麻浦矯導所(마포교도소)서 거둔 숱한 씨들
貴·賤 없는 곳서 人生을 되살펴
발행일1963-04-14 [제370호, 3면]
마포교도소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교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4월부터이다.
당시 교우인 김영석 소장을 비롯하여 백두헌 서호성 조재욱씨 등 직원들의 후원을 얻어 재소자 교우 10여 명이 주동이 되어 예비교우 270여 명과 함께 첫 목회르 성황리에 개최한 후 매주 목요일마다 약 28회의 강론을 윤형중 신부님이 시행한 지 얼마 후 보람있이 9명이 영세입교하게 되었다.
1962년에는 총 집회수 51회 미사성제 46대가 봉헌되는 가운데 29명의 수감자들이 영세하여 재생의 길로 들게되었고 이들 중에는 한국경제계의 거두인 구장관이 있고 대학교수 의학박사 육군 고위장교 그밖에 정치범을 비롯하여 각양각색의 범죄자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한때 소년 살이강도로 중형을 받은 자로서 종교에 대해서 털끝만한 이해와 공감도 없었던 자가 이러한 새로운 영적분위기에서 심령에 변화를 일으켜 절망의 나라에서 생애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 천주교 진리를 터득하려 진지하게 부심하고 있다 한다.
그 후 1963년도에 들어서는 본격적인 전교활동의 기운이 교도소에서 일어나 윤신부님을 비롯 약현성당 장신부님 그 후임으로 김신부님, 이 신부님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이 속속 이어지고 있어 주일회(금)마다 미사를 올리는 한편 월말 주일에는 전재소자를 모아놓고 윤신부님의 간곡한 강론이 있고 이어 교우들은 고해성사를 거듭하며 특히 약현본당 성가대으 ㅣ합창은 살벌한 교도소 안에 화기를 일 불어넣어준다 한다.
한편 여러 신부님들의 헌신적인 노고 뒤에서 당 교도소 교무과 안드레아.조재욱씨 등은 물심양면으로 이 성업에 보조를 하고 있으며 불우한 재소생활 10년이 가까운경 필립회장 같은 이는 일본 동경대학에 유학,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교수를 지낸 분으로 교도소 목회 초부터 성직자들을 받들어 재소 교우들의 손발이 되어 동료구령에 전심하고 있다 한다.
일반사회의 교도소에 대한 인식은 보통 무지막지한 범죄자의 무리가 기갈·추위·박해의 철창 속에서 한데 억류되어 적은 인정미도 없는 갈등에 얽힌 별세계쯤으로 상상할지 모르나 오늘의 옥중생활은 선진국의 형행을 본받아 재소자들을 교화하며 그들을 개과천선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일제의 잔재가 여전한 점도 없지 않다고 한다.
당하는 이들 수인들을 과연 단순히 악인으로만 속단할 수 있을까? 이런 의미에서 죄 없는 자들로 치라시던 교회의 내세적인 정의 앞에서 과연 그들이 어느 위치에 설 것이라는 것은 다만 천주만이 아실 일일진데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을 잃은 보속의 터전에서 그들의 남은 생애를 구령하라 수 있다면 과연 진복자는 누구일지-.
이러한 수다한 형제들의 영혼을 잠시라도 인식하는 뜻있는 자가 있을진데 그들에게 우정의 표시를 나타내기를 바라며 그 연락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순교복자수녀원 윤형중 신부님께 문의하시기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