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NC】 한 오지리 추기경이 「부다페스트」로 항가리 수석주교 요셉.민첸티 추기경을 방문하고, 그곳 미국대사관에서의 6년간에 걸친 보호생활을 끝내고 「로마」로 오는 개인적 권고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비엔나」의 대주교 프랑치스꼬.쾌니크 추기경은 그는 동방문제에 당하여 「바티깐」 지령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도 본인이 민첸티 추기경을 「로마」로 데려오는 일종의 공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가능성을 말해보겠다』라고 동 추기경은 「로마」에서 오지리로 향발하면서 「바티깐」은 공산 항가리 밖으로 민첸티 추기경을 데려오려고 한다는 것을 보도한 바 있었다. 「바티깐」 당국은 동 보도 및 「비엔나」 추기경의 계획을 논평하려고 나서고 있다.
쾌니크 추기경의 「부다페스트」 방문에 언급하여 그는 개인적으로 민첸티 추기경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일 「바티깐」 소식통은 쾌니크 추기경이 교황으로부터 항가리 수석 주교에게 「메시지」를 가져간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 「비엔나」 추기경이 이미 교황의 분부를 받았으리라고 추측할 수는 있다고 논평하였다.
민첸티 추기경은 오는 3월29일로 71세가 된다. 그는 1956년 12월4일 항가리 반란을 진압하려 소련 「탱크」가 침입했을 때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했었다. 그는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 「자유투사」들에 의해 불과 4일 전에 석바오디었다 한다.
항가리 공산 정권은 미국과의 수호(修好) 관계를 협상하는 한몫으로 민첸티 문제를 미국과 논의하고자 시사(示唆)해 왔었다. 민첸티 추기경을 동 문제에 언급한 일은 없으나 그를 항가리로부터 이동시키는 어떤 해결안에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공산 감옥에서 장기 수인(囚人)이던 대주교 한 분이 「로마」에 왔었다. 그는 「리피프」의 요셉.슬리피 대주교이다.
아주베이의 알현이 있은 동일 저녁 성청 방송은 스탈린의 사기후 과거 10년간 공산당은 그 이론에서가 아니라 전술(戰術)면에서 크게 변했다고 논평하였다. 『그들의 변함은 너무 크기 때문에 때로는 공산주의 자체가 달라졌는가 하는 의심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불행이 현실과 선전은 동일하지 않다. 공산주의는 그 이론 및 실제에 있어서 무신적(無神的)이요 물질적인 그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