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訪(탐방)] 李文根(이문근) 신부
音樂敎授(음악교수) 17年間(년간)에 厭症(염증)
趣味(취미)로 나무를 가꿔
放學(방학)때도 外出(외출)은 모르고
발행일1962-09-16 [제343호, 3면]
로마에서 음악공부를 6년동안이나 하고 돌아온 바 있는 이신부는 타고난 음악적인 재질을 아낌없이 발휘하면서 봉사하고 있는데 1주일이면 대신학교 소신학교 그리고 음악대학의 시간 강사 등으로 30시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밖에도 교회 예전 그리고 각 본당에서 부탁해오는 작곡 또는 직접적인 음악지도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도무지 외출을 모르는 신부이다.
방학이 되어도 한번 홀가분한 기분으로 외출을 하지 앟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어디 갈데가 없어요. 남들이 부즈런히 일하는데 가서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내손으로 그동안 많은 신부를 내어 보냈으니 그 신부들은 나를 어렵게 생각해서인지 나만 나타나면 하던 이야기도 중지하는 형편이고 해서…』
사실 이신부는 신부된지 18주년이 되는데 17년동안이나 줄곧 대신학교에 있었다.
말이 쉽지 20년 가까이를 한결같이 같은 곳에서 가르치는 생활을 계속한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변화된 환경을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이 도리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신부는 학교생활에는 이제 염증을 느낀다고 한다.
한번 본당을 맡아서 일하기가 소원인데 모든 마음의준비가 다되어 있다는 것 즉 만약 서울의 본당을 맡으면 레지오 마리에이니 뿌레시디움이니 모두 그만두고 합창을 철저하게 시키고 깊은 것 그리고 시골 본당을 맡는다면 외인집 아이들의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겠는데 그렇게 되면 그 부모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자연 전교가 된다는 것.
그래서 지금 이신부는 열심히 사진 찍기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채식을 무척 즐기는 이신부는 시골에 간다면 온실을 만들어서 야채를 길러 일년 내내 싱싱한 야채를 먹어야 하겠다는 것.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꿈만을 사랑하지 허황되고 야심에 찬 꿈 같은 것은 질색인 듯 싶었다.
충북 단양이 고향이며 신학교에 들어오기는 인천 방문국민학교를 졸업한 후였다. 4남매중 장남이었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신부이다. 환갑이 지난 모친이 현재 살아계신다.
이신부는 올해 만44세. 그러나 설흔 일곱이나 여덟로 밖에 안보인다.
항상 음악 속에서 천주와 함께 생활하는 신부에게 지나가는 연륜따위가 크게 영향하지 않는듯 싶었다. 작곡이 전공인 이신부는 후배들의 자라남에 큰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음악대학 출신인 교우 한사람이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작곡부문에 당선했을 때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고 티없이 웃는다.
매우 감이 빠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신부의 인품이 초면이지만 거리감을 주지 않는다.
가장 좋와하는 음악가는 「바흐」 「바레스틀리이나」 그리고 그시대 사람 전부라고 의미 심중한 이야기를 힘들게 토해낸다.
취미는 대신학교 둘레에 있는 나무를 가꾸는 일인데 「녹화」에 보다 많은 취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