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재는 보속하는 시기며 열심히 기구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의 이 모든 노력은 예수 부활로 지향해야 합니다. 봉재시기에 있어서 모든 신자는 구세주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서는 우리가 이 첨례에 마음으로부터 참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이기기 위해서 당신 죽음의 승리에 일치할 것을 원하였읍니다. 그는 우리의 고통이 멸망이 아니라 승리이기를 원했고 우리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생으로 들어가는 시작이기를 원했읍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우리는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한 그리스도의 새 샘여잉 시작되는 현세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그는 당신 성부께로 돌아가고 현세에서 영원으로 돌아갔읍니다. 우리의 유일한 흼아은 우리를 온전히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리스도와 함께 현세의 험한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을 준비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일년을 통해서 주일은 예수부활 첨례를 지내고 있으며 매일 미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되풀이함으로써 우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결합할 수 있게 됩니다. 바오로 종도는 「코린토서」에 적기를 『예수의 죽으심의 고난을 언제나 우리 몸에 지니나 이는 예수의 생명으로 하여금 우리 몸에도 또한 나타나기를 위함이니라 대저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언제나 예수를 위하야 죽음에 붙여 지나니 이도 또한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음을 육신에 드러나기를 위함이니라』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한 죽음은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우리는 무정하게 우리의 운명을 걷고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재생의 길을 자주 확인하고 믿어야 합니다.
일년에 한 번 예수 부활을 지냄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준 그리스도의 첫 부활을 기념하고 있읍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일 미사 참례를 단순한 의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택하고 세우신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아들어야 하겠읍니다.
봉재시기는 교회에 멀리 떨어져 있는 신자들이 회개하는 때입니다. 교회는 그들의 잠자고 있는 양심을 깨우쳐주고 멸망의 길을 떠나서 구세주께로 다시 돌아올 것을 바라고 있읍니다. 이사야는 냉담자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읍니다.
『너희는 야훼를 만났을제 그 이름을 찾으라. 그이께서 가까이 계실제 그이를 불러라. 악행하는 자는 제길을, 나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릴지로다. 그리고 야훼께로 돌아올지니 그이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우리의 천주께로 돌아올지니 이는 그이께서 너그러이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많은 죄인들이 반항의 태도로 천주를 거스리고 있을 것이나 그들이 천주를 믿지 않거나 혹은 그들의 죄에 대한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천주의 성총을 내려주는 재생의 가능성을 바라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한한 천주의 용서를 경험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회개하여 천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천주는 이사야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당신의 관용함을 드러냈읍니다.
『너희 죄가 진홍색 같을지라도 눈처럼 희어지리라. 비록 새빨간 천처럼 붉을지라도 흰 양털같이 되리라.』 『인자는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옴이니라』 그리스도 말씀하시지 않았읍니까?
마음으로부터 천주를 섬기고 있고 적어도 천주께 회개하려고 하는 여러분들은 이 봉젯동안에 천주께 멀리 떨어져 있는 형제들을 위해서 그들이 우리와 같이 부활을 지낼 수 있도록 또 진리의 길을 다시 찾도록 많은 기구를 해야하겠읍니다. 그러나 「바리세이」들과 같은 태도는 버려야 하니 대저 우리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역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더 열심히 기구해야하며 구원의 희생을 보충하기 위해서 우리의 고통 우리의 극기를 바쳐야하겠읍니다. 만일 여러분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의 냉담자를 이끌고 부활 첨례를 지나게 된다면 교회가 천당 안에는 기쁨이 깃들 것이며 여러분의 마음에도 천주의 성총이 그의 효과를 보았다고 기쁨이 솟아날 것입니다. 아멘.
兪在國 神父(釜山 西面본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