕성스러운 생활을 함으로 영혼을 성화시키라고 말씀하신다.
덕성스러이 살려면 천주의 성의를 완전히 실행해야 되며 인간생활 대부분이 노동이고 보면 우리 노동생활을 거룩케 하는 길에서 성덕을 찾아야겠다.
다행히 우리는 성가정(聖家庭)의 모범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모범을 본받아 일상생활을 성스럽게 보존해야겠다. 성가족(聖家族)은 가난하였으나 정신적으로까지 가난하지 않았다. 왕가의 후예였으나 그들은 단조롭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성요셉은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 목수였고 매일같이 일터에서 이랗였고 친절하고 정직하고 말을 삼가는 사랑에 잠긴 분이었다.
성모님은 집안일을 보살폈고 매일 식사를 위해서 샘에 가서 물을 깃고 시장에 다니고 바느질을 하였다.
예수님은 당신일의 몫을 맡아 노동하셨고 부모님을 무엇에서나 도와드렸고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갔다.
성가족은 오랫동안 세상사람 눈에 평범한 목수집안으로 지냈다. 그들은 안락한 생활을 하지 않았고 있어야 할 것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도 많았다. 곤란도 많이 닥쳤고 생활꺼리는 매일 장만해야 했지만 만족하다고 천주께 아뢰였고 사랑으로 서로 돕고 만사를 천주님께 맡겼다.
여자들은 자기가 어머니며 딸이며 여자의 직분을 맡은 아내로서 빨래나 요리 재봉질 등 무엇을 할 때에나 성모님을 바라보며 성모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가 여쭈면서 그의 도움을 청하자 마리아를 닮은 것보다 더 거룩한 피조물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아버지며 아들이며 남자의 직분을 맡은 남편이며 노동자로서 쉴새없는 일과 수고를 당할지라도 예수님과 요셉을 바라보며 모든 불만을 없애자.
예수님과 요셉을 닮는 것 보다 더 거룩한 피조물이 이세상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성가정을 본받을 중대한 의무가 있으며 성화될 수 있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
오! 성가정 때문에 더욱 고귀하게 성화된 노동과 수고는 복되도다.
회칙 『어머니와 교사』(=마뗄 엩 마지스뜨라)에서 지적되었듯이 현대 비극의 하나는 과학 기술의 진보에 비해 끔찍한 인간몰락의 뚜렷한 대조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공장에서 나오는 상품은 비싸게 시장에 나가지만 공장에서 나오는 노동자는 몰락한다. 수심에 찬 인간으로 나온다. 『그 진보의 괴물같은 걸작은 인간을 자연계의 거인으로 만들어 놓은 반면에 그 정신은 짓밟혔고 그것은 초자연적 영원한 세계에 있어서 난쟁이처럼 줄어들고 말았다.』
우리 신앙은 입체적인 것이다. 우리 신앙은 칼 아담의 말처럼 경건한 정서와 차거운 이성 실천적 의지 바꾸어 말하면 지성의 내적 인간으로서 뿐 아니라 감각의 외적인간으로서 전체적 인격이 요구된다.
우리의 성덕은 본질적으로 자기 처지에서 천주의 성의를 온전히 채워드리는데 있다. 환언하면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믿고 그 사랑의 현실성을 믿고 이로써 예수님을 우리 안에 살아계시도록 해드리는데 있다.
노동하는 우리는 요셉 성인과 성모님께 용기와 모범을 배워서 요셉과 같은 완전한 일꾼 성모와 같이 완전한 아내로서 우리 의무를 다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가정의 「어머니며 교사」인 부모님은 특히 자녀에 대한 종교교육에 관심과 열을 가져 사회학교에서 보충하지 못한 천주님의 진리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간직하도록 최선을 다해 주일학교에 보내자.
부모님이 천당에 가서 가장 큰 위로의 말씀을 천주께 듣게될 것은 자녀를 얼마나 훌륭히 종교교육을 시켰는가에 달린 것은 의심없는 사실이다.
부모의 신성한 의무인 자녀교육과 매일같이 하는 신성한 노동과 부부애를 잘 키우고 천주께서 주시는 성총을 헛되이 낭비하지 안고 겸손한 아전과 같이 기구하며 각자의 특수 개성에 따라 주시는 천주의 성총에 다시 한번 감사하자. 아멘.
崔昌鼎(서울 후암동본당 보좌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