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受難譜(수난보)] 聖殮市(성염포)에 나타난 受難像(수난상)
鞭笞·莿冠·磔刑
발행일1963-03-24 [제368호, 4면]
예수의 십자가는 2「메타」의 높이였다고 본다. 그것은 T자 형상을 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상상하고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렇게 묘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우리가 부르는 「십자가」 전부를 비라도 궁전에서 「갈바리아」까지 지고 가셨다고 상상할 수는 없다. 「로마」 시대의 모든 사료는 수형인(受刑人)이 언도를 받은 장소부터 처형의 장소까지 가로(橫)의 나무만을 지고 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십자가의 부분은 50「킬로」의 무게였다. 이것이 편태를 받은 죄수가 질 수 있는 최대의 무게였다.
사형에 처하기 위해 보통 이용한 장소는 교외였다.
거기 먼저 높이로 뾰족한 기둥을 심었다.
죄수가 지고 온 나무에다 미리 만들어둔 구멍 속에 기둥을 박는 일만 남는다.
화가들은 흔히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곧게 늘어진(垂直) 기둥 위에 박은 나무 대(台) 위에 발을 두신 것처럼 그린다. 그러나 아무런 역사적 사료도 그러한 그림을 확인하지 아니한다. 십자가 사형수의 발은 십자가 둥치 위에 직접 못박았다. 예수님도 그렇게 못박히지 아니했다는 이유가 조금도 없다.
한편 복음서에서 예수의 십자가가 특히 높았다고 믿게하는 아무런 말도 읽을 수 없다. 땅에서 대게 2「메타」 정도의 길이였을 것이다. 그것은 군인이 힘들이지 않고 초와 쓸개를 예수께 강박하고 창으로 녹방을 찌를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설명한다.
「또리노」의 염포 이태리 북부 「또리노」에 한 폭의 큰 베(布)가 보존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성 금요일 밤에 싸였던 염포라고 한다.
이 염포 위에 우리는 한 인간의 흔적과 아마 십자가에 처형된 자의 상처로 말미암아 되었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몇 개의 반점을 본다. 그것은 단순히 중세기에 흔하던 여러 유물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 염포는 한 상자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1898년 이 염포를 전시하는 예절 중에 누가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의 「네가티브」(陰畵)를 현상할 때 놀랍게도 너무나 정확하고 극히 감동적인 한 사진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즉 십자가에 못박히고 자관을 쓴 자의 상처를 입은 한 육체의 사진! 「포지티브」(陽畵)였다.
1931년에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것은 1898년의 발견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또리노」에 보존되어 있는 그 염포는 사진의 음화처럼 보인다.
중세기 사람들은 음화를 찍을 줄 몰랐기 때문에 가짜 유물이라고 하는 가정(假定)은 제외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그 염포가 주님의 음화 사진을 보존할 수가 있었는가? 이 질문에 관한 학적 연구는 몰약(沒藥)과 침향(沈香)으로 침습된 베는 만일 그것이 「암모니아」 취기(臭氣)에 노출되면(-이것이 매우 중대하다. 이 베가 이 취기에 30 혹 36시간동안 노출되기만 하면) 사진 종판(種版)같이 된다는 결과가 일어난다. 만일 노출의 시간이 매우 짧음녀 그 사진은 불완전하게 될 것이다.
만일 노출 시간이 너무 길면 그 사진은 점차적으로 선명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관(下棺)하는 시간이 늦어진 이유에서 방부제(防腐劑)를 써서 시체를 보존할 수가 없었다. 다만 염포에 싸서 무덤 속에 넣어버렸다. 이 염포에 몰약과 침향이 발려있었다면 시체가 발산하는 취기는 사진의 음화처럼 그 염포에 작용한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복음 성서로 확인대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음화가 보일 수 있기 위해서는 시체가 염포 속에 36시간 이상 머물러있지 않아야 한다. 36시간 이것은 하관한 시간(금요일 17 혹 18시)을 부활하신 시간(주일 해뜰 무렵)에서 분리하는 시간이다. 방금 상기한 학적 설명은 신자들의 신앙을 약속하지 아니한다. 그럴지라도 성스러운 염포를 연구한 학자들의 태도하에 그것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감동적인고.
편태를 당하신 흔적 자관으로 생긴 상처, 못과 창으로 찔린 상처를 우리는 볼 수 있다. 우리는 못이 손을 뚫지 아니하고 손목을 뚫은 것을 발견한다. 사실 그것은 손이 육체의 무게로서 찢어지지 않고 그 못을 박을 수 있는 가능한 유일한 자리라고 하는 것을 의사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우리에게 말하는 이 놀랠만한 사진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