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角圈(시각권)] 木浦(목포)서 올린 씨튼 祝典(축전)
母性·修德을 兼全
美國 첫 福者에 한국의 精誠 바쳐
발행일1963-04-07 [제369호, 1면]
목포 북교동본당에서 미국 최초의 복자 엘리사벳 씨튼의 시복(諡福)을 축하하는 씨튼상 제막식 대례미사 및 축하식이 거행되었다. (旣報)
이날 그러니까 「로마」에서 3월17일 상오 9시에 거행되는 시복식에 맞추어 하오 4시부터 광주 현대주교 집전으로 전례 없었던 대축하 미사가 이곳 조용한 항구도시를 들뜨게 했다. 전주 한주교, 목포시장 그리고 지방 유지들 및 천5백명이 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당지 씨튼·가리따스회 수녀들(미국인)이 경영하는 강진 성 요셉 금릉여중고에 재학중인 김엘리사벳양은 이날의 감격을 이렇게 적어보내왔다.
『경축 일색이 된 북교동본당에 시간이 되자 현대주교님 전주 한주교님 그리고 김 몬시뇰께서 나타나시자 군중은 우뢰같은 박수를 보냈읍니다. 성당인의 아름다운 제대와 대주교님의 화려한 제의는 자못 황홀했읍니다. 새로 복자위에 오른 씨튼의 간단한 약력 소개가 있었는데 저희들은 평소에 토마스.아귀나스 수녀님(씨튼 가리따스 한국 수녀원장)으로부터 많이 들어온 것이었지만 새삼 감개 깊었읍니다.
미사 중 광주 가리따스 수녀회의 합창은 마치 하늘의 천사들이 부르는듯, 도취되는 것이었읍니다. 현대주교님께서는 강진 저의 학교를 경영하시는 여섯 수녀들을 치하하시면서 오늘 씨튼회 수녀님들의 큰 기쁨과 영광을 다른 수녀님들이 질투하겠다고 하시면서 청중을 웃겼읍니다. 저희들은 복자 씨튼상을 매고 조용이 상당밖으로 나왔읍니다. 기쁨과 평화의 미소를 짓고 있는 씨튼상을 한가운데 모시고 수많은 축사와 아기들의 춤과 노래 잔치가 벌어졌읍니다. 이곳 세계의 외딴 고장 한 가장자리에서 이 많은 존경과 찬미를 받으신 복자 엘리사벳 씨튼께서 불원 성인품에 오르시기를 새삼 기구드리면서 저희들은 이 성대했던 경축장에 아쉬움을 남긴채 가인행 뱃길에 올랐읍니다.』
1774년 「뉴욕」의 명가문에서 탄생한 씨튼은 특히 엄격한 감리교 집안의 교육을 받았다. 19세에 씨튼가에 출가했을 때는 「뉴욕」 푸루부스트 감독이 주례를 맡아 사교계가 벅석했었고 그러나 29세가 된 씨튼은 남편과 가산마져 기울이고 5남매를 걸머진 젊은 과부가 되었다. 1805년 「가톨리시즘」을 차지한 그는 그 감격으로 자기 성화와 교회 교육사업에 전력, 1821년 폐결핵으로 넘어지기까지는 10개 건물에 동조자를 모은 당당한 수녀회의 기틀을 잡았다. 오늘 미국에서 가장 큰 수녀회가 되었고 강력한 회헌(會憲) 아래 1만1천명 회원으로 가장 성공적인 대학 및 여학교들을 경영하고 있다. 「로마」에서의 동 시복식에는 3천명이 넘는 미국인 순례단이 몰려들었다.
스펠만 추기경 리타 추기경 그리고 복자씨튼의 전구(轉求)로 「백혈구과다증」을 치유한 15세의 안나.오네일양이 참석하여 이채를 띄었다. 완전히 현대의 환경에서 5남매의 어머니로 성인의 길을 닦은 그의 발길이 한국에까지 다은 것을 우연에 맡길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