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召(성소)] ⑨ 갈멜회(女子)
信仰發電所(신앙발전소)
우리나라에는 세 곳
발행일1962-09-02 [제341호, 3면]
갈멜회의 기원(起原)은 기원(紀元)전 850년까지 올라간다. 예언자 엘리아와 그 제자들이 「갈멜」 산에 살면서 침묵의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갈멜회의 존재가 확실하게 된 때는 12세기부터이다. 당시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1155년 「갈멜」산을 방문하고 그 회를 인가했다. 이것이 갈멜회의 정식의 기원이다. 1200년경 그 회에 주어진 생활의 규칙은 『고독과 독방에서 은수와 침묵의 생활, 엄한 청빈, 손일, 끊임없는 소재일년에 반을 점영하는 대재 등으로 나타나는 억제와 고행의 생활 기도의 생활』이라 기록되어 있다.
소아세아 각자에 전파된 갈멜회는 사라센인의 침입으로 구라파로 이동하였고 여기서 갈멜회는 급속히 발전하였다. 동회원은 관상생활만을 원하였으나 제정적 이유로 1229년 그레고리오 교황께서 동회를 관상과 활동을 가미한 수도회로 만들었다. 후세에 구라파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규칙의 완화를 가져왔다.
이에대한 복구 운동이 일어났으나 성공치 못하였다가 「아빌라」의 대 성 데레사가 원상복기 운동을 일으켜 1562년 8월 24일에 선족(선足) 갈멜회로 발족시켰다.
그러므로 지난 8월 24일이 갈멜개혁 400주년 기념되는 날이었다.
갈멜의 생활은 쉬운 것이 아니다. 높은 정신적 균형이 요구되는 생활이다. 외계와의 일체의 접촉을 끊고 높은 울타리 속에서 오로지 천주만을 관상하는 생활이기에 높은 정신적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갈멜같은 관상생활은 電氣(전기)에 비한다면 발저소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생활은 영적생활의 최고봉이다.
이 선족갈멜회가 서울에 온 것은 1940년이었다. 부산 「동래」에도 갈멜회가 있다. 선족 갈멜회 창립 400년 기념되는 올해 9월에 대구에 새 갈멜원을 개설하게 되는 것은 의의가 크다. 관상생활에 사는 이 회가 어찌해서 세계각지에 수도원을 지어야 하는가? 기도에는 국경이 있을리(理) 없는데… 그것은 방인에 의한 포교가 완전한 것이 되기 위함이다. 관상생활이 있는 교구는 발전한 교구라고 한다. 방인 관상생활자가 많으면 그만큼 포교는 충실한 것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