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뜨] 聖金曜日(성금요일)의 揷畵(삽화)
발행일1963-04-14 [제370호, 2면]
사제관 식모 아가다는 저녁 설겆이를 마치고 다시 한 번 부뜨막에서부터 하나하나 더듬어 찬장까지 훌터어보았다. 혹 잊혀진 일이나 손 안간 곳이 없나 해서였다. 어지간히 정리가 된 것 같아, 행주치마를 벗어 찬장 옆의 못에 걸었다. 하룻 일을 끝맺었다는 의식과 함께, 돌아갈 집의 아랫방과 옷방의 광경이 뇌리를 스쳤다.
아랫방에서는 딸 글라라가 귀를 덮는 단발머리를 가끔 쓸어 올리면서 수를 놓고 있거나, 아니면 엎드려서 동화책 같은 것을 뒤적이고 있을 것이었다. 옷방에서는 남편이 양미간을 모으고 정신병자 특유한 광기 어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면서 때때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바른 정신으로는 못해본 검사노릇을 돌아가지고실컷 해보는 그 어처구니 없는 취조연극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남편이 발병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섯해 동안 단 하루도 고뇌와 슬픔이 가시어 본 적이 없는 자기 가슴을 어루만지듯 성호를 긋고 부엌을 나왔다. 이층 신부님방의 창문에서 파란 형광과 함께 건축의 선율(旋律)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부님은 몸이 고단할 때면 음악을 감상하곤 했다. 오늘도 상당히 피곤한 모양이었다. 부활이 가까와 교리지도며 판공성사며 분망한 나날인데다가 연세가 연세라 지칠만도 하였다.
그녀는 전축소리가 멎는 것을 기다려 계단을 올라가서 조용히 방문을 두드렸다. 곧 안에서.
『예-』하고 굵은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녀가 들어서자 신부님은 안락의자에 기대었던 상체를 일으키며
『어 아가다』하고 또 한번 굵은 소리를 울렸다. 어깨가 많이 처져 있었다.
『신부님 몹시 피곤해 보여요』
『그래- 나이가 나이니 말이아』
숱이 적은 머리의 백발을 쓰다듬었다.
『푹 쉬셔야 할텐데요. 교리는 내일까지죠?』
『음. 이제 교리 시간이 되었군. 그럼 아가다는 집에 가요』
신부님은 일어서면서 생각난 듯이 물었다.
『박서방은 여전한가?』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쓸쓸하게 웃었다. 입 속으로 인사를 하고 물러나오려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침실로 들어가서 「파인애플」 통조림을 들고 나와서 그녀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박서방과 글라라에게 갖다 줘』
이런 때 안 받으려고 하면 오히려 야단을 치는 본당신부님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방을 나왔다. 먼저 계단을 내려온 신부님은 섰다가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 말없이 강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한참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에 으스름이 고인 눈물을 닦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남편 박상섭이 정신이상이 된 것은 시험 때문이었다.
조실부모하고 삼촌밑에서 겨우 국민학교를 나온 남편은 군청 급사르 취직하였다. 동창생들이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언제까지나 급사로서는 만족할 수 없다하여 몇 해 동안 부지런히 공부한 끝에 무난히 보통고시에 합격하고 서기가 되었다. 그 후 동창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별반 실력들도 없으면서 한 자리씩 하는 것이 눈에 거슬리자 다시 고등고시 예비시험을 치루어 손쉽게 본고시 응시자격을 획득하였다. 이 무렵 같은 군청 타이피스트로 있던 그녀와 가까와졌다. 그는 그녀의 모녀뿐인 쓸쓸한 환경을 위로해 주고, 그녀는 그의 외로운 고아의 처지를 위로해 주고, 말하자면 동병상련(同病相憐)에서 비롯한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일찌기 남편을 여의고 오직 신앙에 의지하여 삯바느질과 삯빨래로 키워 고등학교까지 졸업싴니 무남독녀를 외인에게는 줄 수 없다고 고집하였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하여 입교하였다. 그러나 신앙보다는 역시 고시합격이 그에게는 더 중했다. 그녀 자신도 몇 해 뒤의 검사부인을 꿈꾸면서 남편의 수계보다는 공부의 능률에 관심이 더 컸었다. 딸 글라라를 낳고는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합격하기까지는 잠자리도 같이 안하기로 서로 굳게 약속하였다.
그러나 인간사가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첫번째 두번째의 실패는 경험이니 뭐니 하면서 자위하였으나 세번째 떨어지고는 초조의 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네번째 다섯번째 거듭 고배를 마신 남편은 마침내 군청을 그만두고 배수의 진을 쳤다.
여섯번째로 실패하고 일곱번째의 발표를 방송으로 듣던 남편은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은 「라디오」를 두드려 부쉈다. 그 날부터 남편은 정신병자가 되었다.
불행에 불행이 덮치었다. 사위의 발병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자리에 누워 시름시름 앓다가 서너달만에 돌아가셨다. 남편이 이태 가량 입원하고 있는 동안에 문자 그대로 적빈무의(赤貧無依)가 되었다.
찾을 곳은 본당신부님밖에 없었다. 말문이 열리지 않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냥 흐느껴대는 그녀의 등을, 노신부님은 가만히 쓸어 주면서, 이튿날부터 사제관의 식모일을 보라고 한 마디 했다. 세 식구가 지내기에 알맞은 사택도 마련해 주었다.
이 은혜를 갚을 길은 일뿐이라고 마음에 다짐했다. 일을 찾아서 했고, 찾아서 없으면 만들엉서 했다.
어쩌다 신부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겨우 한 마디 하고 울먹거리면 천주님에게 감사하라고 했다. 물론 기구도 했다. 일과 기구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일을 할 때건, 남편이 성한 정신을 되찾아 주었으면 하는 원은 그녀의 머리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원이 풀리지 않는 한은, 그녀의 가슴에서 고뇌와 슬픔이 가시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가슴의 고뇌와 슬픔을 안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 발길이 가벼울리가 없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옷방에서 고함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광인검사의 취조연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랫방으로 들어갔다.
동화책을 읽고있던 글라라가 일어나 앉으면서 옷방을 눈으로 가리키며 서글프게 웃었다. 열다섯인데도 고생한 탓인지 어머니 눈에도 퍽 조숙해 보이는 딸이었다.
작년에 국민학교를 마치고 본당신부님이 재주가 아깝다면서 공납금은 걱정말고 진학하라고 누누히 타일러도 아버지의 시중을 들겠다면서 굳이 사양한 글라라였다. 「파인애플」 통조림을 뜯어 너덧 꺼내어 주니 하나만 들고 나머지는 내일 낮에 아버지와 같이 먹겠다고 했다.
사발에 국물과 함께 몇 개 넣어가지고 그녀는 옷방으로 올라갔다. 발작 중이라 큰소리로 맛이 좋으니 들어 보라고 권해보았으나 남편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은 오늘의 가피의자는 여자인 모양이었다.
『보통 부인이 아니군요』
남편은 짐짓 험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뱉었다. 그리고 앞에 놓인 글라라의 조그마한 공부책상을 주먹으로 탁 치면서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자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수척한 몸집이 뒤로 제껴지고 창백한 입술이 실룩거리고 눈꼬리가 잔뜩 치켜지고 있었다.
보고 있노라니 그녀는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무엇에 짓눌리우듯 어깨죽지가 쑤시고 눈꺼풀이 자꾸 처졌다. 차라리 눈을 꾹 감아 보았다. 등골로 쏟아지는 피로를 느꼈다. 입안에서 「성모경」을 외우며 이 고뇌와 슬픔에서의 휴식을 빌었다.
성금요일이었다. 수난예절이 끝난 뒤 그녀는 손을 재우쳐 신부님의 시중을 들고 다시 성당에 들어와 「성로신공」을 했다. 제십이처에서 무릎을 꿇은채 오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경문을 외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등불에 떠보이는 성화의 십자가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몰랐다. 아무도 없을터인데 뒤에서 인기척이 있기에 돌아다보니 난데없는 남편이 히죽거리며 서있었다. 글라라가 울상을 하고 손을 잡아끄나 버티고 선채 두리번거리기만 하였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고 쳐다보고만 있다가 딸이 아버지의 신을 벗기려고 씨근거리고 있는 것을 보자 벌떡 일어나서 남편의 가슴을 힘껏 떠밀었다. 그러나 약간 비실거렸을뿐 남편이 다시 버티고 서자, 저도 모르게 남편의 뺨을 쳤다. 그러다가 뒤로 나자빠지면서 고함소리를 들었다.
그녀를 넘어뜨린 것은 딸이었다.
『엄마 왜 불쌍한 아버지를 때려!』
글라라의 목청은 성당 안에 쨍하고 울렸다. 순간 그녀는 글라라의 눈을 보았다. 그것은 딸의 눈이 아니었다. 십자가상에서 내려다보시는 눈과 같은 눈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훗훗 달아올랐다. 그리고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던 남편이 옆에 와서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글라라의 목소리가 나직히 그러나 단호하게 또 한 번 울렸다.
『아버지 신을 벗어요. 그리고 무릎을 꿇으세요』
아버지는 딸의 말을 순순히 들었다. 세 식구는 성체 안치소를 향해 나란히 장궤를 했다. 어머니와 딸은 흐느끼고 아버지는 실로 여러해만에 평온한 얼굴로 제대를 바라보았다. 언제 왔는지 본당 신부님이 기둥 뒤에서 세 식구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