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기까지 (18) 再會(재회) ①
발행일1963-03-17 [제367호, 4면]
수련이는 성당 앞에 이르자 발이 딱 붙었다.
신부님이 뜰에서 거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신부님에게 한 마디 묻고 가야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두 신부님 알잖아 인사 허구 가 응!』
미남이가 엄마의 손을 끈다.
『아-이 엄마 넘어져 끌지마』
수련이는 미남이에게 끌려간다는 핑계가 도움이 되어 선듯 신부님 앞으로 갔다.
『신부님 엄마에요』
『오… 미남이 어머님! 언제 오셨어요.』
신부님은 무표정이나 음성은 부드럽고 어지렀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수련이도 마음을 펴고 미소를 띠었다.
『미남인 참 착해요. 주일학교에 열심이 나온답니다.』
신부님은 미남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남이는 싱글벙글이다. 엄마 듣는데 칭찬을 받고보니 기쁜가 보다.
『주일학교에만 다니면 뭘 합니까. 입교를 해야 하잖아요』
신부가 할 말을 수련이가 앞질러 한 셈이다.
『하…하… 어머님 생각이 그러시며 뭐 부탁 드릴 것두 없겠군요. 어떻게 미남이만 입교를 하겠어요. 할머님도 어머님도 다함께 입교를 하셔야죠』
『입교하려면 뭐 외는 것도 많고 시험도 어렵다죠』
수련이가 말하는 것은 교리공부와 영세하기에 앞서 찰고를 이름이다.
『어렵지 않습니다. 천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오시는 절차인데 마음만 있으면 조금도 어렵지 않어요』
신부님은 담담이 하는말 같으나 어딘지 열의가 불타 있었다. 듣는 이의 가슴속으로 수며드는 언성(言聲)이다.
『얼마나 공부를 하면 됩니까』
『성의에 달렸읍니다. 그렇게 조급히 구시지 마시고 내 책을 드릴게 우선 댁에 가 읽고 외어보세요』
수련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엄마 할머니두 신부님께 책받아가지구 지금 열심이 외우구있어』
미남이는 무슨 좋은 일이나 생긴듯 좋아했다. 수련이는 어머니까지 교리공부를 한다는 말을 듣고 용기가 한층 속구쳤다
『엄마두 공부해서 천주교에 들어갈까』
수련이는 미남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엄마두 믿으려구 맘 먹구 있지 그렇지』
미남이는 숫제 반문을 했다.
『글쎄… 책을 받아 읽어봐서 외울만 하면 믿어두 좋구』
수련이는 자기가 너무 급히 서두르는 것 같아서 약간 주춤했다.
『자? 이 책 가지구 가서 좀 읽어보세요. 읽는 동안에 천주님을 존숭할 생각이 떠오를거에요』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 와서 또 찾아 뵙겠읍니다.』
수련이는 책을 받아들고 곧장 안양거리로 나왔다. 수원서 오는 합승이 마침 있어서 서울에 도착하니 밤 일곱시었다. 「사보이·호텔」로 「홍콩」 전화를 받으려 갈 시각까지는 아직도 세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자』
수련이는 미남이를 데리고 남대문을 지나 충무로로 들어섰다. 미남이는 오래간만에 서울을 보는 눈이 몹시 바뻤다.
『엄마! 아버지허구 전화하면 아버지가 내 얼굴을 못 보구두… 그래두 내가 누군지 알까』
아마 미남이는 곱게 켜져있는 「네온싸인」보다도 아버지 일에 더욱 관심이 있나보다.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말야 인제 우리 미남이가 아버지헌테 인사드립니다-. 하면 아버지는 곧 미남이냐 잘 있었니 이쁘다. 그러실 거야』
미남이는 고개를 갸웃둥 했다.
『엄마 전화루두 얼굴이 보이나』
『얼굴은 보지 못해』
『그럼 아버지가 어떻게 미남이가 이쁜 줄 알어』
『목소리 듣구 알지』
『목소리 허구 얼굴 허구 같은가』
어머니는 대답이 막혔다.
『이쁘다는건 꼭 얼굴만 가지구 하는 소리가 아냐. 그냥 보지두 않구 이쁘다는건- 더 많이 이뻐야 하는 소리야』
『그럼 아버지가 그냥 이쁘다는 것보다두 더 많이 나를 이뻐한단 말이지』
『그럼!』
『흐! 흐!』
미남이는 실소(失笑)나 하듯 웃어버렸다. 마치 바람개비마냥 걸음걸이마저 둥실 떠서 어머니 손에 매달려 갈 지경이다. 아마 몹시 기쁜가보다. 어쩔줄을 모르는 모양이다. 수련이는 미남이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손에 잡힌 미남이의 다섯 손구락의 움직이는 표정만 가지고도 그의 가슴이 얼마나 부풀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잘 기다렸어』
소리와 함께 수련이의 눈에서는 새삼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지금 수련이는 행복의 정점에 올라선 감이다. 미남이 못지 않게 걸음이 들떠있다. 아무나 얼싸안고.
『내 남편을 다시 만났소』하며 외치고 싶었다. 충무거리에 녕멸하는 불빛이 오늘밤 같이 따스해보인 일은 없었다. 모두가
『얼마나 기쁘세요』 인사라도 해주는듯 마냥 기껍기만 했다.
수련이는 명동골목으로 돌아들어 우선 작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남령·바」에서 멀지 않는 곳이다. 「남령·바」에 나가면서부터 단골같이 다니는 꼬치백반이 맛있는 집이다. 마담은 해방 전 상해에서 땐서노릇을 했다는 전력을 자랑하는 뚱뚱보이다.
『어서오세요』
목소리마저 굵다.
『저 꼬치 이인분 주세요』
수련이는 천하의 보물이나 과시하듯이 미남이를 마담과 마주보이는 자리에 앉혔다.
『누구요』 묻기만 하면
『내 아들에요』
한 번 으시대보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마담은 손님이 들어닥쳐서 그런 겨를이 없이 되었다. 그래두 미남이는 꼬치 백반 일인분을 거뜬히 먹어 치었다.
『정말 배가 부른가 보구나』
수련이는 몹시 대견했다. 명동 뒷골목에서 미남이와-어머니와 아들이 부풀은 가슴을 안고 식사를 같이하는 즐거움이 어찌 흔한 일이랴. 식사가 끝나자 열시 가까와왔다
『미남아 이젠 그만 「사보이·호텔」루 가서 「홍콩」 아버지 목소리를 들어야 해』
『엄마 얼른가』
미남이가 졸랐다.
『「호텔」에 가거든 아저씨헌테 인사 잘해야 해』
『걱정마… 신부님헌테 하듯 하면 되잖아』
『그야 그렇지』
수련이는 곧장 「호텔」로 들어섰다. 열시 십오분 전이다. 명철의 방을 녹크했다.
『들어오세요』
대답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명철이는 의복을 단정이 입고 신문을 보고 앉았다.
『미남이를 데리구 오느라구!』
『안양까지 갔다 오셨군요』
『미남아 인사 여쭈어 아버지 친구 분이시다』
『아저씨 안녕하십니까』
과연 미남이는 직립부동의 자세를 차리고 허리를 구십도 가까이 굽혔다.
『하! 하! 너두 잘 있었니. 인제 곧 너이 아버지 목소리가 「홍콩」서 날러온다. 거기 앉아 곧 열시가 돼』
『저쪽에서 걸려옵니까』
『어쨌든 열시가 되면 미남이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오게끔 돼 있읍니다.』 안명철의 말대로였다. 시계를 주시하고 있자니 열시 삼분쯤 해서 「홍콩」이 나왔다. 안명철이 먼저 받으니 곧 수화기를 수련이에게 넘겨준다.
『이봐! 내 미남이 어머니와 바꿀게』
전화통을 받아든 수련이는 가슴이 꽉 막혔다.
『여보세요 나, 수련이에요. 그간-그간 안녕하셨어요. 자세한 말씀 안선생님헌테 들었어요. 그럼 우선 미남이 인사 좀 받으시구!』
수련이는 박영진의 말을 한창 듣고 있더니 이번에는 수화기를 미남이에게 쥐어주었다.
『미남아 아버지! 그래』
전화통을 받아든 미남이는 너무 흥분해서 말이 나오지를 않아 얼굴이 빨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