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8) 驚嘆(경탄)할만한 回敎徒(회교도) 熱誠(열성)
우리는 祖上파는 못난이
발행일1963-03-24 [제368호, 3면]
몬떼스.꾸가 매일 정한 시간에 정한 곳으로 산책하는 길에 한 어린 소년 거지를 만났단다. 어린 것이 굶주려 헐벗고 떠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동정을 해주고 동정을 해주어서 매일 만나게 되니 자연 친밀해져서 나중에는 무릎 위에 안아주기까지 했단다. 그런데 하루는 무릎에 앉히고 어루만져 주다가 갑자기 아이를 밀쳐버리고 일어서서 제 갈 길을 가라고 다시는 그 아이를 돌봐주지 않았다 한다.
이유는 만일 이 아해를 끝까지 이 모양으로 다루었다가는 의뢰심만 키워줄 뿐 자활정신을 박아주지 못할테니 인간으로서 자활 정신이 없으면 폐인이 되고 말테니 지금 조그마한 동정이 전도요원한 그 아이를 폐인으로 만들고 만다면 오히려 그 아이를 망쳐 버리는 결과가 되니 인정상 가혹한 것이나 그 아이를 떠밀어버리고 다시는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몬떼스.꾸의 이 방법이 최상의 방법이라고는 않는다. 아이를 참으로 사랑했다면 좀 더 아량을 가지고 좀 더 잘 인도할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요령 없이 베푼 동정보다는 그 아이를 위해 유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 「베틀레헴」에도 순례자들이 동정을 안해주면 이렇게까지 거지가 많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보면 선을 베푸는대도 요령과 짐작이 있어야겠다. 덮어놓고 동정을 베푸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베틀레헴」 방지거 수도원에서 저녁을 먹고 거기서 내일 아침 미사드릴 몇 분 주교님들만 남고 우리 일행은 그날 밤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구릉(丘陵)지대가 되어 길이 꾸불꾸불 하건만 차는 60「마일」 속도로 미끄럽게 달린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외화 획득을 위해 도로도 포장을 잘했고 차도 고급차이니 그럴 수밖에. 이런 점 기후 좋고 산수 좋은 우리 나라에서도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 다음날 아침 느지감치 「예루살렘」 성전터로 공동으로 묵주신공을 하면서 갔다. 그 터는 지금 회회교도가 잡고있기 때문에 그들이 싫어할까 해서인지 가까이 가서는 묵주신공을 중단했다. 성전터 경내는 굉장히 넓고 바닥은 네모난 돌을 다듬어 까라놓았으며 지금 회회교당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규모는 굉장히 큰 것이 어서 이 불쌍하고 가난한 백성한테서 어떻게 이만큼 큰 집을 지을만한 자금이 수집되었는지 놀랍다. 이 사람들의 이러한 공사를 볼 때 우리도 성의만 다하면 외국으로부터의 원조 없이 우리 힘만으로 우리에게 소용되는 성당은 얼마든지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 지은 성당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신심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걸핏하면 우리들의 순교복자들을 들추는 버릇이 있다. 과연 우리 조상들은 세계 순교사상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훌륭한 사적을 꾸며놓았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祖先)의 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다. 우리가 훌륭한 조선을 가졌으면 가졌는만큼 더욱 더 우리 자신들도 훌륭해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우리 조선이 어떠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알 뿐 우리 스스로는 발분함이 없으니 한심한 일이다. 내 민족은 남에게 의존하고 조선을 팔려는 나쁜 근성이 국민성이 되고만 것일까?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신축 중인 교당 안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말로는 그 바위 위에서 아브람이 천주께 제헌하려고 자기의 아들 이사악의 목을 치려다 천신의 만류로 이사악 대신 가시덤불에 얽혀 보채고 있는 양을 잡아 천주께 제헌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한개 전설이요 믿을 필요야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